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성(名古屋) 박물관과 역사적 교훈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한반도 침략을 도모한 도요토미 히대요시(豊臣秀吉)는 나고야성(名古屋)을 세워서 출병기지로 삼고, 임진왜란(壬辰倭亂)·정유재란(丁酉再亂 / 文祿·慶長의 役)을 일으켰다.

이것은 이전까지의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긴 교류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킨 불행한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이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나고야성과 전국에서 모인 다이묘(大名)들의 진영터는 ‘나고야성터 및 진영터’로서 일본의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고야성 박물관은 이런 대규모 유적보존정비사업의 중핵시설로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위에 한반도와 일본열도 교류의 역사를 조사·연구·전시·소개하며 앞으로의 우호교류를 추진하는 거점이 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층, 文祿·慶長의 役(임진왜란, 정유재란) 전시실에 기록된 내용을 옮겨보면 “문록·경장의 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神秀吉)에 의해 일으켜진 침략전쟁이었다. 

조선에서는 의병의 봉기 등을 계기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이를 격퇴했다. 그러나 전후 7년간에 걸친 이 전쟁은 조선 전역에 피해를 미쳤고 많은 혼란을 초래해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전쟁으로 인해 조선은 쇠퇴하고 부흥하는 데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로부터 도자기, 주자학, 활자, 인쇄 등의 많은 문명과 문물을 들여와 일본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시인하고 있다.

근, 현대의 한반도와 일본열도 부스에 이르러서는 “36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배는 조선반도의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서술하고 말미에는 “오랜 교류의 역사 속에서 우호적인 시대도 침략이라는 불행한 시대도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서로의 문화와 습관을 존중하며 솔직히 논의하면서 보다 좋은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자”는 글로 맺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처럼 자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찾는 박물관에 고해성사처럼 선조들의 잘못에 대하여 낱낱이 기록하여 공개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만들어 2세 교육을 시키고 있는 양면성을 가진 나라 일본.

진정으로 올바른 역사관의 인식을 바로하길 바라면서 쓰디쓴 소태 씹은 얼굴로 박물관을 나서는 일행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일본이 역사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참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키쿠치성과 백제인의 숨결

서기 663년 백제부흥을 위해 야마토조정이 파견한 군대가 백촌강(현재의 금강)에서 패하자 망명을 원하던 백제인 을 데리고 귀국하게 된다.

이 패전으로 인해 야마토조정은 신라와 당나라군대가 침공할 것을 대비하기위하여 북부 규슈부터 세토나이연안, 긴키 지방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 산성을 쌓아 방위력 강화를 꾀하였다. 기쿠치성은 그중의 하나이다.

일본 역사서의 기록으로 오노이성과 기이성 축조 시기와 비슷한 665년경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확실한 축조 년대는 알 수 없으며 그 후 군사시설기능의 약화로 관공서 기능을 가진 시설로서 약 200년간 존속되었던 것 같다.

다만 성의 외주가 절벽지형을 살린 보루선으로 에워싸고, 성 가운데 부분은 능선이나 골짜기를 감싸 안고, 골짜기의 출구에는 수문이라 불리는 돌담으로 만들어진 구조 등은 당시 백제의 기술과 공통되는 부분이 많고 2008년 기쿠치성의 저수지터에서 구리로 만든 백제계 보살입상이 출토된 점을 미루어 당시 함께 망명했던 백제인이 축성에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967년 이후 40년 이상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국영 공원화를 목표로 대단위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쿠치성을 보면서 공주의 공산성(公山城)도 백제문화와 역사의 성지로서 국가적인 차원의 대단위 복원 및 정비작업이 하루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운젠(雲仙)국립공원과 아소 산(阿蘇山)의 분화구

설레는 마음으로 아소산의 분화구를 만나러 숙소를 나섰다.

둘째 날과 셋째 날 이동간의 특강에서 “일본은 가라앉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 안전한 섬은 아니다”라고 누차 강조하신 최성길 교수님의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비치된 관광안내 설명서를 참고하니 지형과 화산에 대한 이해가 훨씬 수월했다.

운젠 공원에서의 경이로운 기억과 코끝을 자극하던 유황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셋째 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입구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수증기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선계(仙界)로 들어서나 싶었는데 척박한 땅의 바위 사이로 온천수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또한 유황 냄새가 공원 전체를 감돌고 있어 흡사 지옥과 닮았다는 일본 시마바라 반도의 운젠 지옥(雲仙地獄)의 첫 풍경이다.

