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문화유산은 우리가 지킨다

공주 고도육성 아카데미 3기생 1차 답사가 익산지역 일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번 답사를 마친 후 일행은 “공주의 문화유산은 우리가 지켜내야 한다”고 모두가 한 목소리를 냈다.

▲ 쌍릉 중 대왕릉에 도착 후 정재윤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자들.

7월 16일 오전 8시 30분 공주에서부터 익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교육생 30여명이 참여한 이날 답사에서는 백제문화연구소 정재윤(공주대 교수)소장이 답사를 이끌었으며 원광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팀 김선기(학예연구사)의 안내로 익산지역의 특색 및 익산미륵사지, 미륵사지유물전시관, 익산쌍릉, 마룡지, 왕궁리 유적, 왕궁리유적전시관, 제석사지답사 순으로 진행됐다.

한국 석탑의 기원 미륵사탑

익산지역에는 무왕(武王)과 관련된 많은 유적이 있다.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으로 유명한 미륵사지와 모질메산성으로 불리는 왕궁평성, 오금산성, 오금사지, 제석사지, 쌍릉 등 궁성, 절터, 성터, 무덤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유적들이 있다.

▲ 미륵사지 전시관에 전시된 미륵사 건물의 가람배치 모형

미륵사는 3탑 3금당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탑과 금당을 갖춘 사찰 3개를 나란히 배치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대단히 독특한 가람배치이다.

미륵사지내에 있는 이 석탑은 미륵사지 서원(西院)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 전하는 석탑으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이다.

현재 남아있는 층수는 6층 지붕돌까지 보여 지고 있는데 이 탑의 층수에 대해서 한때는 7층 설이 주장되기도 하였으나 동탑지 주변발굴에서 노반이 발견되어 9층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석탑은 목조탑파의 양식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한국 석탑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이 탑은 붕괴 직전에 있는 폐탑으로 남아있는 것을 1915년 일본인들이 보수하여 비교적 탑의 동쪽부분은 온전하게 남아있으나 서쪽부분을 시멘트로 덮어 버려 조형미를 잃고 있다. 1992년에 문화재관리국에서는 동탑지에서 발견된 탑 부재를 치밀하게 조사하여 동탑을 9층으로 복원했다. 

▲ 미륵사지 사리장엄

미륵사지 사리장엄 출토지는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 조사 과정 중, 2009년 1월 14일 석탑 1층 심주석 중앙의 사리공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 등을 기원하고자 봉안한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사리장엄은 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금제소형판, 은제허리띠장식등 모두 19종 683점의 다양한 유물로 구성되어 있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은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가 한꺼번에 발견되었고, 가공 기법도 정교하고 세련되어 국보급 유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사리장엄 발견으로 백제의 사리봉안 방식과 의례를 새로이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정재윤 교수는 “로마에서는 유적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장면까지도 문화산업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단순한 어떤 유물이 있다는 것만이 아닌 복원하려면 어떻게 그 과정이 이루어지는가도 중요하므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원하는 과정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미륵사지 목탑 전시모형

원광대학교 박물관 김선기 학예연구사의 익산문화권과 형성배경 및 고도보존 복원, 정비와 지형에 대한 특강을 들으며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문화를 달리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깨달았다.

익산시는 미륵사 1000여년(600-1600전후)의 역사와 신앙·생활·문화 등이 복합되어 있는 미륵사지 출토 유물들을 발굴현장 옆에서 느끼고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관을 건립했다. 전시관은 미륵사지의 경관을 고려하여 중심지역보다 낮은 위치에 세워 조화를 꾀했고 건물의 모습은 미륵사지 석탑의 이미지를 반영해 놓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 서동마를 이용해 창작음식을 개발한 익산의 향토음식점

향토음식 ‘선화공주 정식’ 인기

점심시간이 되어 서동요의 고장 익산 향토음식인 서동 마로 만든 마 약밥과 마 약떡, 마의 육즙을 내어 만든 마 약주 등 마를 창작해서 만든 선화공주 정식을 맛보았다. 참가자들은 배가 고팠던 터라 맛나게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 약밥의 경우 4인분을 기준으로 해서 나왔는데 양이 적었다.

