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걷고 있었지요. 늙은 거지 한 사람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눈물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게 이 불행한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요!

그는 빨갛게 부풀은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져 보았습니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마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어쩌나……'

그러나 거지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형제, 내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올해처럼 눈이 흔한 해가 있었을까? 아침에도 눈이 오고 점심에도 눈이 오고 저녁에도 눈이 온다. 그것은 오늘도 그렇지만 어제도 그렇고 그제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종일을 해를 보지 못하고 날이 저무는 날. 문득  떠오르는 글이 러시아의 소설가이며 시인이었던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 1818~1883)의 한편의 시이다. 그 작품은 다름 아닌 「거지」라는 작품.

이 작품은 소설가로 평생을 살아온 투르게네프가 생애의 말년에 산문시 형식으로 쓴 시이다. 고국 러시아를 떠나 파리 근교에서 살던 작가가 1882년 ‘조국 러시아와 러시아어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목적’으로 썼다는 바로 『산문시(散文詩)』란 책 속에 들어 있는 시이다.

이 시에서 시의 화자인 시인은 부유한 삶을 사는 상류층 인사로 등장한다. 그가 추운 겨울날 거리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그의 앞에  ‘늙은 거지’ 한 사람이 나타난 구걸을 청한다.

걸인의 모습을 통해 가난에 대해 비통한 마음을 가지면서 무엇인가 를 걸인에게 주려고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대신 손을 잡아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오히려 걸인은 그같이 자신의 손을 잡아준 것만으로도 ‘적선’을 받았다고 감사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시인이 돌아서면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거꾸로 그 걸인으로부터 더 많은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시인이 걸인에게 내민 손은 물건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눈에 보이는 선물이겠다. 그러나 걸인이 시인에게 준 선물은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정신적인 선물이겠다.

어쩌면 앞의 선물보다 뒤의 선물이 더 값지고 오래 가는 선물일 것이다. 이 시가 진정 세월의 간극(間隙)을 뛰어넘어 아름답게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적셔주는 것은 오로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한 걸인의 마음의 선물 때문일 것이다. 

투르게네프. 그는 러시아의 부유하지만 복잡한 지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방탕한 생활로 파산한 기병장교였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6세나 연상인 추한 용모에 탐욕적인 대지주(천명이나 되는 농노를 거느린)였다고 한다.

당연히 어려서부터 사색적인 소년이었으며 모스크바대학과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당대의 이름난 지성들과 교유하면서 평생을 지냈다.

부유하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한 사람들, 특히 농노 문제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며 진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도 가까웠다. 그래서 그의 소설작품에는 그 같은 작가의식이나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다.

투르게네프를 생각할 때 선뜻 떠오르는 단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말이다. 참으로 지금은 너나없이 살기 힘든 세상이다. 조금쯤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빈곤감, 박탈감에 시달리는 시대이다.

몸으로 춥고 가난한 것보다 마음으로 더욱 춥고 가난한 시절이다.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보는 마음의 등불이 필요하겠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들 마음도 조금씩 밝아지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지금이야 말로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사뭇 그리워지고 아쉬워지는 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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