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개가 잘 짖는다고 해서 좋은 개가 아니고, 사람은 말을 잘 한다고 해서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 <狗不以善吠爲良 人不以善言爲賢. 莊子 徐無鬼>

그러나 사람의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이것은 말의 근원이 생각에서 나오며 생각은 마음의 본바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의 본바탕이 淺薄한 사람은 그 말이 천박하게 나오고 마음의 본바탕이 高尙한 사람은 그 말이 고상하게 나온다. 어찌 사람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는 말이 虛言이겠는가?
劉向의 『新序』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楚 莊王은 정치를 한지 3년이 지나도록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후궁에서 궁녀들과 놀기만 하였다. 이에 신하인 士慶이 임금에게 가서 두 번 절하고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후궁에 큰 새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새가 南山에 날아와 머물면서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지도 않으시니 무슨 연유입니까?”

楚 莊王이 말한다.

“이 새가 날지 않는 것은 깃털과 날개를 키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며, 울지 않는 것은 여러 신하에게 잘못된 행위가 없나 살펴보기 위함이요 따라서 비록 날지 않고 있으나 한번 날았다 하면 반드시 하늘을 찌를 것이요 또 울지 않고 있으나 한번 울었다 하면 반드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할것입니다.”

<士慶入再拜而進曰 隱有大鳥 來止南山之陽 三年不蜚不鳴 不審其故何也......王曰 此鳥不蜚以長羽翼 不鳴以觀群臣之慝 是鳥雖不蜚 蜚必沖天 雖不鳴 鳴必驚人>

士慶의 말 한마디로 楚 莊王을 임금다운 임금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실과 신뢰라는 것이 사람의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시의(時宜)에 적절한 말 한마디는 곧 그 사람의 마음의 본바탕인 道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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