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교육나눔 실천을 위한 해외교육봉사 체험수기

제3일(1월 23일) 히말라야 고원지대에 있는 부미마타 학교

▲ 우리를 환영하는 교감과 선생님들

아침식사 후 숙소인 문라이트 호텔을 출발 카트만두 시내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차는 향하였다. 학교 운동장이 보이고 먼지와 안개 속에서도 사람들은 조깅을 하고 기마병 일대가 지나가고 차선이 없는 도로를 차들은 쌩쌩 잘도 달린다.

왼쪽으로 설산들이 언뜻 언뜻 보이고 곳곳이 붉은 벽돌 공장에서 품어내는 흰 연기가 보이는데 이곳의 건축자재는 대부분이 황토로 구워낸 붉은 벽돌이었다. 

▲ 전망이 좋은 따망족 이장댁

카트만두 분지를 벗어나 언덕위로 올라가며 다랭이 논들이 산꼭대기까지 줄지어 있다. 분지를 벗어나 산악으로 접어드는 입구에서 소형버스는 더 올라가지 못하고 산악용 지프차 겸 짐차로 바꾸어 탔다.

근처에 멀티국제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공기도 깨끗하고 경관이 좋아서인지 시설이나 각종 환경이 양호한 것 같고 우리 한국 학생들도 있는 네팔에서 10위안에 드는 고급국제학교란다.

차는 경사 45도 이상의 가파른 언덕을 20~30분 올라가는데 짐칸에 실린 우리는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쓰며 짐칸의 쇠파이프에 매달려 이동하다가 산 정상쯤 와서 잠깐 쉬었다.

▲ 환영식의 따망족 전통무용

그곳의 전망이 히말라야를 한 눈에 바라보는 좋은 위치였고 그곳이 이곳 따망족(고산족)마을의 이장님이 살고 있는 집이라 하며 이곳에서 네팔의 전통주인 락시를 몇 잔씩 대접받았다.

네팔 전통주 ‘락시’는 곡식을 증류한 증류 술인데 거기에 물을 많이 타서 그런지 우리나라 소주보다는 훨씬 약한 술로 대략 10여도의 도수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학교는 그곳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어서 지프차도 못 올라감으로 우리는 걸어서 학교로 이동하였다.

▲ 레삼 삐리리 합창

학교 입구에 들어서니 눈망울이 유난히 큰 네팔의 소년 소녀들이 도열해서 박수로 환영을 하고 우리에게 이곳의 꽃목걸이를 목에 걸어주고 빨간 무궁화꽃 모양의 꽃 묵음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환영식과 결연행사, 기념품 증정이 있었다.

달밧 전통적인 따망 의상을 입고 춤추는 아이들이 모습이 우리를 위해 많은 연습을 한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도 그동안 준비한 노래로 화답하였는데 우리들의 노래는 네팔 민속노래 우리나라로 하면 아리랑 쯤 되는 노래 ‘레삼 삐리리’였다.(레삼 삐리리 레삼 삐리리 우레라 자우키 다라마 번장 레삼 삐리리-레삼 삐리리의 후렴구가 반복되는 경쾌한 노래)

▲ 부미마타 학생들의 점심.

점심식사. 우리와 자매결연학생들은 팩 음료도 지급하는 비교적 고급 식단인데 일반학생들은 접시하나에 음식을 담아주는 이곳 음식 ‘달밧’이었다. 일반 학생들에게 미안해서 ADRF에게 항의식으로 애기를 해보니 일반 학생들도 그 정도도 훌륭히 만족하는 특별행사이니 이해해 달라는 말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남과 비교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아무리 풍부하고 가진 것이 많더라도 남과 비교하고 상대적인 빈곤을 느낀다면 우리나라처럼 아무리 잘 살아도 더 가지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 쉬는 시간 제기차기

요 근래 나온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들인 삼성 일가의 재산 다툼이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생각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따망족 사람들 이들이 사는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식사 후 마술, 조약돌 그림, 한글디자인 등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들 열심이었고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다.

▲ 네팔제기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고무를 묶어 만든 제기차기에 열심이었는데 남자 아이들보다 여자 아이들이 제기차기를 더 좋아한다. 이곳도 우리나라 초등학교처럼 여자 아이들이 더 드세고 장난치면서 남자 아이들을 때리는데 남자 아이들은 그냥 웃기만 한다.

3시 반 경 수업이 종료되고 자매결연 학생과 같이 만나 대화하고 자매결연 학생 집으로 이동하였다. 나의 동생은 수라즈 따망(수라즈는 우리말도 태양 Sun) 14살의 잘 생긴 사춘기 소년이다.

