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교육나눔 실천을 위한 해외교육봉사 체험수기

제 9일(1월 29일)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8시 반경 포카라를 출발 카트만두로 향하였다. 그동안 시원스럽게 보였던 마차푸차레 봉우리와 안나푸르나 Ⅱ를 비롯한 연봉들이 구름 속에 보였다 안보였다 하며 흐려진다.

▲ 우리가 머물고 식사한 포카라 호텔

우리 봉사단이 복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안나푸르나를 만끽하고 갈 때가 되니 그 모습을 감춰준 안나푸르나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국도만도 못한 고속도로(Prithivi highway)를 통해 카트만두로 향한다. 네팔에서는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하나같이 헐벗고 못 먹어서 깡마른 체구지만 늘 웃고 친절하였다. 그런데 이곳에도 변화가 오는 것이다.

▲ 고속도로변 구멍가게와 손님

자동차 앞에서 보니 가끔 오토바이 탄 젊은이들, 차를 운전하는 기사들 사이에 주먹질을 하며 화를 내는 모습이 보였는데 복잡하고 비좁은 도로에서 서로 먼저가려는 각박한 현실 상황에서 나오는 당연한 인간 심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도 문명이 몰려오고 편리함이 증대되면서 느긋함의 여유, 자연 속에서의 순수함과 행복함이 점차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편리한 물질문명 빠른 시대 변화가 과연 인간 모두에게 행복만을 가져다줄까?

12시 반 경 깨끗한 휴게소 식당에 들렸다. 음식은 네팔식과 중국식으로 나오는데 이곳 네팔은 인도와 가까운 나라지만 중국의 관광객도 인도나 우리나라 못지않게 많은 것 같았다.

▲ 점심식사 식당 카트만두 54Km

새가 지저귀는 나무 밑 노천 식당에서 네팔식 달밧을 먹으며 예쁜 새들이 날아다니기에 현지 ADEF 봉사요원에게 새 이름을 물으니 “루티”라고 말한다. 이곳 사람들도 옷 색깔은 짤 씻고 빨지 못하는 환경 때문에 우중충하지만 마음만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진노랑, 핑크색으로 페인트칠한 새집, 자동차의 요란한 장식(특히 트럭이 요란한 장식을 하고 다님), 이곳 최대의 통신사 Ncell(우리나라의 옛날 독점형 한국통신)의 화려한 보라색 문양.

곳곳에 이 네팔 통신의 광고탑이 보이고 심지어 자그만 구멍가게까지 이 통신의 안내판이 찍혀있는 것을 보면 이곳도 핸드폰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보급되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이 나라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곳도 이 Ncell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상점가 타멜거리의 인파

오후 3시 반 경 장장 7시간을 달려 카트만두의 Moonlight Hotel에 도착하였다. 카톡으로 충남교육청과 연락을 해보니 우리가 부미마타 학교에 인터넷을 설치해 준 것이 동아일보 등 중앙지를 비롯하여 10개의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는 다시 아룬조티 초등학교에서 배식하고 아이들 치료하고 놀아주는 사진을 활동 소식과 함께 송부하여 한 번 더 보도하도록 인터넷으로 보냈다.

4시 반경부터 타멜 거리를 관광 겸 쇼핑하며 돌아 다녔다. 이곳의 기념품은 네팔 전통악기인 싱잉볼(청동악기- 나무로 청동그릇을 쳐서 영롱한 소리를 내는 악기)과 네삼삐리리를 열심히 연주해대는 장난감 기타 비슷한 악기가 있었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구르카 족 용병의 칼(칼이 구부러져 잘 빠질 것 같지 않은데 이 사람들은 이것을 다양하게 사용한다고 함), 그리고 파슈나트 지역의 양모로 짠 다양한 숄과 천들이 특산품이었다.

▲ 카트만두의 본부 문라이트 호텔에서

우리 손녀들에게 줄 털모자 두개를 구입하였다. 그동안 Wi Fi가 잘 안 터져 한국 소식을 못 들었는데 이곳 카트만두의 큰 식당과 호텔은 Wi-Fi 무료라고 곳곳에 써 있는데 이곳이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다.

