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교육나눔 실천을 위한 해외교육봉사 체험수기

단장: 최창석(공주교육지원청 교육장).  
ADRF 간사: 박한웅
단원 : 조성은(서산중 역사), 선덕금(서산중 영어), 오세종(서산고 상업) 4. 김종승(서산고 국어), 이호영(서산고 체육), 조성국(대산고 윤리), 임명판(대흥고 한문), 윤기자(송산중 국어), 서미라(당진중 수학), 김순길(온양중 국어), 조진행(대천중 미술), 채종순(천안여고 가정)
일시: 2012년 1월 21일~ 1월 31일( 9박 11일)
장소: 네팔 카트만두 부근 아루노다요, 부미마타 학교, 포카라 부근 아룬조티 학교

제1일(1월 21일)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야심찬 출발

충남교육청은 그동안 추진하던 해외 배낭 연수를 교육봉사형 체험연수로 변경해 두 번째로 교육봉사형 해외 체험연수를 추진하고 있다.

▲ 인천공항에서 출발 전 파이팅을 외치다.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저개발 국가 대상의 교육봉사를 통하여 국제적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나눔과 배려의 교원국외연수 문화를 선도할 뿐 아니라 저개발국의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고양시키고 성장 동기를 부여해 보자는 큰 뜻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에서 충남교육청이 최초로 시도하는 바람직한 해외 체험 활동이다.

정년을 몇 달 앞둔 나이든 교육장이지만 이번이 교육계의 마지막 봉사다. 어려움이 있어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충남교육청의 담당 장학사에게 내 뜻을 전달했고 담당 장학사는 고되고 힘든 일이라며 지난여름 인도네시아의 봉사 팀들은 하도 고생해서 체중이 몇 kg씩 빠져왔다며 교육장님이 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란 말로 다시 한 번 의사를 타진해 왔고 나는 여행과 고생은 몸에 익은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내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꼭 선정되었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다행히 장학관과 과장의 승인과 교육감님의 허락으로 젊은 교감이나 장학사가 단장이 되는 교육봉사 단장에 선정이 되었다.

▲ 홍콩 공항에서 휴식 6시간

 교육 봉사를 출발하기 전에 우리는 네 번의 미팅을 가졌다. 12월 일의 공식 미팅에 이어 1월 4일 공주교육지원청의 모임, 각 팀별 준비 모임, 그리고 출발 일주일 전 온양중학교에서의 최종 점검 모임.

나는 특히 둘째 모임에서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일반 봉사 활동이라면 해당지역에 가서 노력봉사나 계몽활동을 하면 끝나지만 우리는 명색이 교육전문가이고 타이틀이 교육봉사이다. 다른 것은 부족하더라도 교육활동 만큼은 철저히 하자.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준비하여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지난번 네팔 팀을 이끌었던 황석연 장학사를 초청해서 6개월 전의 경험을 들었고 나는 특히 우리 단원들에게 수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와 같은 나의 전략과 우리 단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수십 개의 지도안이 작성되고 그 중에 마술 수업, 염색, 연날리기, 한국이해 수업 등 외국에서 하기 좋은 적당한 수업 주제가 선정되고 수업자가 결정되었다.

▲ 전통적인 네팔여인의 짐 나르는 모습

 이에 그치지 않고 메인 수업자 외에 보조 수업자를 두 명씩 두어 수업 내용을 확실히 공유하고 주 수업자를 도와줄 수 있게 배정하였다.

그 다음은 수업에 따른 준비물 점검이다. 철저히 준비물을 체크하고 구입하며 ADRF(아프리카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 AfricaAsia Destitute Relief Foundation)에서 지원 받을 것은 받고 부족한 것은 우리의 공동경비에서 구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업무인 촬영, 보도자료 작성, 보고서 작성, 공동경비 관리, 물품관리 등의 업무를 분담하였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모든 일의 성패는 철저한 준비에 달려있다. 이와 같은 신조로 네 번의 모임과 준비 그리고 점검이 이루어진 후 우리는 출발일인 1월 22일 새벽 6시 인천공항 H카운터에서 만났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반가운 인사를 마치고 탑승 수속으로 들어갔다. 월요일인데도 공항은 새벽부터 엄청 붐비었다. 방학 때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일반인들이 해외로 떠나는 것이다. 정말로 한국의 국력이 실감된다.