운젠지옥 주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으며 크고 작은 지옥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팔만번뇌에 시달리는 인간에게 나쁜 생각들을 경계하라는 하치만지코쿠(八萬地獄), 수다스러움을 멀리하라는 참새지옥도 있다.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은 운젠지옥 중에서도 가장 압력이 높고 수증기 끓는 소리가 큰 곳으로 분출할 때 소리가 땅 아래 망자들이 울부짖는 절규처럼 들린다고 해 이름 지어졌다. 350년 전에 개종을 거부한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하고 사형시킨 진짜 지옥으로 이용되기도 해 성지순례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까지 화산폭발을 했던 아소산은 세계 최대의 칼데라로 이루어진 화산이다. 아소의 폭발은 3천만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0만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로 만들어진 것이다.

나카다케, 다카다케, 네코다케, 에보시다케로 이루어져 있는 복식화산으로 아소국립공원이 주요부를 형성하며, 기리시마[霧島] 화산대의 북단과 하쿠야마산[白山] 화산대가 마주치는 지점에 있다. 

홍적세 이후 자주 열운상(熱雲狀)으로 분출한 아소 용암은 안산암류가 주체이다. 중앙화구의 나카가쿠산[中岳]은 현재도 활동 중이며, 그 화구(火口) 구경이 아소산 관광의 백미(白眉)이다.

100년이 넘은 고택에서 만난 야메차(八女茶)

1191년(建久2年) 에이사이선사(榮西禪師)가 송(宋)에서 차의 종자를 갖고 돌아와 후쿠오카시 남쪽 세부리산(背振山)의 레간지(靈嚴寺)등에 씨앗을 뿌린 것이 차업의 시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1788년(天明8年)에 江戶(동경의 옛이름)와 오사카(大板)에 진상용 차를 납품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때부터 야메차(八女茶)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야메 지방은 냉량다우의 혜택을 받은 땅으로 상급 차 생산에 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기온이 냉량하고 안개가 짙은 산간지역에서 생산되는 교쿠로는 녹차 중에서는 최고급의 차로 질과 양 모두 일본 제일을 자랑하고 있다. 

일행은 점심을 곁들인 전통 차 체험을 하기위해 100년이 넘은 일본식 전통가옥의 시음장에 도착했다. 반갑게 맞이한 나카시마(中島尙次)씨와 관계자의 환영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니 목조로 건축된 일본전형의 2층 구조로 된 전통가옥이 눈에 들어왔다.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으로 식사를 마치고 말차 시음체험을 하였다. 2층에 오르니 단아하게 잘 가꾸어진 일본풍경이 창밖에 정겹게 다가왔다. 다다미위에 가지런히 정열 된 방석에 빙 둘러 앉으니 기모노차림의 여인들이 무릎을 꿇고 단정한 모습으로 차 마시는 방법을 설명하고 차를 권한다.

우선 향을 음미하고 차 한 모금을 입안에 넣으니 차향이 후각을 자극하며 목구멍을 따라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순간 가부좌한 자세를 곧추세우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옛날 일본사무라이들이 느꼈을 그 기분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시음을 마치고 내려오니 집안이 시끌하다. 후쿠오카에서 한글을 배우는 모임의 회원들이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현지인과의 대화를 나누고 싶어 찾아 왔다며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마치 집단 소개팅에 온 느낌이었다. 이름에 나이, 직업 그리고 일상적의 대화들이 느릿한 어조로 진행되었다. 모두 신기한 듯 총명한 눈망울로 대화를 나누었다. 자그마한 노트를 꺼내 연신 메모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쾌감을 느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자, 아자~~~~~ 나의 조국, 대한민국 파이팅!”

4박5일의 일정을 마치며

닷새간의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모두의 얼굴에 고단함이 배어있었지만 희망에 부풀고 만족에 찬 푸근한 미소가 흘렀다. 돌아오는 길에 각자의 방문소감이 한 순배 돌았고 아쉬움과 바람의 소회들을 미련 없이 토해냈다. 모두 관광공주를 위한 금쪽같은 내용들이었다.

“공주를 떠나보면 공주가 보인다”고 했던가? 

한국을 떠나보니 한국이 보였다. 백제를 떠나보니 백제가 보였다. 

일정동안 내내 고민했던 관광공주의 해답은 역시 무령왕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진정 무령왕의 치명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보자.
사요히메를 설명하는 김현구 교수
답사자들이 아소산 화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고택에서 차 시음을 하고 있는 최창석 교육장
아소산 숙박지 앞에서 심종훈 전 부시장과 부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쿠치성
나고야성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최창석 교육장과 이까와유까(백제문화제 홍보대사)
아소산
야메시에서 차 시음을 하고 있는 김동일 의원과 답사자들
운젠온천
야메시에 있는 100년이 넘은 전통가옥
기쿠치 성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답사자들
아소산 분화구를 촬영하고 있는 김동일 의원
최성길 공주대 교수와 오영익 전 농협공주시지부장이 아소산분화구를 촬영하고 있다.
전통가옥에서 이종태 교수와 신홍현 전 공주시 국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와토야마고분에서 최창석 교육장과 박기영 의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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