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2.04.19 16:40
-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끊임없는 광음을부지런히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2.03.21 15:50
-
길거리를 걷고 있었지요. 늙은 거지 한 사람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게 이 불행한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요! 그는 빨갛게 부풀은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했습니다. 나는 호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2.03.12 16:22
-
꽃이 펴도 함께 볼 사람 없고꽃이 져도 함께 볼 사람 없는 봄묻고 싶어요, 그대 어디쯤 계시는지요?꽃이 피고 또 지기도 하는 날에.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엮어내 마음 아는 그대에게 보내려고 합니다봄의 시름 이를 물고 끊으려 했건만어디선가 다시금 새가 슬피 웁니다.꽃잎은 날로 바람에 시들어가고그대 만날 날은 아득히 멀기만 해요그대 마음과 내 마음 맺지 못하고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2.02.24 10:19
-
시몬, 가자. 나뭇잎 저버린 숲으로.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시몬,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낙엽의 빛은 부드럽고, 그 소리 너무도 나직한데,낙엽은 이 땅 위의 연약한 표류물.해질 무렵, 낙엽의 모습은 서글프고,바람이 불어오면 낙엽은 정답게 속삭이는데, 시몬,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발길에 밟히는 낙엽은 영혼처럼 울고, 날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2.02.02 14:27
-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45)대관령을 넘으며 사임당 신씨늙으신 어머님은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 1504-1551)는 조선 선조 때 여성으로 본관이 평산(平山)인 신명화(申命和) 진사의 딸로 태어나 덕수(德水) 이씨(李氏) 이원수 공의 아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2.01.09 10:22
-
그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불쌍한 송아지,조금 전 막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 한참동안 발버둥친 일.이 조그만 외로운 마을의 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송아지는 핥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아, 하느님! 동백나무 우거진 이 길의 길동무였던 그 송아지는그렇게도 정다운 그렇게도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하느님! 견줄 데 없이 자애로우신 당신께서 제발 한번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12.15 10:34
-
해 저물어 푸른 산 더욱 멀고하늘도 차가운데 뼈저린 가난이여사립문 밖에 문득 개 짖는 소리눈보라 속 돌아오는 사람 누군가? 올 겨울 들어 눈이 자주 내린다. 첫눈도 일찍 내리더니 요즘 며칠은 날마다 눈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눈이고 한낮에도 질퍽하게 눈이 내려쌓인다. 세상이 온통 은빛, 백색의 세상이 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길을 가다보면 앞 유리창에 내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11.29 13:52
-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도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절의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11.23 11:09
-
은하 푸른 물에 머리 좀 감아 빗고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목숨 壽자 박힌 정한 그릇으로 체할라 버들잎 띄워 물 좀 먹고 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삽살개 앞세우곤 좀 쓸쓸하다만고운 밤에 딸그락 딸그락달 뜨걸랑 나는 가련다. 이병철이란 이름은 재벌 회장의 이름으로는 모르지만 ‘시인’으로서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니다. 낯선 시인의 이름이요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11.11 12:09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맑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은 매우 폭넓은 인생을 산 인물이다. 호는 이상(怡山).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여 일본 와세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10.19 11:07
-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가 죽거든나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셔요무덤의 머리맡에 장미꽃을 심어 꾸미지도 말고그늘지는 사이프러스나무 같은 것도 심지 마셔요비를 맞고 이슬에 담뿍 젖어서 다만 푸른 풀들만 자라게 하셔요그리고…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를 생각해주시고잊고 싶으면 잊어주셔요나는 푸른 그늘을 보지 못할 것이며비 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겁니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9.28 14:05
-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9.15 13:52
-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여우가 우는 추분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한때 ‘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8.24 16:44
-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머잖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언제나 내일을 꿈꾸고오늘은 우울하고 슬픈 것!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들은 또다시 그리워지나니. 언제부터 이 시가 우리들 눈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시골이발소나 다방 벽에 조잡한 페인트 그림과 함께 쓰여 있던 글이 바로 이 글이었다. 더러는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8.16 16:22
-
아주 아주 오랜 옛날바닷가 한 왕국에 애너벨 리라 불리는 한 소녀가 살았다네.나를 사랑하고 내 사랑 받는 일밖에는 아무런 다른 생각도 없는 그녀가 살았다네.나 어렸었고 그녀도 어렸었지,바닷가 이 왕국에.그러나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다네.천국의 날개 돋친 천사들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만큼.그것이 이유였지, 오래 전,바닷가 왕국에.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8.02 14:44
-
단풍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한 몸으로 두 갈래 길을 다 갈 수 없는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참동안 서서 참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 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는 수 없이 한쪽 길을 택했지요.그 길은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들 걸은 흔적이 적었기 때문이지요. 내가 그 길을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나중에는 다른 쪽 길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7.13 13:41
-
그대,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부디 그 걸음 어지럽게 하지 마시게오늘 남긴 그대 발자국마침내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라네. 그러니까 1998년도 초등학교 교장 자격 연수를 받기 위해 충북 청원군에 있는 한국교원대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 본 글귀다. 기숙사 로비에 큼직큼직한 글씨로 쓰여진 아주 기다란 액자 하나가 터억 걸려있었다. 놀랍게도 글의 말미에 김구(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7.04 16:17
-
오동나무, 천년을 살아도 거문고 곡조 여전하고 매화, 평생 추운겨울을 견디지만 향기 함부로 팔지 않는다달은 천만번 이즈러져도 그 본래의 성질 남아 있으며버드나무, 백번을 꺾이더라도 새로운 가지 움터온다. 신흠(申欽, 1566〜1628) 선생은 조선시대 4대 문장가(정철, 박인로, 윤선도, 신흠) 가운데 한 분으로 호는 여럿이나 그중 잘 알려지기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 문화원장
2011.06.20 14:41
-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남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풀을 매지요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건웃지요. 한 시절 우리나라에는 전원서정을 올곧게 다듬어 시를 빚던 전통이 있었다. 실은 김소월부터가 전원서정이고 이육사의 「청포도」도 전원서정에 물을 댄 시요, 청록파 3가시인은 말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나태주(공주문화원장)
2011.06.12 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