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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12. 금강의 한 줌 재가 되어, 김영배 ‘다음’을 검색하면 ‘김영배’라는 이름의 인물은 무려 62명에 이른다.그러나 그 가운데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인물, 제3대, 제5대 공주박물관장을 지낸 김영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공주박물관장 김영배는 1971년 7월 무령왕릉 발굴을 통하여 신문 지상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던, 왕릉 발굴의 첫 번째 수훈자라고 일컬어도 좋을 만한 인물이다.그러나 그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공주대 명예교수)
2023.05.0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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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11. 백마강에서 백제문화제가 시작되다, 신맹선1955년 4월 부여지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부소산성에서 ‘백제대제’를 지내고, 백마강변에서는 망국의 원혼을 위로하는 수륙재(水陸齋)를 거행한다.삼충사를 지어 백제대제를 지내자는 것을 발의하고 추진한 것은 신맹선 등 6인의 부여 사람들이다.이른바 ‘백제문화제를 기획한 원년 멤버’인데, 이석태, 노재호, 김규태, 신맹선, 이석우, 홍경식이다.4월 1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공주대 명예교수)
2023.04.2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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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10. 이존창과 죠조, 순교지로서의 금강충남지역은 지방민의 자진구도(自進求道)에 의하여,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천주 교회가 창설된 지역이다.그 중심에는 여사울(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사람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1784년 조직된 여사울 신앙공동체가 있었다. 이에 의하여 충남 서부지역, 내포에는 천주교 신앙이 급속 전파되었다. 내포지역에서의 천주교 확산은 당연히 공주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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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공주대 명예교수)
2023.04.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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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9. 슬픔은 낙화암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림조씨와 연일정씨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의 백강마을은 ‘백강’이라는 호를 가진 이경여(李敬輿)로 유명하다. 이경여는 말년에 효종에게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다.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것은 효종 8년(1657) 여름이었는데, 북벌과 관련하여 군대의 조련과 추쇄를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이때에 각서석의 글 ‘지통재심(至痛在心)’ 글귀가 포함된 효종의 비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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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공주대 명예교수)
2023.04.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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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8. 금강을 건넌 사람들금강의 도시 중에서 특히 공주는 내륙수로와 육로의 대표적 교차점이다. 그만큼 교통상의 기능이 중요하였고, 그것이 백제 멸망 이후에도 공주가 오랫동안 충청의 거점 도시로 살아남았던 이유이기도 하다.개경 혹은 한성으로부터 호남으로 이어지던 육로 거점이라는 지리적 위치로 공주의 금강은 많은 이들이 넘나들던 강이기도 하였다. 1011년 거란의 침입으로 나주로 피란하던 현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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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공주대 명예교수)
2023.04.0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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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6. 이곡, 백마강에서 백제를 회고하다고려 이후 부여 백마강은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 답사지의 하나였다. 지금과 다른 것은, 지상의 백제 유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선편을 이용한 백마강 답사였다는 점이다.백마강 답사는 자온대, 부산(대재각), 낙화암, 고란사, 조룡대, 천정대 등 강변의 여러 명승을 구경하는 것이다. 부여박물관, 정림사지, 능산리왕릉, 나성, 궁남지를 들르는 지금의 답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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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
2023.03.2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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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5. 이도, 금강을 터전으로 고려 공신이 되다 이도는 전의 이씨(全義李氏)의 시조이다. 전의 이씨의 시조 이도(李棹)에 대해서는 15세기의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전의현)에 “태조(왕건)가 남쪽을 정벌하러 금강에 이르렀는데 물이 넘치므로 도(李棹)가 보호하여 건너는 공이 있었다. 이에 이름을 내려 ‘도’라 하고 벼슬이 태사 삼중대광에 이르렀다.”고 소개되어 있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그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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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
2023.03.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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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4. 민중의 생활 터전으로서의 금강 백제가 멸망하자 금강은 이제 예전의 금강은 아니었다. 왕도는 멀리 동쪽 경상도의 땅 끝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는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는 정치적 무대, 도성을 치기 위하여 대륙의 13만군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긴박한 현장이 될 위험성은 없었다.세곡이나 생활에 필요한 각종의 물자가 유통하고, 인걸이 이동하는 교통로로서의 기능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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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
2023.03.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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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3. 금강에 서린 의자왕의 기쁨과 슬픔의자왕은 31대, 백제의 마지막 임금이다. 젊어서는 ‘해동의 증자’ 효자로 이름을 날렸고, 신라와 가야를 군사적으로 압박하여 백제의 이름을 드높였지만, 백제 멸망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재위 20년간 금강과 여러 가지 인연을 맺었던 임금이기도 하다. 의자왕에게 있어서 금강은 여러 모습의 장면이 있다. 첫째는 잔치를 즐기는 연회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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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
2023.02.2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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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2. 무왕, 백마강을 백제의 ‘국가정원’으로 만들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로 널리 알려진 무왕(재위 600-641)은 익산에 미륵사를 짓고 백제의 국력과 기술을 과시한 인물이다.미륵사라는 대규모 토목 건축 사업을 벌인 인물로서, 40여 년이라는 긴 기간 왕위에 있었고, 사비 도성의 경관지인 백마강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인물이다. 무왕은 서기 600년에 즉위하였다. 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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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
