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가자. 나뭇잎 저버린 숲으로.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

낙엽의 빛은 부드럽고, 그 소리 너무도 나직한데,
낙엽은 이 땅 위의 연약한 표류물.

해질 무렵, 낙엽의 모습은 서글프고,
바람이 불어오면 낙엽은 정답게 속삭이는데,

시몬,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

발길에 밟히는 낙엽은 영혼처럼 울고,
날개소리, 여인의 옷자락 소리를 내곤 한다.

시몬, 너는 좋아 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 되리니,
오라, 날은 이미 저물고, 바람은 우리를 감돌고 있다.

시몬, 너는 좋아 하니, 낙엽 밟는 소리를?

젊은 시절 내가 무던히 좋아했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프랑스 시인인 레미 드 구르몽(RAmy de Gourmont, 1858.~1915)이고, 또 좋아했던 작품이 그의 시 「낙엽」과 「눈」이다.  두 시 모두 ‘시몬’이란 사람에게 말을 거는 대화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몬’이란 누구일까? 고등학교 시절 모윤숙이란 여성시인이 쓴 『렌의 애가』란 장시집이 있었다. 모든 젊은 세대들이 열광적으로 사서 읽던 책이었는데 더러는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읽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렌’이란 이름이었고 그 주인공 애 터지게 부르고 또 부르는 상대 이름이 ‘시몬’이었다.

꼭 그런 주변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번역으로 된 시라지만 시가 매우 아름답고 곱고 깨끗했다. 순결한 소년이나 소녀의 속내를 살그머니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상큼하고 향기로웠다. 그냥 좋았다. 좋다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다.

모든 옳고 그름에는 이유가 있다. 옳은 것은 맞은 것이요 그른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좋고 싫은 것은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다. 그냥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 억지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좋고 싫음이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가난하고 썰렁하던 젊은 시절, 이런 시마저 내게 없었다면 얼마나 호젓하고 버림받은 것 같은 젊은 날이었을까? 이 시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슬픔과 외로움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살았는지 모른다. 그렇다! 위로. 우리는 위로가 필요하다.

고달프게 사는 사람일수록 누군가로부터 타인의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다. 이렇게 위로를 주는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 시인가. 크나큰 덕성을 지닌 시인가. 나 스스로 시를 읽는 사람(타인)에게 위로를 주는 시를 쓰고 싶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주는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런 시를 쓰고자 할 때 교과서 같은 시가 바로 구르몽의 두 편의 시였다.

감사한지고, 구르몽의 시편들이여. 이제금 나는 구르몽의 시들에게 경의를 담아 인사를 표해야만 할 것이다. 인용한 「낙엽」이란 시에 더하여 「눈」이란 작품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시몬, 눈은 너의 목처럼 희고/ 시몬, 눈은 너의 무릎처럼 희다.// 시몬, 너의 손은 눈처럼 차고/ 시몬, 너의 가슴은 눈처럼 차겁다.// 눈은 불의 키스에만 녹고/ 너의 가슴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가?// 눈은 소나무 가지에서 슬픈데/ 너의 이마는 밤 빛 머리칼 밑에서 슬프구나.// 시몬, 너의 동생 눈은 정원 속에 잠들고 있다./ 시몬, 너는 나의 눈, 나의 사랑. ― 구르몽「눈」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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