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심우성 민속학자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평소 나와 가까이 지낸 제자들 김용배(꽹과리), 김덕수(장구), 이광수(북), 최종실(징) 넷이서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공간사랑’으로 찾아왔다.

넷이서 함께 ‘풍물패’를 만들고자 하오니 적당한 이름을 하나 지어달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가 부친으로부터 ‘풍물’이 몸에 밴 사람들이니 썩 잘된 일이라 싶어 적당한 이름을 찾아보겠다고 성큼 허락을 했다.

그런데 그럴싸한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를 않는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들의 선친들께서는 평생을 남사당패에 몸을 담으셨던 분이요, 말년에는 걸립패(걸궁패라고도 함)등에서도 사물을 치셨던 분들이시다.

그러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김용배(지금은 고인이 됨)군의 양아버지였던 상쇠의 명인 최성구 옹의 말씀이 떠올랐다.

“꽹과리 그건 사람의 ‘맥’이여, ‘징’은 심장이구, ‘북’은 목덜미의 굵은 핏대구, ‘장구’ 그건 바지런한 아낙처럼 북편 채편을 도닥거려서 ‘풍물’을 엮는 것이여··· ‘사물’의 이치지.”

▲ 1978년 9월 중 공간사랑에서(좌로부터 이광수, 김덕수, 최종실, 김용배)

그런데 ‘사물’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일반인들의 꽹과리, 징, 북, 장고가 합주하는 ‘민사물’과 절에서 법고, 운판, 목어, 대종이 합주하는 ‘절사물’이 있다.

그렇지 ‘최성구 옹’ 말씀대로 풍물이란 사물의 조화이니, 이 ‘사물’에 다가 우리의 전통예능 끝에 잘 붙는 ‘놀이’를 더 해서 ‘사물놀이’라 하면 어떨까?

종이에 큼직하게 써 놓고 보니 꽤나 그럴 듯 했다. 이렇게 사물과 놀이를 합쳐서 꾸며 낸 호칭이 바로 ‘사물놀이’였다. 우리말 큰 사전에서 찾아보아도 실려 있진 않은 새로 생긴 ‘고유명사’였다. 네 제자들은 모두가 좋다며 서슴없이 ‘사물놀이’ 패거리가 태어났다.

첫 발표회는 ‘공간사랑’에서 시작되었고 생각 밖으로 전국을 돌며 큰 환영을 받기에 이른다. 국내외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참으로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사물놀이’란 이름으로 수 없는 ‘사물놀이’란 풍물패가 생겨난 것이다. 이건 쉽게 애기해서 ‘사물놀이’의 명성을 새치기 하기위한 짓이기도 했다.

'사물놀이’란 ‘보통명사’가 아니라 20여 년 전 지어낸 한 풍물패의 ‘고유명사’가 분명함을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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