▲ 조약돌그림 수업

나와 한조인 임명판 부장의 동생은 아서 따망, 12살의 개구쟁이 소년으로 장난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니다. 늘 장난치고 우리를 즐겁게 해준 친구였다. 오늘은 우리 4명이 아서 따망 집에서 묵기로 하였다.

학교를 떠나 산길을 오르내리며 가는데 한 시간 이상을 가는 것이다. 하룻밤 잘 것, 선물 등을 지고 가는데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수라즈 따망에게 큰 짐을 들려 앞세우고 우리는 천천히 아서 따망의 집으로 향하였는데 산꼭대기 바로 아래의 집으로 전망이 무척 좋았다.

▲ 열악한 학교 수돗물

해질녘에 도착하여 띠까 의식을 하고 우리를 허름한 창고 같은 곳으로 안내하는데 그곳이 우리가 머무는 숙소였다. 한쪽은 볏집 등이 쌓여있고 흙벽은 신문지도 바르지 않은 황토벽 그대로이며 바닥에 우리식 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깔면 그대로 잠자리가 되는 곳이다.

6시 경 이모, 할머니, 사촌 등 많은 식구가 놀러왔고 마침 가지고 간 한국과자, 캔디, 사탕 등을 선물하고 천장에 야광 스티커를 같이 붙여주었다.

▲ 아서 집 현관과 꽃

이곳은 전기가 수시로 끊기고 밤에 뚜렷한 불빛이 없어 아이들이 해만 지면 컴컴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해서 야광스티커라도 천장에 붙여주면 약간이라도 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양한 야광스티커를 한국의 문구점에서 구입해 가져왔는데 이것을 붙이고 불을 꺼보니 약간의 효력이 나타나는 것 같고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며 놀러온 아이가 “더 없어요?”라고 물었을 때 미안하게도 더 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또 스머프 맞추기 퍼즐도구를 가지고 맞추기 게임을 하면서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었다.

▲ 아서 따망의 침대

7시 경에 이집 가장 어부다 따망이 돌아왔고 우리는 이곳 전통주 ‘락시’를 몇 잔 나누어 마셨다. 이 집 주인 어부다 따망은 한참 전에 용병으로 시리아 등을 다녀온 군인 출신이란다. 그래서 세계 각 나라에 대한 얘기도 나누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를 나누었다. 또 이 산 정상부근에 사는 고산족 따망의 인구가 대략 어느 정도인가 물으니 약 1,100여명이 된다고 얘기해 준다.

매너가 좋아서 자기 집을 다 구경시키고 우리더러 자기 집 안채에서 잘지 현재 머무는 사랑채에서 잘지를 묻기에 현재 있는 곳이 편하다고 그곳을 숙소로 달라고 말해 짐을 푼 곳에서 자게 되었다. 10경 침상에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 아서네 집에서의 퍼즐게임 중

제4일(1월 24일) 히말라야 설산을 끼고 등교했던 행복한 날

새벽 4시 반 잠에서 깨어났다. 내 어린 친구 동생들이 깰까봐 조심스레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나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남녘의 오리온자리 그리고 밝은 별 시리우스 등 많은 별들이 찬란하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그리고 멀리 산 아래에 민가의 불빛이 반짝인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의 장관이었다.

스마트폰에 별자리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왔으면 더 별자리를 많이 찾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침 7시 창문(유리창이 아니라 나무로 된 문)을 여니 밝은 태양과 함께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이 보인다.

▲ 아서 따망의 집과 온가족들. 작별인사.

기온은 차가운데 간밤에 추위를 느끼지 못한 것은 두터운 흙벽돌집이라 냉기를 잘 막아주고 보온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밖으로 나와 보니 살짝 살얼음이 내렸다. 세면을 하는데 화장실에 졸졸졸 수도에서 흐르는 물을 우리 그릇으로 밥 그릇만한 곳에 담아 놓았다.

그 물로 세수하고 면도하고 간단히 발도 닦느라 엄청 애를 먹었다. 산꼭대기이다 보니 특히 물이 귀하고 이곳 사람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어찌 사나하는 걱정이 되었다. 정말로 귀한 물이며 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 따망 가족의 지극 정성한 인사

운동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하고 들어와서 아침 상 들어오길 기다리는데 아침을 하는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그러다 8시 10분 경 따뜻한 홍차와 비스켓 그리고 사과 몇 쪽을 들여오는데 아이들것은 없다. 이곳은 아침이라는 식사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특별한 손님이라 먹을 것을 마련하였지만 아이들은 아침을 안 먹는 것이 습관화 된 것 같았다. 아이들과 같이 따뜻한 홍차 그리고 비스켓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아침을 대신했는데 비스켓은 유난히 맛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아열대이고 기온이 2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기에 흙벽돌집에 옛날 우리 농촌처럼 빈대, 벼룩 등 벌레가 많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벌레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때가 건기이고 겨울이라 밤에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서 그렇지 않은가 추측해보았다. 파리, 모기 등도 별로 보지 못하였다.