2023.02.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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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2022.12.30. 간행)에 실린 글을 12회에 걸쳐 소개하는 것입니다.1. 무령왕이 즉위하고, 백가가 금강에 던져지다역사상 금강의 전성기는 475년부터 663년까지의 188년, 금강변에 백제 왕도가 위치했던 약 2백 년의 기간이다.475년 가을 10월(음력) 문주는 고구려군의 무차별 공격에서 살아남은 한성의 귀족, 사람들과 함께 웅진으로 내려왔다. 많은 사람과 짐을 한꺼번에 배에 싣고 움직인 대이동이었다.어떤 이는 그때 문주왕이 웅진까지 오는데 육로를 이용하였다고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
2023.02.0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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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바닷물의 소금 이야기를 하였다. 맷돌에서 소금이 한없이 쏟아져 나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바닷물이 짜게 되었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 그리고 태안 안흥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고려시대 맷돌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시 소금 이야기이다.내포 지역의 역사적 랜드마크의 하나인 홍주성은 근년 대대적인 정비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홍주성은 내포를 대표하는 역사유적의 하나이지만, 그러나 홍주성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 그리고 역사적 의미는 앞으로 더욱 밝혀져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가령, 홍주성이 언제 축성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하기가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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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
2022.09.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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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바닷물이 왜 짠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닷물에는 소금, 즉 염화나트륨(NaCL)이 포함되어 있어 짠맛을 낸다. 바닷물의 염분 농도는 평균 3.5%라고 하는데, 문제는 그 염분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다. 무엇이든 구하는대로 얻을 수 있는 요술 맷돌이 있었다. 어떤 소금장수가 이 요술 맷돌을 구하였다. 장사하는 길이라 배를 타고 가던 중 맷돌을 시험하느라 ‘소금 나와라’ 하였더니, 맷돌이 돌면서 소금이 한없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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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2020.06.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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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심각함 때문에 묻히고 있는 감이 있지만, 방탄소년단에 이어 ‘기생충’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였다. 한국인의 문화적 자존감이 극대화된,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어떤 이는 방송에 출연하여 BTS와 ‘패러사이트’, 그 문화적 창의성의 유전인자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기이하기 그지없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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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공주대 명예교수)
2020.03.1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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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타에 거주하는 이삼평의 열성 팬 한 사람이 ‘소설 이삼평’을 출간한 것은 2011년의 일이다. ‘소설 이삼평’이라고 했지만, 이는 소설의 제목은 아니다. 소설의 제목은 ‘일본 자기 발상(發祥) –도공 이삼평공의 생애’이다. 소설의 제목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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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2015.06.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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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가라츠시(唐津市)는 가라츠와 관련한 3개 소혹성의 이름이 ‘국제천문학연합(IAU) 소천체명명위원회’에 의하여 인정되어 공식 등록되었음을 발표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소혹성 3개의 이름은 가라츠(唐津), 사요히메(佐用姬), 그리고 ‘무령왕(武寧王)’이다. ‘무령왕’ 별에 대한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 (공주대 교수)
2012.03.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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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의 남은 기간을 후쿠오카에 있는 큐슈대학에서 지내게 되었다. 큐슈대 한국연구센터에서의 나의 연구과제는 ‘원구’, 즉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여몽연합군의 일본침입에 대한 것이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11월 15일은 음력으로 10월 20일, 마침 1274년 여몽군이 하카다(후쿠오카)에 상륙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공주대 교수)
2011.11.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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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은 정말 오키나와까지 갔을까. 지난 6월 충남향토사대회의 홍길동세미나에서는 이해준 교수와 서정석 교수가 공주의 홍길동 자료에 대하여 문헌과 유적을 중심으로 각각 발표하였다. 그 때 또 한 사람의 발표자였던 설성경 교수는 ‘홍길동이 오키나와에 갔다’는 한 줄 결론을 위하여 두 권의 논문집을 출판하였던 이이다. 그의 가설은 오래 전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 (공주대 교수)
2011.10.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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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고구마를 많이 먹고 자랐다, 우리 또래가 거의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어느 시인의 싯귀를 빌린다면 나를 살린 것은 3, 4할이 고구마였다!일동장유가의 작가 김인겸 세미나를 주관하면서 고구마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고구마는 기근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소중한 식품이었을 뿐 아니라, 쌀이 귀했던 어린 시절 추억이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공주대 교수)
2011.09.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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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 무령왕의 아버지 삿토왕(察都王)은 창왕 때 개경에 사신을 보내 고려와의 통교를 요청했던 임금이다. 에 그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도 적극적으로 통교하여 유구왕국의 존재감을 과시한 임금이다. 유구왕국의 기초를 닦은 임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출신이 모호한 미천한 인물이었는데 왕세자를 제치고 국인들의 추대에 의하여
일본 속 백제문화 순례
윤용혁(공주대 교수)
2011.09.02 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