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펴도 함께 볼 사람 없고
꽃이 져도 함께 볼 사람 없는 봄
묻고 싶어요, 그대 어디쯤 계시는지요?
꽃이 피고 또 지기도 하는 날에.

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엮어
내 마음 아는 그대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봄의 시름 이를 물고 끊으려 했건만
어디선가 다시금 새가 슬피 웁니다.

꽃잎은 날로 바람에 시들어가고
그대 만날 날은 아득히 멀기만 해요
그대 마음과 내 마음 맺지 못하고
부질없이 풀잎 만 묶어봅니다.

견딜 수 있을까요, 꽃가지 가득한 꽃잎
안타까워라 그대 생각하는 마음이여
눈물이 주르르 거울 앞에 떨어지는 아침
그대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요….

모처럼 후배들의 시 모임에 나가보았더니 한 여성시인이 중국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중국의 시인 설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여성시인이 다녀온 곳은 중국 남부인 쓰촨성(四川省)의 청두시(成都市).

그곳에는 진장(錦江)이란 강이 있고 그 주변에는 망강루공원(望江樓公園)이 있고 그 공원에는 150종이나 되는 대나무가 심겨져 있으며 망강루란 건물이 따로 지어져 있고 그 옆에 설도란 여성시인이 물을 길었다는 설도정(薛濤井)이란 우물이 있으며 또 동상도 세워져 있고 만나는 사람마다 살도란 여성시인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해주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설도는 우리나라의 황진이쯤에 비견되는 시인으로 황진이보다 격이 높은 시를 썼다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은근히 부아가 솟았다. 그야 제 나라 글자인 한자로 쓰는 시이니까 그럴 것이 아니겠느냐 말했고 황진이는 우리말로 쓴 시조가 더 일품이라고 항변해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기곡 가운데 하나인 「동심초」란 노래가 바로 그 설도란 시인이 쓴 한시인데 안서 김억이 번역한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아슴아슴 들은 바 있기는 한데 ‘설도’란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기억으로는 신사임당이 원래의 시를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집에 돌아와 가곡집을 들쳐보았다. <신사임당 작사, 김안서 역사, 김성태 작곡>으로 되어있었다. 그러면 그렇겠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기록(악보)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실수가 다 있었을까? 처음 이 시가 한글로 소개된 것은 1943년 김안서가 번역한 번안시집 『동심초』(조선출판사)에 의해서였다.

(김안서는 김소월의 은사로 오산학교 교사였으며 일찍이 『오뇌의 무도』(1921년, 광익출판사)란 이름으로 서구시를 번역 출판한 이 방면의 선구자이다.) 그런데 김안서가 번역한 이 시는 설도란 중국의 여성시인의 오언율시로 된 「춘망사(春望詞)」 가운데 세 번째 수만 따로 떼어서 번역한 작품이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것이 번역시의 전문이다. 그런데 작곡자 김성태가 작곡과정에서 첨부해 넣은 것이 오늘날 노래의 2절이다.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도 덧없어/ 만날 날은 뜬구름 기약이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이 노랫말 가운데에서 백미는 아무래도 뒷부분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일 것이다. 마음이 벅차오르면서 아프면서 미어지는 듯한 감회를 주는 노랫말이다.

그렇다면 설도란 어떤 인물인가? 그동안 당시(唐詩)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한 번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기는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남성중심사회였던 과거의 한 시절이라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설도(薛濤, 770-832)는 중국 당나라 때 여성으로 어린 시절부터 시 쓰기에 재주가 있었으며 총명하고 인물이 뛰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어 기녀가 된 사람이다. 그러나 이름난 문인 백거이(白居易)나 유우석(劉禹錫), 원진(元稹) 등과 시를 나누며 사귀어 문명을 날렸다.

설도는 시재(詩才)만 빼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메이킹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설도전(薛濤箋)이란 아주 특별한 종이를 창안해 내어 그 종이에 시를 적어 많은 남성 시인들에게 편지처럼 돌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것이 또 당시에 크게 유행하는 바 되었다고 한다.

설도전이란 한지에 선홍빛 물을 들인 종이를 말한다. 설도 자신이 연꽃과 맨드라미 꽃잎을 빻아 천연염료를 내어 그것으로 물들인 짙은 분홍빛 종이가 바로 설도전이란 종이이다.

특히 원진과의 로맨스가 전설적이다. 원진과 만난 것은 설도의 나이 40세 때, 원진은 오히려 10년 연하로 30세였다. 연상의 여인, 연하의 남자로 만난 셈인데 두 사람은 이미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었고 선남선녀였기에 만나자마자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고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인간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그들의 사랑도 덧없이 짧게 부질없이 끝나게 된다. 좌천으로 지방에 내려와 있던 원진이 다시 중앙의 부름으로 성도를 떠나게 된 것.

떠나간 젊은 애인 원진을 두고 설도가 마음 아파하면서 기약 없는 만남의 날을 기다렸을 것은 뻔한 일. 여기서 바로 위에 적은 시와 같은 절창이 나왔을 법하다.

당나라 때 두 남녀의 사랑도 사랑이려니와 오늘날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할뿐더러 그런 이야기 자료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살려 관광자원으로 삼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가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 여인이 쓴 시를 우리나라 사람이 쓴 시로 알고 있었던 나 같은 한국 시인은 또 얼마나 한심한 인간이겠는가! 잠시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원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화개부동상(花開不同賞)/화락부동비(花落不同悲)/욕문상사처(欲問相思處). 화개화락시(花開花落時)//람결초동심(攬結草同心)/장이유지음(將以遺知音)/춘수정단절(春愁正斷絶)/춘조복애음(春鳥復哀吟)//풍화일장로(風花日將老)/가기유묘묘(佳期猶渺渺)/불결동심인(不結同心人)/공결동심초(空結同心草)//나감화만지/(那堪花滿枝)/번작양상사(翻作兩想思)/옥저수조경(玉箸垂朝鏡)/춘풍지부지(春風知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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