▲ 아이 손잡고 등교

아침 8시 20분 경. 작별인사를 하는데 티까를 이마에 붙여주고 노랑꽃(자이) 목걸이를 걸어주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아침 일찍부터 아서 따망 어머니가 울타리에 있는 꽃을 정성스럽게 딴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정말로 성의 있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아서 따망의 아버지가 두 손으로 인사하며 정성스레 돈을 건네주는데 네팔 루피로 10루피와 5루피 짜리였다.(우리 돈으로 10루피는 대략 130원 정도의 돈) 그런데 그 돈이 처음 쓰는 아주 깨끗한 지폐였고 10루피 5루피 사이에 노란 자이 꽃 3송이를 싸서 건네주는 것이다.

▲ 설산을 옆에 끼고 행복한 등교

따카는 우리의 행운을 비는 것이고 이 돈은 먼 길을 가는 손님에 노잣돈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정감 있는 행동들에서 정말 감동이 되었고 “던네밧(감사합니다)”를 연속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8시 반경.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아서 따망의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학교로 향하였다. 산꼭대기 몇 개를 건너 학교 건물이 보이는데 눈으로 보기는 지척이지만 걸어서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우리 네팔아이들은 뛰어서 20분이면 간단다.

▲ 네팔의 새 희망 도서관

왼쪽으로 히말라야의 설산을 끼고 아이들과 등교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밝고 인사도 잘하며 우리들에게 착착 안기며 즐거워한다.

하늘은 시린듯이 푸르고 설산을 끼고 아이들과 장난하며 등교하는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으며 푸석 푸석 나는 먼지도 더러운 것 같지 않았다. 정말로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다.

9시 반 경 학교 도착. 각 홈스테이에서 모인 동료들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들 홈스테이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미담 등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공통점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못살지만 무어라도 해주려는 인정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 네팔음식 달밧

10시경 네팔국가와 우리 애국가를 부르고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국민체조에 해당하는 간단한 몸 풀기 체조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교육만이 희망이다.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로 네팔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리랑’의 노래와 ‘떴다떴다 비행기’ 등 쉬운 한국 노래를 가르치는 음악시간, 한글을 공부하는 국어시간, 어느 아이는 한글을 거의 마스터한 정도로 잘하는 아이도 있었다. 한 교실에서 성숙한 아이들이 수학 공부를 하는데 제법 진지하고 열심이다.

이곳 10학년은 상급학교 입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네팔의 전통음식 ‘달밧’으로 학생들과 점심(쌀, 통 스프, 토마토, 오이 등이 재료)을 하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 염색수업 후 즐거운 표정

오후 수업은 연 만들기, 염색, DNA 수업 등이었고 일과 후 내일 명랑운동회에 대한 협의가 있었다. 공통적인 의견이 여럿이 하면서 흥겨운 것을 하자고 하여 줄다리기 등이 나왔고 풍선을 가지고 하는 것이 흥겨울 것 같다고 하여 풍선게임을 몇 가지 준비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일과를 마친 5시경 홈스테이 가정으로 출발하였다. 오늘은 수라즈 따망의 집. 집은 자그만 하지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서 그런지 깔끔하게 청소가 되었다. 집 주변에 무화과나무가 짧게 전지가 된 것은 집안 과일로 따먹기 좋게 하기 위해 전지를 한 것 같고 곡식들을 창고에 놓아두는데 쥐가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 마술수업 시 신기해하는 학생

아이들과 같이 공기놀이, 퍼즐게임을 하고 컵라면을 끓여먹으며 저녁을 보내는 중 늦게 들어온 수라즈의 아버지가 와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가셨다. 수라즈 말로는 자기 아버지 직업이 농부라고 하는데 지금과 같은 겨울철에는 아랫마을에서 노동일 등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라즈의 방에서 임명판 부장님과 수라즈가 수라즈 동생 어란지다 따망과 선즈 따망의 방에서 아서 따망과 내가 같이 잤고 여동생들은 저희 부모 방에 가서 잠을 잤다.

▲ 수라즈 따망 집에서의 공기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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