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여,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셔요
무덤의 머리맡에 장미꽃을 심어 꾸미지도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나무 같은 것도 심지 마셔요

비를 맞고 이슬에 담뿍 젖어서
다만 푸른 풀들만 자라게 하셔요
그리고…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를 생각해주시고
잊고 싶으면 잊어주셔요

나는 푸른 그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비 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종달새의 귀여운 울음소리도
또한 나는 듣지 못할 겁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또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누워 꿈이나 꾸면서
다만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렵니다
아니에요, 어쩌면 나도 당신을 잊을지도 모르겠어요.

위의 시는 매우 사랑스럽고도 귀여운 시이다. 죽음 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심각하지 않게 툭툭 어깨를 치면서 하는 이야기처럼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뾰로통하게 골이 나서 눈을 흘기며 이야기하는 한 어여쁜 소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선은 자기가 죽었을 때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것이 당부이고 무덤가에 장미나 사이프러스나무를 심지 말라는 것이 부탁이다. 그냥 푸른 풀들만 자라게 내려두라는 것이며 당신이 원한다면 생각하고 잊고 싶으면 잊어달라는 것이 또 이어지는 말이다.

모든 것을 보통 사람의 뜻이나 생각과는 반대로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시인의 생각이 새롭게 다가오는 모순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야 그럴 것이다. 살아서 숨을 쉬는 사람과는 다른 세상에 들어간 사람이 어찌 산 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안다 할 것이며 비록 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푸른 그늘’이며 ‘비 내리는 것'이며 '종달새 귀여운 울음’같은 것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소유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누워 꿈을 꾸면서/ 다만 당신을 생각하고 있’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내  생각을 바꾸어 ‘어쩌면 나도 당신을 잊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귀여운 투정이며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인가!

이런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경건한 마음을 되찾게 된다. 참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G. Rossetti, 1830~1890)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시 쓰기를 좋아한 천재시인이다.

뒷날 화가가 된 오빠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그림 모델이 되었으며 18세 때 오빠의 친구들이 발행하는 잡지에 시를 발표함으로 시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또한 같은 해에 삼촌에 의해서 첫 시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남긴 시집으로 『Sing Song』, 『고대로 닮은 초상화』,『행렬』등 시집을 냈으며 『비망록』이란 소설을 쓰기도 했다. 평생을 종교적 경건과 헌신 속에 살았으며 여러 가지 질병(협심증, 신경통, 폐결핵, 바세도우씨병, 암)에 시달리며 살았다.

두 차례 약혼을 했으나 모두 종교적 견해 차이로 인해 결혼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며 독신으로 어머니와 더불어 조용한 일생을 살았다. 그녀의 시는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열풍에 의해 가려졌다가 1970년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되었다. 

시인이 남긴 시로는 이 시 말고도 「생일」,「바람」 등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들인데 「바람」이란 시는 천진하고 맑은 동시의 표본과도 같은 시이다.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나도 너도 아니야./ 그렇지만/ 나뭇잎이 조용히/ 흔들릴 때/ 바람은 거기를/ 지나가지.//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 나도 너도 아니야./ 그렇지만/ 나무가 머리를/ 숙일 때/ 바람은 거기를/지나가지.   ―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 「바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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