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신 어머님은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 1504-1551)는 조선 선조 때 여성으로 본관이 평산(平山)인 신명화(申命和) 진사의 딸로 태어나 덕수(德水) 이씨(李氏) 이원수 공의 아내였으며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로 더욱 이름 높은 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는 가장 모범적인 여성,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추앙받는 분이기도 하다.

길지 않은 생애(47세)에 7남매나 되는 자녀를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고 가르쳤으며 특히 화가로서 시인으로서 향기로운 이름을 남긴 분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글을 배워 시, 글씨,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을 뿐더러 자수, 바느질과 같이 여인으로서 갖추어야할 솜씨도 남달랐던 분이다. 당호가 사임당(師任堂)인데 시임당(媤任堂) 또는 임사재(妊思齋)라고도 불렸다.

특히, 사임당(師任堂)이라는 당호는 중국의 역사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어머니상이었던 분이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였는데 그분의 당호가 ‘태임(太任)’이었는데 바로 그 태임이란 분을 스승으로 삼아 본받겠다는 의도로 사임당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일 것이다. 70년대 중반쯤이었을까? 시단에 데뷔하여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또래 시인들의 시를 뜨거운 눈빛으로 찾아서 읽으며 시를 쓴 사람조차 그리워할 때, 강원도 속초에 사는 이성선이란 시인이 문득 보고 싶어 무작정 길을 떠서 대관령을 처음 넘던 일이 있었다.

그 굽이굽이 아흔아홉 굽이라는 대관령 꼭대기에서 다시 문득 만났던 시가 바로 위의 시이다. 우람하게 솟은 ‘신사임당사친시비(申師任堂思親詩碑)’에 새겨진 글귀가 참 간절하고도 아름다웠던 기억이다.

시의 주인공은 지금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서울’로 가는 사람이다. 그 발길이 고적하고 외로울 수밖에는 없는 일. 자식이 부모님을 그리는 정은 본능과 같은 정이다. 그 무엇으로도 말리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신 ‘북촌’을 바라본다. 어찌 마음 아프지 않았으랴. 문득 가던 길 돌아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구름’이요 ‘저문 산’이다.

여기서 ‘저문 산’이란 굳이 저녁 무렵의 산이라고 고집할 것도 없는 산이다. 마음 구슬프고 애달프니 한낮이라도 눈앞에 들어오는 산은 '저문 산'인 것이다. 그야말로 심정적인 오브제(ovjet)로서의 산인 것이다.

이 시를 지을 때 신사임당의 나이는 38세. 어머님의 연세는 62세. 연로하신 어머님을 고향에 남겨두고 남편의 집인 서울로 향하는 따님의 마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다 할 것 없는 천륜의 마음이다.

작품 속의 따님은 그의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나는 이 시를 통해 오래전 젊은 시절, 지금은 세상에 살아있지도 않는 한 좋았던 시인친구를 그리워한다. 모든 옛날은 이렇게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고 뒤에 남아 돌아보는 사람만 애달픈 마음이란 말인가!

시의 원문은 다음과 같은데 시에 나오는 ‘임영(臨瀛)’이란 강릉의 옛 이름이고 ‘북평(北坪)’은 옛 강릉에 있었던 한 마을의 이름을 말한다.

또한 시의 원제목은 '대관령을 넘다가 친정을 바라보며'(踰大關嶺望親庭)이다. 이 시에 대한 번역은 여러 사람의 것을 접할 수 있으나 대관령 위에 서있는 시비에 새겨진 글을 옮겨 적어보았다. 

자친학발재임영(慈親鶴髮在臨瀛)/ 신향장안독거정(身向長安獨去情)/ 회수북평시일망(回首北坪時一望)/ 백운비하모산청(白雲飛下暮山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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