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渝,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1986년 伽倻山 海印寺에서 夏安居修行을 할 때 副方丈 日陀는 이러한 法語를 하였다.

아버지를 죽이고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저수지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지 않고 방치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아들은 그 罪責感에 30년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길가의 돌 뿌리를 걷어차 엄지발가락이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면서 깨달음을 成就한다.

모든 정신적 고통, 의문들이 엄지발가락 속에 들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碧巖錄에서도 百丈野鴨子라는 話頭로서 등장한다.<馬大師 與百丈行次 見野鴨子飛過 大師云 是什麽 丈云 野鴨子 大師云 什麽處去也 丈云 飛過去也 大師云 遂扭百丈鼻頭 丈作忍痛聲 大師云 何曾飛去>

스승이 제자의 코를 잡아 비틀어 고통 속에 집중(集中)이 있다는 것을 說한다. Gurdjieff(1872~1949)는 만년에 의도적인 고통을 선택한다.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25t덤프트럭과 의도적으로 정면충돌하여 앞다리가 부서지고 골반 뼈까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병원에서의 수술도 마취하지 않고 수술을 진행하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모든 육체적 고통을 정확히 認知하고 인간이 극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 깨달음을 성취하는가를 관찰, 注視한다. 배고프면 온통 머릿속이 먹을 것만 생각나듯이 육체적인 고통은 전체적인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全身이 고통 속에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면 이러한 육체적 고통이 깨달음의 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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