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仍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손바닥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우리의 기계문명이 可히 상상할 수 없는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반면에 우리의 정신문명은 아직도 幼稚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禪家에서 말하는 道(진리)는 스스로 깨닫고 自得하지 않으면 안 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역사에는 인류의 師表가 되는 經典이 있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르침인 古典이 있다.

다시 말하면 고도의 정신문명은 오직 말과 글로서 전달할 수 있는 것인데 깨달음을 성취한 先覺者의 언어전달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깨달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언어 구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莫言(Moyan)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미 그의 작품이 번역되어 西歐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湖南大 최병현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교육과 학문을 하면서 헛된 학문을 해왔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외국에 나가서 까지 공부하고 또 영문학자가 그렇게 많아도 고도의 정신문명을 기록한 우리의 古典을 번역할 인재를 구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우리의 古典인 『三國遺事』를 번역하려 하여도 漢學에 달통해야 하고 더불어 古代中國의 思想과 十三經, 漢籍에 통달해야 한다. 이를 다시 영문으로 번역하려면 古代西歐思想과 사회, 문화, 哲學에 達通해야 함은 물론이다.

다만 우리의 학문은 영문학자는 영어만 잘하는 사람이요 역사학자는 역사만 잘 아는 사람이고 국문학자는 국문만 잘하면 되는 것 인줄 알고 있으니 모두가 헛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道(진리)는 스스로 깨닫고 自得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도 깨달음의 일부이다.

우리의 정신문명이 幼稚한 단계를 벗어나 고도의 정신세계로 進入하려면 우리 학계는 한국의 문학전통과 古典에 대한 自負心과 더불어 세계 언어로의 번역능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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