페이스 북을 열어보니 부미마타에서 올린 봉사 소식에 많은 페친들이 부러움과 칭찬 섞은 많은 댓글을 올려놓았고 저녁 식사 후 많은 댓글에 대한 답장을 올리고 카카오 스토리에도 네팔의 사진을 몇 장 올려 주었다. 정말로 카톡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런 오지에서도 사진을 송부하고 무료통화를 할 수 있음으로서 우리나라 카톡의 위력을 실감했다.

▲ 스왐부나트의 전경

제 10일(1월 30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갠지스강 상류의 화장터 
 
6시 기상하여 630분 운동 겸 산책을 나섰다. 시내 운동을 하는데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간다. 같이 따라가 보니 허름한 골목길에 학교 팻말이 붙었는데 National college of computer studis 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6시 기상하여 630분 운동 겸 산책을 나섰다. 시내 운동을 하는데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간다. 같이 따라가 보니 허름한 골목길에 학교 팻말이 붙었는데 National college of computer studis 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아마 컴퓨터를 전문 과정으로 하는 국립학교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 등교 시간을 물으니 6시 40분까지 등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은 먹었냐고 물으니 머쓱한 표정이다. 이곳 아이들은 아침은 거의 안 먹는 것 같고 ‘찌아’라고 하는 네팔 Tea를 마시고 온다는 것이다.

▲ 스왐부나트

우리나라의 119 버스처럼 시끄럽게 앵앵거리며 지나가기에 아침부터 불이 났나 했더니 쓰레기 수거차였다. 그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골목골목에서 쓰레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8시에 식사를 하고 9시부터 카트만두 관광에 들어갔다. 먼저 찾은 것이 수왐부나트(Swayambhunath)사원. 시가지 서쪽 언덕위에 있는 불교 사원이다. 카트만두 분지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알려졌는데 지은 지 2,000년이 넘었다고 한다.

▲ 사원에서 양초파는 아주머니

언덕 중앙에 하얀 스투파(탑)가 있고 이곳에서 카트만두 시가지를 전망할 수 있는데 오늘은 스모그와 안개 때문에 전망이 아주 밝지 못하였다.

계단을 오르는 곳에 많은 석불과 사자, 코끼리 등의 조각상이 있고 “옴마니 반메음”의 불경 소리가 끊이지 않고 촛불을 파는 사람, 참배하는 사람 그리고 수많은 비둘기 떼와 원숭이들로 조용할 수가 없는 사원이었다.

▲ 단체관람 온 학생들

이어서 찾은 곳이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석기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고 자연사 박물관, 민속박물관, 무기 전시관, 왕들의 모습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별관이 두동 있었는데 한 곳은 신들의 나라답게 많은 신상(석상, 청동상, 목상 등 다양한 재료와 형태의 신들의 모습)을 전시한 특별동이 있었다.

▲ 불교박물관의 팻말과 입구

다양한 모습의 시바신상, 가네쉬, 비슈뉴, 브라만 등의 신상과 만다라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시바가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인 가루다는 현재 인도네시아 항공의 상표로 활용되고 있고 인도네시아 항공사의 이름이 가루다 항공이다.

Buddist Art Gallery. 불교의 유적을 따로 전시하는 특별관이 있었다. 이곳 불교전시관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 트리뷰반 동상

소장품은 어마어마한데 박물관은 아주 초라한 모습이었고 10시 30분에 개장하였으며 카메라 숫자대로 돈을 받는 것이 신기하였으며 단체관람을 온 중학생들과 기념 촬영도 하였다. 우리와 자매결연을 한 따망족의 생활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코에 피어싱을 한 것이 특징이었다.

12시 시내 중심가에서 점심을 하고 카트만두의 현대적 중심가 King' Road를 걸어서 왕궁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거리에 조각상이 있어 물어보니 ‘트리뷰반왕’의 동상이란다.

