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맑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은 매우 폭넓은 인생을 산 인물이다. 호는 이상(怡山).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여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고 돌아와 교직에 종사하며 ‘해외문학파’ 문인으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매우 냉철한 지적성격이 강한 시,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이 겪는 고뇌를 표현한 시들을 주로 썼다. 첫 시집 『동경』과 그 이후에 나온 『마음』,『해바라기』와 같은 시집들이 그러하다.

시인은 현실인식이 투철하여 일제침략기, 창씨개명에 공공연히 반대하여 상당기간 옥고(3년 8개월)를 치르기도 했으며 민족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아 일을 하기도 했다.

한국자유문학자협회 위원장에 피선되어 문단을 이끌기도 했으며 <대한신문><세계일보>등 신문사 사장으로 취임하고 예술원 회원,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기도 했고, 문학지 <자유문학>을 발행하기도 하는 등, 굵직한 자죽을 남긴 시인이다. 말하자면 문화계·관계·언론계 등에서 폭넓게 활동한 인물이라 할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의 후기에 쓰여진 시이다. 시인은 1965년 뇌일혈로 쓰러져 혼수상태가 이르렀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성북동 비둘기』와『반응』등과 같은 아주 훌륭한 시집들을 발간한 바 있다.

이 두 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전기 시가 가졌던 관념성과 지적인 건조성을 완전히 탈피한 시들이어서 시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생명을 되찾으므로 새롭게 자신의 인생과 현실을 바라보는 혜안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실과 관념’을 통일시키고 조화시킨 시들을 남겼다는 평가를 얻었다. 앞의 시가 바로『성북동 비둘기』에 실려 있는 시이다.

짐짓 작고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에 있어서는 웅대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보이는 별 하나와 그 별에 눈을 모은 초라한 늙은 시인과의 조응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실로 우주적인 대화가 숨 쉬고 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별 하나’와 그 별 하나를 쳐다보는 ‘나’라고 하는 인간 존재. 그 두 존재 사이에는 얼마큼의 관계성이 있고 또 거리가 있는 걸까? 여기서 발견한 것이 ‘밝음 속에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에 사라’지는 ‘나’에 대한 눈뜸이다. 일견 단순하고 사소한 것 같지만 이것은 엄청난 생명의 발견이요 존재인식인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탄식과 같은 술회가 나온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것은 비단 별 하나와 나 하나와의 관계성만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성에서 그렇고 이 세상 모든 만물과의 관계성에서 그렇다.

생각해보면 그 무엇 하나라 도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모두가 귀중하고 아름답고 유일하고 진실한 존재들인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삶에 대한 인식이요 발견이겠는가!

이 시는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화백에 의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그림으로 재탄생되기도 했으며 유심초란 가수 구릅에 의해 대중가요로 번안되어 불려지기도 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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