또 한켠에 참신한 아이디어로 욘사마 배용준이 다녀 갔다하여 욘사마 방까지 만들어 놓고 홍보를 하고 있었다. 익산은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로 스토리텔링을 비롯해 향토음식 등을 개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공주도 식당이나 한옥마을에 있는 한식집 등을 이용해 ‘무령왕 알밤정식’, ‘현종 불로장생 정식’과 같은 이름을 붙여 음식들을 개발한다면 관광객들이 공주를 방문 했을 때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선화공주 정식

점심 후 식곤증이 밀려오지만 우리는 곧바로 두 개의 봉분이 있는 쌍릉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두 능은 대왕능(大王陵)과 소왕능(小王陵)을 가리키는 것으로 백제말기 무왕(武王 600~641)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능으로 추정된다. 1971년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원형의 봉토(封土) 주위에는 호석(護石)을 두른 흔적이 있으며, 내부에는 석실(石室)이 마련되어 있다.

두 능은 모두 동시대의 것으로 발굴조사 이전에 도굴 당하였으나 부패된 목관과 토기 등이 수습되어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출토유물과 현실의 규모 및 형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하여 백제 말기의 형식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봉분이 있어 쌍릉이라 불리며 좀 더 큰 것을 대왕묘, 작은 것을 소왕묘라 한다.

다음 장소로 마룡지(馬龍池)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곳은 금마면 서고도리의 연동 마을에 있는 못으로 일명 용샘으로 불린다. 논 가운데 돌로 둘레를 쌓아올린 수면 면적 10㎡ 정도의 못으로 옛날에 식수원으로 종종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못 주변에 줄풀이 우거져 있어 마을 사람들이 따로 옆에 작은 우물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무왕〔서동 薯童〕의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이곳의 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샘의 용과 만나 서동을 낳았다고 한다. 후에 서동은 마를 캐다 팔았으며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이곳에 같이 와서 살다가 법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도 그 집터라고 전하는 곳이 우물가에 남아 있다. 

▲ 왕궁리 5층석탑

백제 관련 유적 왕궁리 5층 석탑

왕궁리 5층 석탑(국보 제 289호). 이 석탑은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진 익산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또한 인근지역에 미륵사지, 쌍릉, 연동리 석불좌상 등이 위치하고 있다. 특히 왕궁리 유적은 미륵사지, 쌍릉 등과 함께 백제와 익산의 역사적 연계성과 관련된 유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되는 정확한 계기는 알 수는 없지만 익산쌍릉이 백제왕궁의 서측에 조성됨에 따라 무왕의 아들인 의자왕이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어서 우리는 왕궁리유적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왕궁리 5층 석탑이 위치한 왕궁리유적 남측에 건립되어 2008년 개관한 전시관으로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출토유물을 전시하여 문화교육장으로 활용 하고 있다.

▲ 왕궁리 유적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는 답사팀

전시관 구성은 왕궁리유적의 발굴조사 내용을 영상과 축소 모형으로 제작하고 중요 출토유물을 전시하여 왕궁리유적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 체험은 관람객이 직접 백제기와를 만나보면서 기와 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중요 출토유물의 이미지를 도장으로 만들어 도장 찍기 체험을 할 수 있고, 백제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했다는 유일한 기록인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를 목판으로 만들어 목판 찍기 체험도 준비되어 있다.

전시유물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중 300여점을 선정 전시하고 있는데, 백제왕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首府)명 인장와, 전달린토기 등과 함께 연화문 수막새, 각종 인장기와, 토기류, 금과 유리 등을 생산하던 도가니가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마지막 답사지인 제석사지를 가려 했으나 이번 호우와 장맛비로 인해 다리가 끊겨 그 장소까지 가 볼 수 없었고 버스 안에서 김선기 학예연구사의 설명으로 대신했다. 하루 종일 우리들에게 성심껏 익산지역의 문화유산을 설명한 김선기 학예연구사와의 작별을 고하고 오후 3시 50분경 공주로 향했다.

공주도 경쟁력을 길러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재윤 교수는 참가한 교육생들에게 답사 소감을 말해 줄 것을 주문했다.

최범수 회장은 “우리가 왜 고도아카데미 강좌를 열심히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번 답사를 통해 더 많이 느끼게 됐다”며, “말로 하는 것보다도 노래로서 공주의 역사와 문화가 소중 하다는 것을 표현하겠다”면서 구성지게 노랫가락을 펼쳐 일행 모두가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전홍남 사무국장은 “공주도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며, “이제부터라도 공주에 남아 있는 문화재가 훼손되는 것을 우리들 스스로가 먼저 앞장서 최대한 지켜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답사에 참가한 교육생 대부분이 이구동성으로 “지금까지 모르고 지나갔던 공주에 남아 있는 문화재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며,  “공주에 살고 있는 주민이므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한다”는 의견과 소감들을 밝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번 답사가 하루 동안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같은 백제권인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알 수 있게 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공주에 살면서도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멀리 익산에서 공주를 다 시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살고 있는 공주를 좀 더 알고 공주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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