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산국이었던 ‘울릉도’와 ‘독도’

지금은 아름다운 우리 섬인 ‘제주도’와 ‘울릉도’가 옛날에는 독립된 나라였으니 남쪽 바다 큰 섬 제주도(濟州島)는 탐라국(耽羅國)이었고 동쪽바다 울릉도(鬱陵島)와 독도(獨島)는 우산국(于山國)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우산국’의 이야기는 이번 호부터 옛날 ‘우산국’이었던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와 민속을 옛 문헌과 현지답사를 통하여 엮어 나갈 것이다.

▲ 1980년 오성일(吳性鎰)을 울릉도 도감(島監)으로 임명한다는 임명장(敎旨) -독도박물관 소장-

6세기 초 무렵 동해안의 두 섬인 무릉(武陵=울릉)과 우산(于山=獨島)에는 자그마한 섬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 고대 조선에서의 부족국가의 하나였던 ‘우산국’이었다.

이 섬나라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생활방식은 오직 바다만을 상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우산국의 본거지인 무릉(울릉도)이 바로 주생활의 본거지였다면 우산은 어물의 수획지 역할을 했다.

두 섬은 우산국인들의 생존의 공급지인 동시에 생거지로 이용되었기에 부족민들이 힘을 다하여 이곳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획득한 어류·해산물은 나라와 생명을 지키는 기본이 되었다.

▲ 팔도총도(八道總圖)] 오른쪽에 울릉도와 우산도(于山島-獨島)를 잘못 표기하고 있음 -독도박물관 소장-

이러한 관계로 본거지인 무릉(울릉)을 지키고 우산(독도)을 활용하는데 있어서는 다른 민족의 어떠한 침략도 없는 독점적 상황에서 통괄하여 왔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점차 우산국 어민들 가운데는 육지까지 왕래하며 다소간의 견물교류를 넓히며 교환도 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바다 가운데 고립된 섬사람이면서도 직·간접으로 육지의 본토민과 왕래가 빈번해졌음을 몇몇 옛 문헌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 고려사 권 58 울릉도 조(條)

고려사 권 58 울릉도 조(條)
「‘우산과 무릉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았으며 바람이 잔잔하여 청명한 날씨에는 서로 바라볼 수가 있었으니...’」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팔도총도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 조
「‘하나는 무릉이며 하나는 우릉(羽陵=(于山)이다. 두 섬은 현의 정동해 가운데 있다.’」
이와 같은 옛 문헌들에서 오늘의 울릉도와 독도는 밝은 날에는 본토인 강원도의 울진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옛 ‘우산’ 또는 ‘익릉’이라 했던 오늘의 ‘독도’를 저희들의 섬이라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끔찍한 것은 그들이 좁디좁은 섬나라에서 살다보니 별별 욕심을 다 부린다.

▲ 하늘에서 본 ‘독도’

저희나라 북으로는 북해도와 러시아 사할린 사이에 있는 ‘쿠랄열도’의 영유권을 러시아와 겨루려한다. 저희들 일본에서는 서쪽이 되는 ‘독도’가 또한 제 것이라고 이름도 ‘다케시마 (竹島)’로 부르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고 한다.

▲ 일제가 동양 3국 러시아, 한국, 중국의 작은 섬을 제 것이라 주장함.

다음호에는 우산국이 어느 때부터 우리나라가 되었는지? 줄거리를 이어 나가기로 하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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