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심우성 민속학자

‘허수아비’를 우리말 사전에서 찾으면 “곡식을 해치는 새, 짐승 따위를 막으려고 논밭에 새우는 사람 모양의 물건”이라 했다.

▲ 연극무대에서 ‘허수아비’

지방에 따라서는 허시아비, 허숭아비, 허사비, 허재비, 허아비, 허깨비 등으로도 부른다. 그런데 그의 연원을 살펴보면 단순히 농사에 해로운 새나 짐승을 쫓기 위한 가작물(假作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술적, 신앙적 요소를 함께 발견하게 된다.

특히, 원시인들에게 있어 허공을 나르는 새의 존재는 이승만이 아닌 저승세계를 왕래하는 영적 존재로 인식되었음직하다. 새는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존재인가 하면 씨앗을 가져다주는 곡모신(穀母神)으로도 믿어졌기 때문에 더욱 함부로 할 수가 없었으리라.

그러한 흔적의 하나로 지금도 간혹 그의 유습이 전하는 볏가릿대(화간 : 禾竿=지방에 따라 낟가릿대, 유지방, 햇대 등 많은 호칭이 있음)가 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이른 새벽, 긴 장대 끝에 곡식의 이삭 등을 달아 마당에 새워놓고 그 해의 풍농을 기원하는데 이때 나무때기로 사방 울타리를 두드리면서 새를 쫓는 시늉을 하니 한편으로 기원하며 한편으로 쫓는 복합적(複合的)민속으로 나타난다.

▲ 뒷산 언덕에서 ‘허수아비’

우리 민속학계의 선각이신 송석하(宋錫夏)의 「허수아비」가운데 주목할 대목을 간추려 본다.

① 충남 당진 지방에서는 볏가릿대에 늘이는 ‘외새끼’에 ‘흰 종이쪽’을 달아 놓음으로서 새의 피해를 면하는 속신이 있는데 이것은 ‘금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② 경남 울산과 그의 인근 해안지방의 경우는 볏가리 전체를 새의 피해를 면하는 주술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갈새(상상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볏가리라 믿어 세우고 있다.

③ 위와 같은 깃들은 울안 또는 마을 안에서 행해졌었으나 점차 논밭으로 진출하는 단순히 해조(害鳥)를 쫓기 위한 조작물로 된 것이다.

역시 민속학의 선각 손진태(孫晋泰)의 소고도(蘇塗考) 등에서 보이는 마을신앙의 풀이 이기도한 가릿대(別神竿) 꼭대기에 새끼 등으로 +자형 몸체를 엮고 머리 허상을 만든 후에 흰 헝겊으로 얼굴 부분을 씌우고 미목구비를 그려 넣는다. 옛날에는 떨어진 등거리나 도롱이를 입히고 못쓰게 된 삿갓을 씌웠는데 요즘은 옷도 모자도 서양식으로 바뀌고 있다.

허수아비의 다리가 하나임은 도깨비를 닮아서 라고도 하지만 실은 쉽게 바람에 흔들리면서 새들로 하여금 속아 놀라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민속이란 세상의 변화·발전과 함께 가변(可變)하는 것이니 허수아비의 존재 의미와 그의 형태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삿갓과 맥고모자에서 코카콜라 상표가 붙은 운동모자로 등거리 잠방이에서 코카콜라 상표가 붙은 운동모자로 등거리 잠방이에서 알파벳 투성이의 티셔츠로 바뀜은 세상 그대로의 표현이리라.

6·25사변 전까지만 해도 애교스럽게 눈을 부라린 허수아비가 작대기를 들고서 있었는데 어느 사이 총으로 바뀌었고 허수아비가 붙잡고 있는 것처럼 길게 늘인 새끼줄에 헝겊 조각과 깡통을 달던 것이 대신 요즘은 길고도 긴 나일론 은박지 끈을 이리저리 늘어놓아 번쩍번쩍 하는 것이 새는커녕 사람이 더 정신 차릴 수가 없다.

하긴 옛날에는 주로 새나 그 날개를 높은 장대에 매달아 세우거나 솔개나 매의 형상을 만들어 줄에 연결해 두면 바람을 받아 갑자기 날아오르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하여 미련한 새들이 기겁을 하여 달아났었다.

한편 새와는 천적관계라 할 뱀이 장대를 타고 기어오르는 형상을 만드는데 장대에 굵은 새끼줄을 감고 머리 부분이 되는 끝을 불에 그슬려 놓으면 역시 새들은 멀리서 보고도 질겁하여 날아가 버렸었다. 그런데 요즘은 별별 짓을 다해도 새들이 허수아비의 머리 위에 앉으려 하니 사람 마음 못지않게 그들도 영악해진 탓이리라.

넓고도 비옥한 들판을 잘도 지켰던 ‘허수아비’ 본디의 모습을 이제는 찾을 수도 없이 되고 말았구나!

민속이란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민중의 습속」일진대 허수아비의 민속학적 의미도 결국 오늘의 실상에서 찾아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허수아비여 허수아비여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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