▲ 카트만두 번화가 킹스 로드

네팔의 왕 중 네팔의 근대화에 기여한 왕이라고 하며 네팔 최고의 대학(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대학)의 이름도 트리뷰반 대학이고 국제공항이름도 트리뷰반 공항이었다. 우리와 같이 네팔에서 활동한 현지 ADRF 봉사자 한명이 이 트리뷰반 대학생이었다.

한국에도 몇 번 왔다 갔다고 하며 이야기를 해보니 아주 똑똑한 청년이었다. 왕궁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개방을 하지 않기에 할 수 없이 철창을 통하여 왕궁을 볼 수밖에 없었다.

▲ 네팔왕궁에서

보드하나트(Boudhanath). 세계 문화유산이며 세계 최대의 스투파(탑)가 있는 라마교의 성지이다. 카트만두 동쪽 약 7Km에 위치한 라마 사원인 이곳은 한 가운데 부처님 사리를 묻고 흙을 높이 쌓은 다음 그 위에 동, 서, 남, 북 사방으로 커다란 눈을 가진 4각형의 탑을 조성해 놓았는데 이는 부처님의 눈이 사방을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란다.

반원형의 탑 주위에는 불교 경문을 넣은 청동제 마니차가 쭉 비치되어 있는데 참배자가 경문을 외며 이 마니차를 돌리면 경문을 천 번 읽은 것과 맞먹는 공덕이 쌓인다고 한다.

▲ 세계최대의 스투파(탑)

우리 일행 선덕금 선생님도 남들을 따라 마니차를 돌려가며 재미있어 하였다. 탑 주위에는 네팔과 티베트의 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있었다. 스투파 반원부 위쪽에 올라가면 주변의 경관과 멀리 설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어서 찾은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시가지 동쪽에 있는 힌두교의 성지이다. ‘파슈파티’는 ‘모든 짐승의 주인- 시바신’을 뜻하는데 이 황금빛 사원에 이교도는 들어갈 수 없다.

▲ 보드나트에 참배온 승려

조그만 강변 언덕에서 사원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이곳 갠지스강 상류의 강변엔 많은 화장터가 있고 우리가 방문한 동안에도 화장을 하는 연기가 곳곳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강물은 엄청 지저분한데 그곳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있었고 옆의 가트는 목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밖에 작은 힌두 사원과 탑들을 둘러보는데 곳곳이 ‘사두’라고 불리는 힌두교 수도승들이 기괴한 복장과 모습을 하고 앉아있거나 구걸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피리를 연주하기도 하는데 매캐한 연기, 역한 냄새와 함께 분위기가 아주 좋지 않았다.

▲ 힌두사원과 화장터

곳곳의 사원은 원숭이 세상을 이루고 있고 그런 지저분한 사원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는데 알고 보니 힌두 사원에서 결혼을 하는 것이란다. 정말 이 지저분하고 복잡한 곳에서 삶과 죽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니 무슨 데모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빨간 깃발을 잘 보니 옛날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이다. 공산당의 집회라는 것이다. 소련이 무너진 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소비에트기인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도 사람살기가 어려우니 ‘마오이즘’과 공산주의 세력이 막강하다고 한다.

▲ 몸 씻는 신도들

4시 30분 경 관광을 종료하고 찻집에 가서 푹 쉬었다. 7시 경에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간 곳 북한 식당 평양 옥류관의 네팔 분점이다. 평양 오색 비빔밥, 평양온면 등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맛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고 김치, 깍두기를 많이 주니 그것이 흐ant하였다.

한쪽에 작은 무대가 있고 그 옆의 프로젝션 TV에서 북한영상과 북한 노래가 나오는데 ‘황성옛터’ 그리고 ‘여성이 꽃이라네’ 등 옛날 노래와 순박한 북한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저녁을 먹고 충분히 휴식을 한 다음 트리뷰반 공항으로 나가 네팔 팀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밤 11시 반 드래곤 에어 비행기로 부지런히 귀국을 하며 우리는 행복한 네팔 일정을 마치었다.(끝)

▲ 수도승의 구걸

▲ 결혼식 장면

▲ 공산당 집회

▲ 9박11일의 네팔 마지막 날 공항에서 우리단원과 ADRF 단원, 현지봉사단, 기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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