▲ 수업 전 사전회의 중

 우리의 짐은 화물 20KG× 14명(ADRF 직원 박한웅 간사 포함)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현지의 아이들에게 책가방, 의류, 학용품, 체육기구 등 하나라도 더 많이 주려고 개인에게 후원을 받거나 학교에서 지원을 받은 물품을 다 싣다보니 용량이 초과되었다.

할 수 없이 몇 사람의 짐은 기내로 들고 들어갔는데 이때에 수업준비로 가져간 가위나 칼 등이 압수되어 수업에 차질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일로 우리는 항공기 출발 5분전에 간신히 홍콩 행 캐세이 패시픽(CX0415)항공에 탑승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은 빈 좌석이 거의 없이 꽉 찼다. 10시 경 고도 11,000m 역풍을 거스르며 시속 730Km로 남서진하여 12시 30분 경 홍콩에 도착하였다. 이곳 홍콩시간으로는 11시 30분 우리와 1시간의 시차가 난다.

옛날 영국의 아시아 점령기지요 해운 항로의 요충지인 홍콩이 이제는 항공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그 대표적인 항공사가 캐세이 패시픽이며 우리를 태우고 카트만두에 가는 드래곤 에어도 캐세이 패시픽의 자회사라 한다.

▲ 아루노다요 학교. 교문도 운동장도 없음

 카트만두행 드래곤 에어를 탑승하기위해 우리는 점심과 휴식으로 5시간가량을 보낸 후에 탑승하였고 비행기는 카트만두를 향하여 서진하였다. 10시경 비행기가 하강하기에 항로 지도를 보니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르에 착륙하는 것이다.

세계의 최빈국이라서 그런지 대도시가 고층빌딩을 거의 볼 수 없고 야간의 불빛이 초라하기만 하다. 다카르의 기온은 섭씨 17도, 소수의 사람이 내리고 그리 많지 않은 승객이 탑승한 후 다시 카트만두로 향하였다.

비행기 안에는 한국에서 같이 출발한 굿네이버스 봉사단이 탑승하였는데 알아보니 경기도교육청 소속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었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세계 유일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신한 코리아의 위상을 알만하여 가슴이 뿌듯하였다.

▲ 아루노다요 환영식

 홍콩시간 12시 45분 네팔 현지시각 10시 30분경 카트만두의 트리뷰반 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 시골 역 같이 컴컴한 입국장, 그리고 어두운 광장에서 만난 미니버스에 탑승하여 숙소로 향하는데 오른쪽 달빛에 뭉게구름처럼 뿌연 연기가 피어나는 곳을 물으니 화장장이라 하며 차는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 호텔로 향하였다.

오는 도중 생각이 우리나라처럼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최소한 아스팔트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삽시간에 물거품이 되고 우리는 터덜거리는 비포장도로 그리고 골목골목을 돌아 호텔 문라이트에 12시 경에 도착하였다. 짐정리 후 이곳 시간 1시경에 잠이 들었다.

제2일(1월 22일) 환경이 극히 열악한 빈민가의 아루노다요 학교

 

아침 6시 30분에 기상. 호텔 밖을 나가 조깅. 날씨는 쌀쌀하였고 이곳 사람들은 청소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도심이지만 열심히들 청소하고 한쪽으로는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 열심히 한글공부

 그 중 일부는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가기도 하였다. 호텔에서 아침식사 후 오늘 교육봉사 준비 전체회의를 진행하였다. 수업주무자의 전반적인 수업내용의 설명과 더불어 보조 교사의 할일, 통역 업무 등을 꼼꼼하게 점검한 후에 아루노다요 학교로 향하였다.

