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키노 아스카 곤지왕 세미나 참가기

안식년의 남은 기간을 후쿠오카에 있는 큐슈대학에서 지내게 되었다. 큐슈대 한국연구센터에서의 나의 연구과제는 ‘원구’, 즉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여몽연합군의 일본침입에 대한 것이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11월 15일은 음력으로 10월 20일, 마침 1274년 여몽군이 하카다(후쿠오카)에 상륙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인 그 날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날짜가 딱 그렇게 잡힌 것이다. 

▲ 아스카 청과물 작업장에서 열린 곤지왕 세미나

아직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기도 전, 11월 19일 멀리 오사카 하비키노시에서 열린 <아스카베 신사와 가와치 도래인 문화에 대하여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곤지왕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스카의 청과물 작업장에서

하비키노시는 오사카부의 남쪽에 있는 도시인데 곤지왕을 모셨던 아스카베신사가 있는 곳이다. 곤지왕이라면 다름 아닌 바로 무령왕의 아버지이다. 그가 462년 일본 아스카, 지금의 하비키노에 해당하는 가와치 아스카로 가는 도중 큐슈 마쓰우라(松浦)의 섬에서 무령왕이 출산된 것이다.

그는 가와치아스카(河內飛鳥)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왕위에 오르지는 못하였지만 세상에서 왕으로 불리어 온 인물이다. 문주왕의 공주 천도 이후 귀국하여 내신좌평의 직을 맡아 왕을 보필하였으나 바로 그 해(477)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필시 반대파의 저항에 의한 정치적 암살이었을 것이다. 곤지왕의 신사는 하비카노에 있지만, 그의 무덤은 공주에 있을 것이다. 

세미나는 하비키노희망관과 필드뮤지엄토크사유회라는 향토사 단체에서 주최한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이를 기획하고 진행해온 것은 오사카 상업대학의 양형은 교수이다. 하비키노 사람들을 흔들어 곤지왕을 기억하게 하는 일을 몇 년째 진행 중인 것이다.

기조강연은 카사이(笠井敏光) 선생이 맡아 신사가 있는 하비키노 아스카 지역과 곤지왕 무령왕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카사이 선생은 가카라시마에 건립된 무령왕 기념비의 최초 초안 스켓치를 제안한 장본인이다.

▲ 곤지왕(무령왕의 아버지)의 초상(소설가 정재수가 두 차례 꿈에 본 것을 화가 김영화가 그림으로 옮겼다)

이어 양형은 교수는 ‘곤지를 제사하는 아스카베 신사’, 오카다(岡田典明) 선생은 ‘가와치(河內)의 도래인’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신사가 있는 하비키노 아스카마을의 백제와의 깊은 인연을 집중 조명한 것이다.

원래 예정에는 없었지만, 이날 나는 마지막 순서로 ‘공주-가라츠 무령왕 교류 10년’을 간단히 발표하였다. 하비키노시는 지역에 소재한 거대규모 전방후원분을 인근 지자체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작업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곤지왕 국제네트워크에의 첫 걸음

세미나는 억수로 퍼붓는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시종 들뜬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장소는 문화회관 같은 잘 구비된 강당이 아니고, 아스카베 신사가 있는 마을의 청과물 작업장이었다. 함석으로 조립한 허름한 작업장을 장소로 잡았는데도 준비된 간이 의자 150석이 모자라게 사람들이 구름처럼 운집하였다.

양 교수가 발표중에 곤지왕의 초상을 공개한 것은 세미나의 하이라이트였다. 곤지왕 초상은 소설가 정재수가 1999년과 2001년 곤지왕을 두 번 꿈에 만나고, 그것을 화가 김영화가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그 초상에서 나는 아들 무령왕의 얼굴을 보았다. 

양교수는 이제 내년 본격적 세미나를 다시 준비하면서, 하비키노와 한성과 웅진을 연결하여 부자가 상봉하는 시민간 교류의 네트워크를 꿈꾸고 있다. “우리는 곤지왕 국제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끝에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내년 2012년이 무령왕 태어나신 1550년인데, 공주에서는 무얼 하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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