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의 탄생이 인연이 되어 1400여년의 세월을 잇는 축제

4박5일 동안의  후쿠오카 지역 역사기행

낯선 얼굴들과 가벼운 목례로 새로운 인연을 맺고 부산을 향해 달리는 차창 밖 풍경에 마음을 싣고 서서히 일상을 벗어난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드디어 출발! 4박5일 일정으로 후쿠오카 지역의 역사기행이 시작되었다.

▲ 가카라시마 오비야 동굴

무령왕을 기리는 역사기행이기에 굳이 배를 타고 떠나게 되었노라 설명하시던 윤용혁 교수님의 깊은 뜻에 기대어서, 그 옛날 무령왕을 임신한 채 고국을 떠나 배에 오른 왕비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한 생명을 뱃속에 담고 아득한 뱃길을 달리던 에미의 심정, 저 바닷물의 색깔 만큼이나 마음이 먹먹해져온다.

이번 여행은 역사기행이라 하니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눈을 감는다. 

축제 - 가카라시마(加唐島)

무령왕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일행은 가당도행 배를 탔다. 달리던 배가 저 멀리 보이는 동굴을 향해 뱃머리를 돌려서 천천히 움직인다.

멀리서도 금줄이 처진 오비야동굴에서 흐르는 경건한 기운이 시공을 초월하여 마음을 깊게 한다. 부두에 모여서서 춤추 듯 환영의 손짓을 하는 가당도 어린이들의 모습이 1400여년 전 만삭의 왕비를 실은 일행들의 마음과 오버랩 되어서 한 편의 무성영화처럼 흐르고 코끝이 찡해져온다.

바닷물을 가르며 달리던 배의 파도가 불꽃처럼 순간적으로 피었다 스러지는 꽃처럼, 피었다 스러지는 모든 것들이 한 순간이라면 순간을 잇는 것은 마음이다.

왕의 탄생이 인연이 되어서 1400여년의 세월을 잇는 축제가 마음의 바다를 일궈낸다.  가카라시마는 인구가 약 200여명 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섬마을이다.

▲ 우리춤을 선보여 환영을 받은 이미영무용단

부산에서 가당도까지의 지리적 거리는 120km로 일본 땅 오사카까지의 거리보다 몇 배 더 가깝건만, 국가라는 관념이 만들어낸 마음의 거리는 지리적 거리를 훌쩍 넘어서 이역만리 멀기만 하다. 그러나 축제라는 시공간 속에서 이념과 언어의 경계가 스러지고 하나가 된 생명의 움직임이 춤추며 피어난다.

한일 양국의  민간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무령왕비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 무령왕 생신을 축하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의관을 갖추고 의식을 행하는 제주에게서 흐르는 성스러운 기운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바뀌어진 공간에서 새 한 마리 하늘을 빙빙 돌며 자리를 지키고, 바람에 꽃이 춤을 추고 사람들은 제를 올리고 절을 한다.

그 옛날 왕은 성과 속의 경계인으로 세상을 하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현실의 꿈으로 살아난 무령왕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아서 국가나 이념을 초월하여 생명의 화합을 꿈꾸는 축제를 베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는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노래와 춤으로 함께 어우러져 백제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짦은 순간이지만 하나가 되어서 같이 춤추고 노래한다. 

▲ 일행을 환영하는 가카라시마 어린이들.

전쟁 - 가라츠(당진)의 나고야성터

축제가 끝나고 일행은 400여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 침략의 출병기지로 성을 세워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켰다는 현장, 나고야 성터에 도착했다. 1591년 10월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부산이 바라다 보이는 지금 사가현 가라츠에  조선침략  전진기지인 나고야 성을 축성하기 시작한다. 

한적하던 변방 어촌마을에 대규모 성이 건설되면서 느닷없이 탄생된 도시. 그러나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정권을 잡은 후 조선과의 화해를 위해 성을 무너뜨리면서 7년 동안의 가상 도시는 사라지고 반경 3km의 범위에 펼쳐진 광활한 유적지는 공원화가 되었다. 