10시 경 도착한 아루노다요 학교. 창고 같은 건물 2, 3층에 방이 6개 쯤 있는데 이것이 교실의 전부이다. 교문도, 운동장도 없고 건물 벽에 학교표시만 간단히 되어있는데 교실을 들여다보니 책상과 긴 의자 그리고 나무에 검정 페인트로 칠한 칠판이 교육환경의 전부이고 교실 벽은 블록으로 쌓았는데 구멍이 숭숭 나있었으며 창문과 교실문도 없었고 복도에서 문지방을 넘으면 교실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활기차게 웃으며 “나마스떼, 나마스떼”하며 우리를 환영하였다. 먼저 환영식이 있었다.

▲ 태극기 그림 자랑

 띠까를 붙여주고 흰 천을 둘러주는 것이 이들의 극진한 환영행사이다. 저학년은 마술수업, 중학년은 한국문화 중 젓가락집기, 한글, 태극기 그리기 등 그리고 고학년은 수건 염색 등의 수업을 하였다.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나름대로 잘 따라주었는데 색연필을 깔 줄 모르는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찡하게 아프기도 하였다.

바로옆 건물은 사립학교라는데 아이들이 이쪽 아이들과는 판이하게 나름대로 부티가 났고 쉬는 시간에 나와 노는 모습을 보니 모두 교복을 착용하였으며 저희들끼리 제기차고 장난하는 모습이 우리의 아루다노요 학교 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 복도에서 연날리기

 점심시간 우리가 준비한 맛있는 도시락을 아이들에게 배부하니 아이들이 너무너무 좋아한다. 이 학교 아이들에게 우리가 주문해준 도시락은 일 년에 몇 번 먹어보지 못하는 특식이란다.

아이들과 같이 도시락을 먹고 장난치며 놀다가 오후 수업. 수업은 4시경에 마치었고, 우리 선생님들의 수업은 철저한 준비와 선생님들의 열정으로 대성공이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선생님들도 신이 났으며 태극기 검사를 할 때는 자기가 서로 잘했다고 자랑하는 모습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무르 처(잘했어요)”를 연발하였다. 이곳에서 학용품, 의약품 등을 전달하고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학생들과 작별하였다. 호텔로 가는 길에 카트만두의 중요 관광지를 보기 위해 걸어서 이동하였다.

▲ 종이접기 성공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더르바르 스퀘어. 광장 주변에 사원들과 목조 건물이 줄지어 잇고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가면 역대 왕들의 초상이 있고 목조 건물의 맨 위층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하는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데 우리는 시간상 입장하지 못하고 건물 옆을 지나갔다.

구왕궁 남쪽에 목조 창틀의 조각이 뛰어난 사원이 쿠마리 사원인데 비둘기 떼들이 엄청나다. 이 건물 안에는 처녀 신 쿠마리의 화신으로 뽑힌 소녀가 살고 있단다. 이 소녀는 파탄에 사는 네와리족의 여자아이 중 4~5세 때 선발되어 초경이 있을 때 자격을 잃는다.

▲ 색연필을 깔 줄 모르는 안타까움. 선물증정
평소에는 바깥에 나갈 수 없고, 1년에 일곱 번 있는 축제 때 나가서 살아있는 여신역할을 한다. 여신의 가족에 약간의 돈을 주면 여신이 이층에서 얼굴을 내민단다. 우리 일행 중 한 여선생님이 그 아이 덕분에 가족은 밥을 먹고 살겠지만 그 아이는 감옥과 같은 생활에서 얼마나 고통 받을까 하며 안타까워하는 애기를 들었다.

 광장을 돌아서 번화가 쪽으로 가면 중세의 모습들을 간직한 많은 건물들과 일용품,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즐비한 상점들이 나타난다.

인파가 엄청나고 한국인들을 비롯한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띄는 카트만두다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지역이다. 저녁 식사 후 호텔 부근의 타멜 지역을 돌아보며 간단한 지도와 네팔 책자를 구입하고 들어와 쉬었다.

▲ 카트만두다운 도시 구왕궁가

 

▲ 구왕궁 거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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