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한 왕국에
애너벨 리라 불리는
한 소녀가 살았다네.
나를 사랑하고 내 사랑 받는 일밖에는
아무런 다른 생각도 없는 그녀가 살았다네.

나 어렸었고 그녀도 어렸었지,
바닷가 이 왕국에.
그러나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다네.
천국의 날개 돋친 천사들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만큼.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 전,
바닷가 왕국에.
바람이 구름으로부터 불어와
내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하였다네. 
그리하여 그녀의 지체 높은 친척들이 찾아와
나로부터 그녀를 데려가 
바닷가 이 왕국의 무덤에
가둬 버렸다네.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한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기한 것이었네.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이 왕국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은.

그러나 우리들의 사랑은 훨씬 더 강했었네,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리하여 하늘나라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나의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었다네.

달빛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비추지 않고
별빛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 반짝이지 않네.

그래서 나는 밤이 지새도록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만 누워 있네.
바닷가 그 곳 그녀의 무덤에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

‘에드가 알란 포우’란 시인의 이름과 그가 쓴 ‘에너벨 리’라는 시의 제목은 소리 내어 읽어보기만 해도 혀끝에 아물아물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꿈의 모습이 어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시인은 참 많은 시를 가지고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좋은 시,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시 한 편만으로도 충분히 시인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우리의 경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그렇고, 김소월의 「초혼」이 그렇고 정지용의 「향수」가 그렇다. 

「에나벨 리」, 참 으슥하니 깊고 아득한 시이다. 신화적이면서도 동화적이다. 판타지가 숨어있다. 이야기가 들어있다. 시이면서 하나의 짧은 아름다운 서사(敍事)다.

시의 전반부, ‘아주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한 왕국에/ 애너벨 리라 불리는/ 한 소녀가 살았다네.’ 부터가 심상치 않다. 나아가 ‘천국의 날개 돋친 천사들’이라든지 ‘바닷가 이 왕국의 무덤’과 같은 말들이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아닌 게 아니라 번역시라도 소리 내어 읽어보면 마음속에 드넓은 바닷가  풍경이 펼쳐지고, 윙윙 바람소리가 들리고, 아지 못할 어쩌면 귀신의 소리일지도 모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만약 영어로 된 원시 그대로 운율을 살려 소리 내어 읽어본다면 그 감동은 더할 것이다. 분명 끝까지 읽다 보면 물빛 슬픔이 가슴 가득 고여 일렁임을 느끼면서 왈칵 눈물 쏟으며  무릎 꿇고 주저앉고 싶은 충동마저 갖게 되리라.

아, 드넓은 미국 땅 어딘가에 포우와 같은 시인이 일찍이 길지 않은 생애를 살았고, 그에 의해서「에너벨 리」란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또 쓰여졌다니! 부러운지고. 에드가 알란 포우(Edgar Allan Poe, 1809~1849)는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나 순회극단 배우 부모 사이에서 출생했으나 3세에 부모를 여의고 입양된 가정에서 성장, 버지니아대학에 들어갔으나 졸업하지는 못한 걸로 되어 있다.

잡지 편집인으로 일하던 중 1936년 버지니아 클램과 결혼했으나 아내가 결핵을 앓아 1847년 아내마저 병사한 뒤, 시인은 술에 몸과 마음을 위로 받다가 1849년 10월, 볼티모어의 길거리에서 쓰러져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위의 시 「애너벨 리」는 아내가 세상을 뜬 뒤 아내 잃은 슬픔을 바탕에 깔고 창작된 시이다. 이런 시를 남기고 시인 자신도 2년 뒤에 아내 뒤를 따라 세상을 뜨다니! 죽음마저도 신비감을 더한다.

궁핍과 음주, 광기와 마약, 우울과 신경쇠약으로 점철된 불운한 시인의 일생. 허지만 이런 시를 남기므로 그의 일생은 아름다운 일생으로 기억되게 하는 마력을 갖는다.

이러한 포우를 생각하면 얼핏 우리나라의 이상(李箱)을 떠올리게 한다. 이상이 탁월한 시인이며 소설가였듯이 포우도 또한 그러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 기박한 생애요 천재성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일구어냈다.

포우의 문학은 미국에서보다 프랑스에 힘을 발휘했다. 프랑스 상징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프랑스의 또 다른 천재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은 모두 포우의 글 속에 있었다.” 

『모르그 가의 살인』,『마리로제 미스터리』, 『도둑맞은 편지』, 『황금 곤충』등과 같은 그의 소설작품은 현대의 추리소설의 선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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