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잖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언제나 내일을 꿈꾸고
오늘은 우울하고 슬픈 것!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들은 또다시 그리워지나니.

 언제부터 이 시가 우리들 눈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시골이발소나 다방  벽에 조잡한 페인트 그림과 함께 쓰여 있던 글이 바로 이 글이었다.

더러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선물로 사다주는 액자 가운데도 이 글은 들어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 뜻도 내용도 잘 알지 못하면서 어린 우리는 그만 이 글을 외워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삶의 한 지침 같은 것이 되었고 좌우명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잖아 기쁨의 날이’ 온다고 그랬지? 진정 그것이 그렇다면 조금쯤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어느새 우리는 한 사람씩 푸슈킨의 유순한 제자가 되어 버렸다. 어떤 시가 이 시보다 더 우리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작품이 또 있을까 보냐. 

알렉산데르 푸슈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은 제정 러시아의 귀족출신으로 소설가였으며 희곡작가였고 국민시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더구나 그가 젊은 시절 우리가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대위의 딸」의 원작자란 것을 알게 된 것은 더욱 뒷날의 일이었다.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은 푸슈킨이라고 하면 껌뻑하고 넘어간다고 한다. 소설가이며 시인인 윤후명 씨로부터 들은 이야긴데 러시아 여행길, 모스크바 공항에서 소지품 검사 도중 가방 속에서 시집이 나오자 이게 무어냐고 세관원이 묻기에 자기가 쓴 시집이라고 대답했더니 사뭇 감탄하는 표정이 되어 그 시집을 높이 쳐들고 러시아말로 “여기 시인이 있다”라고 외치더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러시아 사람들은 시인을 존경하고 높이 여기는데 이 모든 원인이 푸슈킨에 있다는 얘기였다.

푸슈킨. 그는 생애도 자신의 소설처럼 다이내믹하고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 특히 생애의 끝부분은 더욱 그렇다. 자신의 아내(나탈랴)를 짝사랑하는 프랑스 망명귀족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부상을 입고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들은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의 달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의 사회적 특질을 남김없이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그 어떤 작가나 예술가보다도 유독 푸슈킨을 사랑해서 전국에 푸슈킨 기념관을 22개나 세워 푸슈킨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뿐더러 그의 기념상은 부지기수라서 그 숫자를 정확히 대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한다. 작가도 대단하지만 작가를 사랑하는 러시아 인들의 열정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다.

푸슈킨에 대한 경모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옛 소련 땅에 있는 공화국에도 마다 그 수도에는 반드시 푸슈킨의 동상이 있고 작은 도시 소재지마다 반신상이 있다고 한다.

이 같은 기념관이나 기념상 외에도 푸슈킨의 이름이 붙은 학교나 거리나 광장이 반드시 있고, 전국 2만 개의 중등학교에는 푸슈킨 코너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한 노릇이다.

노문학자 최선 교수(고려대)가 번역한 시의 원문(민음사 판 푸슈킨 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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