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間, 吾是以知無爲之有益,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高士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列子가 말하기를 “저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세상만물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 여행을 합니다.”

壺丘子가 말한다. “그대는 세상만물이 변화하는 것은 알아도 그대 자신이 변화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구나!”

<列子曰 游之樂 所玩無故 人之游也 觀其所見 我之游也 觀其所變 壺丘子曰 禦寇之游 固與人同 而曰固與人異凡所見 亦恒見其變 玩彼物之無物 不知我亦無故 務外游 不知務內觀>

인간이 宇宙萬物의 이치를 다 알 수 있다면 이 宇宙는 별 볼일 없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宇宙萬物의 이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죽음은 위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자신이 不可思議한 宇宙의 구성체이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자신들이 우주만물의 이치를 다 안다고 말하지만 可笑한 일이다. John. D. Bernal 은 ‘科學史和新人文主義’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오직 과학적 진리를 지녀야만 우주만물의 이치를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서양인들의 병폐에 불과하다. 과학이 만들어낸 정신의 혼란이 이와 같이 깊기 때문에 단지 어느 하나의 방법에 의지해서는 현대의 병폐를 제거할 수 없다. 우리는 과학과 정신세계의 다른 부분들이 서로 결합하게 해야 하며 과학이 우리의 정신세계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과학은 반드시 인문화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현대과학은 不可思議한 宇宙萬物의 이치에서 바라보면 可笑로운 어리광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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