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 무령왕의 아버지 삿토왕(察都王)은 창왕 때 개경에 사신을 보내 고려와의 통교를 요청했던 임금이다. <고려사>에 그 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도 적극적으로 통교하여 유구왕국의 존재감을 과시한 임금이다. 유구왕국의 기초를 닦은 임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출신이 모호한 미천한 인물이었는데 왕세자를 제치고 국인들의 추대에 의하여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하여 임금의 지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쉽게 말하면 쿠데타이지만, 그런 단어는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다. 그냥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이라 할 그에 대해서는 흥미 있는 전설이 딸려 있다.

천상 선녀의 아들

제1막 출생.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다. 장소는 우라소에(浦添) 도성에서 북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기노완의 한 산골짜기, ‘모리노가와’라는 곳의 우물이다. ‘숲의 내(森川)’라는 뜻의 지명이다. 지나가던 노총각 농부 한사람이 목욕 중에 있는 선녀의 옷을 감추어 버린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선녀는 결국 노총각과 부부의 연을 맺고 1남 1녀를 낳았다. 감추어둔 옷의 소재를 알게 된 선녀는 어느 날 홀연히 하늘로 돌아갔는데 그 1남이 바로 삿토이다.

그는 빈천한 농부의 아들이 아니라 사실은 하늘에 본적을 둔 천손의 후예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이다.

제2막 결혼. 삿토는 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맨 날 사냥이니 뭐니 해서 밖으로만 싸도는 말하자면 보잘 것 없는 집안의 백수건달이었다. 그때 세상에서의 화제는 건너편 고을 카츠렌왕국의 예쁜 공주였다.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이 공주에게 청혼하였으나 번번이 면접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딱지였다. 건달 삿토가 어느 날 공주와 결혼할 마음을 먹고 카츠렌을 찾았다. 신청서를 냈더니 궁중의 사람들이 가당치 않은 일이라 하여 모두 실소하였다.

그런데 마침 문틈으로 삿토를 보고 있던 공주가 그를 점찍었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였다. 카츠렌 공주는 평강공주 같기도 하고 선화공주 같기도 하다.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강화공주’라고나 할까. 카츠렌(勝連) 왕국의 성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구스크의 하나이다.

제3막 등극. 카츠렌 공주가 궁궐의 영화를 버리고 시집을 와서 보니 건달 삿토는 생각보다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다. 그런데 부엌의 잿더미에는 금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것이 뭐냐고 했더니 삿토는 밖에 나가면 쌓인 것이 이거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귀중한 황금이라는 것을 공주는 가르쳐 주었고 그래서 이 황금을 팔아 부부는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다. 또 무역업자를 통하여 철을 구입하고 이것으로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민심을 얻게 되고 마침내 우라소에 중산왕국의 국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선화공주와 결혼한 후 밭에 널린 금을 팔아 부자가 된 서동이 백제 무왕으로 등극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황금으로 왕위에 오르다

삿토왕이 도성으로 삼고 있던 곳은 고려기와가 많이 출토한 우라소에 구스크이다. 고려기와가 사용된 건물은 영조 왕이라는 선대왕이 우라소에 성 안에 자신의 능묘로서 건축한 것이다.

석회암 암벽에 동굴을 넓게 파내고 그 안에 고려기와를 사용한 건물을 세운 다음 건물 안에 목관을 두었던 것이다. 삿토왕이 즉위한 것은 1350년, 영조 왕이 사망한 지 50여 년 뒤의 일이다.

1389년 삿토왕이 새삼 고려에 사신을 보내 간곡하게 수교를 요청한 것은 궁성 우라소에에 지어진 고려 건축물에 대한 지식을 그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발굴 자료에 대한 근년의 과학적 분석은 이 같은 가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무령왕은 이 삿토왕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유구의 무령왕은 천상 선녀의 손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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