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美言可以市, 尊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故立天下,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KAL858機 폭파범 김현희는 6월 19일 TV朝鮮에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前 政權에서 이 사건을 가짜로 만들어 조작하려고 하였다.”

歷史라고 하는 것은 때지 않는 굴뚝에 연기가 나오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중기의 朱子學과 陽明學의 대립이 그렇다. 朱子의 卽物窮理를 心卽理, 知行合一, 良知의 논리로서 체계화 시킨 것이 陽明學이다.

1521년 우리나라에 陽明學이 들어온 이후 李滉은 불교적이라고 배척하였으며 이후로도 柳成龍, 朴世采 등이 이에 동조하였다. 또한 1623년 인조반정 이후로 정권을 주도한 서인과 그 후예인 노론은 朱子學을 唯一思想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양명학파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주자학의 무력함을 자각하여 실용적인 실학과 함께 양명학을 연구하였다.

이후 조선양명학은 李卓吾, 李睟光, 許筠, 朴趾源으로 이어졌으며 鄭齊斗(1649-1736)는 良知體用圖를 李忠翊(1744-1816)은『椒園遺稿』에서 假說을 주장하였다. 李忠翊은 宋時烈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孔孟만이 세상을 구제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모든 문제의 귀결을 孔孟에게 맞추려고 하며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지 못하고서 孔孟의 하는 바를 본받아 배우며 자신들은 오직 못났다고 두려워한다. 이들은 이러한 朱子學으로 온 세상 사람들의 입을 막고 언론의 자유를 속박할 뿐만 아니라 항의도 할 수 없게 하였다.”

李建芳(1861-1939)도「原論」,「續原論」에서 이렇게 비판한다.

“宋時烈은 趙光祖, 李滉, 成渾, 李珥의 뒤를 이어 程朱를 숭상하여 반대론자를 물리쳤다. 당파를 만들어 자기에게 붙지 않는 자를 배척하여 그 말이 조금이라도 다른 자라면 반드시 朱子를 끌어다가 그 말을 꾸며서 주자를 배반한 죄인으로 몰았다.”

이른바 北韓이 主體敎라는 종교로서 국민을 통제하듯이 조선은 朱子敎라는 사상 독재하에 백성을 통제 하였던 것이다. 조선이 망하고 日帝에 國權을 빼앗기고 6.25전쟁을 불러온 것도 모두 사상의 독재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에도 국민의 생명과 존엄성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가의 사상독재와 꼼수행동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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