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취(翠翠)의 고장 펑황(凤凰)에 가다(下)

묘족시장에서 진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황쓰교 고성으로 이동한다. 황쓰교 고성은 돌로 쌓아올린 고성으로 찹쌀과 석회를 섞어 돌과 돌 틈새를 막았다고 하는 곳으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황쓰교 고성은 성을 복원코자 주민들에게 보상을 하였으나 일부 주민들이 보상을 거부하여 개발이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어찌되었든 성을 한 바퀴 돌면서 성을 지키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병사들의 함성을 들으며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병사들의 피땀과 혼을 사진에 담는다.    

황쓰교 고성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공식 일정은 마무리 된다. 저녁을 먹고 다시 펑황고성의 낡은 향기에 취해, 젊은이들의 달콤한 사랑에 취해 방황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이제 펑황고성에서의 공식일정은 오늘 오후에 심종문 생가 방문을 마지막으로 내일 오전까지는 자유 시간을 갖고 오후에 귀국길에 오르는 일정이다.   

심종문(沈縱文, 선충원)은 펑황고성 출신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전원소설인 ‘변성(邊城)’은 심종문의 대표작으로 1988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 널리 알려진 소설로 펑황고성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변성(邊城)’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강촌의 한 소녀가 성장해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을 중심으로 변방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으로 나루터 뱃사공 노인의 외손녀 취취(翠翠)와 부두의 총관인 순순(順順)의 두 아들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뱃사공 노인의 손녀 취취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맑은 눈빛을 가진 처녀로 부두 총관인 선주의 두 아들 천보(天保)와 나송(儺送)은 취취를 좋아하게 된다. 

취취를 동시에 사랑하는 천보와 나송, 나송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취취, 두 형제는 밤낮으로 취취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로 하였으나 큰아들 천보는 노래로 동생과 겨룰 수 없음을 깨닫고 집을 떠났다.

집을 떠난 큰 아들 천보는 불행하게도 길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로 물에 빠져 죽고 만다. 동생 나송은 이 충격적인 사실에 더 이상 노래로 애정을 토로하지 못한다.

게다가 아버지는 나송과 완단총 딸과의 결혼을 강요한다. 분노를 참지 못한 나송이 배를 타고 도원으로 가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취를 키워주고 사랑해주던 외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뜬다. 노인이 죽고 나자 취취는 할아버지에 이어 처녀 뱃사공이 된다.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 취취는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나루터에서 “어쩌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바로 내일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나송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심종문 생가는 펑황고성내에 있으며 평일인데도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심종문 생가에 들러 낡은 책상과 의자, 붓과 벼루, 원고지 등 심종문의 채취가 묻어 있는 생활도구와 장신구 등을 긴 호흡으로 입맞춤하며 카메라에 담는다.

펑황에서의 마지막 밤! 이별을 아쉬워하는지 늦은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온다. 한적한 고성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돌담길을 배회한다. 촉촉하게 젖은 돌담길에 떨어지는 비취색, 청록색. 황금색 등 형언 할 수 없는 색으로 젖어드는 돌담길을 카메라에 담는다.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더 깊은 곳으로 영원히 빠져들고 싶다. 혹 꿈이 아닌지 장딴지를 꼬집어 본다. 이렇게 펑황에서의 마지막 밤은 간절했고, 애잔 했으며, 뜨거웠고 황홀했다.          

마지막 밤을 몽환적으로 꿈속을 헤매다 아침을 맞는다.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 소울(素) 까페와 원창거 초등학교다. 펑황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자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원창거 초등학교와 소올 까페로 향한다.

원창거(文昌閣) 초등학교는 심종문(沈縱文)과 황용위(黃永玉, 화가)의 모교로 구 시가지에서 가깝다. 원창거 초등학교 벽면에서는 학교를 빛낸 위인들의 사진과 간단한 치적들이 적혀있다.

이들이 펑황의 역사이고, 오늘의 펑황이 있게 한 장본인들이며, 펑황의 내일이고 희망인 분들이다. 평일이라 교실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벽에 걸린 사진만이라도 카메라에 담는다.

펑황고성에는 소울 까페 2곳이 있다. ‘시간을 멈춘 여행’에 나오는 카페가 원조 까페이고 맞은편 건너편에 있는 것이 2호점이다. 2호점은 몇 번 들렀으나 원조 까페는 펑황고성을 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을 하기 위한 장소로 보물처럼 남겨 놓은 곳이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담배에 불은 붙인다. 진한 커피향이 취취를 생각나게 한다. 뽀얀 담배연기가 동그란 원을 그리며 까페 안을 맴돌다 취취에게로 향한다.

“취취가 누구냐고? 취취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잊힌 변방도시이자 흐르는 강이며, 나루터의 배, 강기슭에 고독하게 자리 잡고 핀 꽃, 수면에 은은하게 비치는 탑 그림자, 달 밝은 밤에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와 함께 새벽이 오길 기다리며 방울방울 맺힌 아침이슬, 돌아옴과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과 슬픔이다.”

“그래도 취취가 누구냐고? 취취는 이유이며, 내가 펑황에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취취는 1943년에 열여섯 살이었고 2005년에도 여전히 열여섯 살이다.” (시간을 멈춘 여행/ 쾅리리) 

내게도 취취는 이유이며, 내가 펑황에 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취취는 펑황에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취취는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내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펑황과 불같은 사랑을 하고 미련만을 남겨 둔 채 귀국 일정에 오른다. 펑황에서 창사로, 창사에서 인천공항으로 내일 새벽 4시 30분이면 상상계에서 현실계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면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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