성 입구에는 전쟁 휠씬 이전부터 살아왔을 법한 고목이 서있고, 공원에는 한가롭고 평화스런 기운이 흐르는데, 성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 옛날 출정을 준비하던 군인들의 군화소리처럼 저벅저벅 들려온다.

▲ 무령왕 기념비 옆에 세워진 성금자 명단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 오사카 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성 중 하나로 유명한 구마모토현에 있는 구마모토 성은 1607년 임진왜란 때 왜군의 선봉장이었던 가토오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원래 있던 작은 성을 토대로 완성한 성이다.  이 성의 천수각은 이름값을 한다더니 과연 아름다웠다.

성의 중심인 천수각 기단의 축조 형태는 활처럼 오목하게 휘어올라가다가 상단부에서 수직으로 곧추서는 형태로 되어있다. 이는 외부 침입자가 석축 끝까지 기어오르지 못하게 고안된 기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의 천수각은 세이나 전쟁 때 이름 모를 화재로 손실되고 지금의 천수각은 1960년에 복원된 것으로 현재는 구마모토 시립 미술관의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천수각 꼭대기에 오르자 공원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한 쌍의 신랑신부의 모습이 보이고, 구마모토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 디카시마에서 유물보존 처리과정을 둘러보는 일행들

다카시마(鷹島) 몽골촌

13세기 천하정복을 꿈꾸며 전 세계 60퍼센트를 복속시킨 기마민족 몽고! 그 몽고의 쿠빌라이 칸은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침략을 시도한다.

1281년 여몽연합군은 1150척이라는 군함의 대부대를 이끌고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 출정을 했다. 그러나 다카시마에서 대 함대는 가미카제라는 태풍에 휘말려서  천길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던 일본의 외세 침략은 싱겁게 끝이 난다. 그리고 가미카제는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신이 보호하는 나라'라는 신화를 만들어준다. 

그 때 함몰된 배를 건져내어 철저하게 보존처리하고, 함몰되었던 유물들을 전시한 다카시마 역사 민속 자료관. 가이드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일본을 지켜준 신의 바람 가미카제를 소개하며 유물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설명의 대부분은 유물 보존 처리에 관한 이야기인데  보존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일본인들의 철저한 태도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전시되어 있는 유물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전쟁에 참전하면서 승리를 기원하고 보호받고자 모셔두었던 아름다운 아미타상이었다. 가미카제와 아미타상! 아미카제는 일본인들에게는 나라를 지켜준 신의 바람이었지만, 여몽연합군에게는 참혹한 악의 바람이었을 터, 과연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학창시절 인간의 본성이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를 논할 때 의심 없이 성선설 편에 손을 들었던 순진한 마음이 되살아나서 괜스레 쓸쓸해진다. 

전쟁의 흔적은 땅에 묻히고 석양이 아름답게 바다로 스며든다. 한 무리의 메 떼들이 먼 옛날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채 바다에 함몰 되어버린 수많은 병사들의 영혼인 양 석양 속으로 머무는 듯 날아가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문명의 흥망성쇠를 둘러보면서 보면서 생명의 속성을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 속에서 문화가 피어나는데, 아름답게 피어난 문화는  또 다른 전쟁을 잉태하고 있으니.. 생명은 생명을 먹고 자란다는 신화학자 조셉 켐빌의 말이 느닷없이 떠오른 이유는 문명 또한 거대한 생명체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지향하고 희망할 수 있는 마음은 생명을 살리는 것에 뿌리를 둔 종교적 심성에서 파생된 감정뿐인 듯하다. 종교적 심성을 닮은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이 대목에서 새삼 실감한다.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며 밤이 저물고, 우리의 만남을 자축하는 조촐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인연들은 친숙해지고 일행은 점점 동료가 되어간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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