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에 새 희망을 담다-유구읍 만천1리

더위를 식히고 지나간 소나기가 한차례 마을을 훑고 지나갔다.

공주에서 유구읍을 들어서기전 왼쪽으로 마을길이 보인다.

차로 5분 정도를 들어가니 우렁이마을을 알리는 간판이 나타난다.

우렁이 마을 만천1리 마을 입구

만천리는 유구천을 끼고 있는 마을로 이미 큰 인물을 낸 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곳은 독립지사 조병옥의 기념비가 있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웅진’이라는 회사와 2002년 공주시장으로 당선된 윤완중 씨도 이 마을의 출신이라고 한다.

또한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울려져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 건축도 있다.

마을을 들어서며서 모내기를 마친 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다른 마을에 비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렁이을 이용해 친환경으로 논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인지 흙탕물을 일으킨 듯한 논물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짓고 있는 벼농사의 전부를 마을의 수입으로 올리고 있다고 한다.

밭농사로는 집집마다 즐비하게 엮어놓은 마늘을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마늘 농사를 짓는 집이 많았다.

집집마다 수확한 마늘이 매달려 있다

예전처럼 써래질을 하는 선일이나 두배미 논을 하는 지게질 등을 하며 품을 하는 노동일은 기계화에 손쉽게 하고 있다. 그렇치만 노인들이 대부분이라서 많은 일들을 기계에 노동력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도 이제는 모판작업등을 마을에서 한꺼번에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

만천리에 들어서면서 어느 시골에서 느껴지듯 한가롭고 조용했다.

더위를 피해 마을회관에 모여 계신 할머니 몇분은 벌써 한차례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셨다.

좌로부터 이순열(92세)할머니, 노수자(78)할머니, 이영희(80) 할머니

그렇게 모여계신 할머니들의 이름을 물었더니, 늙은이 이름을 오랜만에 물으니 그래도 기분은 좋으시단다.

유구읍에 직물공장이 활발하게 움직였을때 그곳에서 서너병의 직공들과 함께 직물공장을 운영했다는 이영희 할머니(80세)는 옛날을 더듬어 말씀하신다.

“왜정시대 쇳숟가락 하나없이 다 걷어가고, 힘든 시대를 보냈고, 6·25동란이 나서 까맣게 중공군과 북한 인민군이 도시락통을 달그락달그락 거리며 지나갈때도 견딘 우리아니냐”고...

그런 시대를 지낸 사람들이기에 왠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다는 것이다.

좌로부터 이정림(81)할머니 , 김정순(79)할머니 ,이기선(80)할머니, 정낙열(86)할머니

한참을 옛날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젊은시절 없어도 견딜 수 있었던 에너지가 자식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풍부한 먹거리가 없어도 행복했던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고생했던 젊은 시절이 언젠가는 꼭 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직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내했기 때문이란다.

짚신을 신고 시집 온 17살, 그 시절 만천리에서 하나 둘 자식을 낳고 살면서 남편과 살았던 그 젋은 시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품안에 자식들이 커 가는 모습만 봐도 절로 웃음이 흘렀기 때문에 그 시절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었다고 정낙열(86세) 할머니는 그날을 그리듯 말씀하신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면서 믿음으로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낙이라는 할머니의 열정은 또 하루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희망이 되어 버렸다.

유병순(69세) 부녀회장은 목디스크 수술을 하여 목소리가 아직 제자리를 잡지 않아 가는 쇠목소리가 나는데도 만천리의 할머니와 부녀회를 위해 열정적으로 뛰고 있으시다.

언제나 밝게 웃으신다는 유병순 부녀회장

부녀회장이 있기에 할머니들이 행복한 거라고 할머니들은 말씀하시며,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그저 ‘그럼. 그럼’이라는 말만 해도 다 이해가 된다고 하신다. 그게 만사가 행복해 지는 방법이란다.

 

바쁜 일손 때문에 들녘에서, 집근처에서 만난 만천리 조규복(81세) 노인회장은 연세에 비해 꽤나 젊어보여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조규복 노인회장이 농약을 하려고 하고 있다

“농사를 지어보게. 늙을 틈이 있나. 자식들한테 기대지 않고 이렇게 마늘 농사도 짓고, 벼농사도 짓고 정신이 없다네.” 그렇게 말씀하시는 노인회장을 들에서 만나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농약을 치신다는 곁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항상 옆에서 함께 일을 하던 아내는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한지 5년이 넘었단다. 그런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뜰이 노인회장의 깔끔한 성격을 보는 듯하다. “세상에 노인들이 다 그렇치... 뭐 특별난 게 있겠어. 그저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우리도 이렇게 시골에서 열심히 일하고... 농촌이 젊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일거야”라고 말씀하는 노인회장의 모습이 한적한 시골마을을 닮아있다.

만천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들은 통계적인 농사를 짓고 계시는 않아도 정성을 다해 흙이 좋아 맛이 있다는 마늘과 벼농사가 수입의 일부라고 한다. 그래설까. 마늘 2접을 사 가지고 나오는 발길이 맛있는 토종마늘을 샀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만천리는 우렁이를 이용해 어떤 방법으로 농사를 지시는 것인지 물었더니,

마을 작농반이나 이장(이병선 62세)이 만천리를 알리기 위해 힘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우렁이를 이용해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이를 위해 힘을 합쳐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작은 마을 앞뜰에 자리잡고 있는 우렁이 논의 시작은 만천1리를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시작이었다. 지난해 까지 이곳에서 나는 쌀은 마을사람들 모두의 아주 큰 수입원이었다. 친환경 쌀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 맛과 풍미를 아는 사람들은 만천리의 우렁이쌀을 찾았다. 그래서 우렁이쌀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렁이 양식장 모습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회관과 마을 언저리를 벗어나 마을 입구에서 콩팥을 메고 있는 할머니 두분을 만났다.

두분 모두 칠십을 훨씬 넘겼다고 말씀하신다. 그중 황의순(72)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암이란 진단을 받고 현재 자신은 살아있지만 남편은 세상을 뜬지 4년쯤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93살이 되신 시어머니와 둘이 사신다. 잠시 그늘에서 쉬고 계시던 할머니는 친환경마을인 우렁이 마을에서 어떤지 묻자,

“난 매일 우렁이 각시가 나왔으면 해”하며 웃으신다.

콩밭을 매고 계신 할머니는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으셔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장애인 전용으로 나온 1인용 끌차를 타고 간신히 밭에 손을 잡고 주저앉아 콩밭을 매시는 할머니는 그래도 환하게 웃으신다. 그모습이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우렁이 각시가 나타나 밥도 따뜻하게 맛나게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그리고 부지런하게 콩밭도 매어준다면 그런 신화가 만천리 마을에 일어난다면 더 행복할까?

모두가 바라는 동화속의 우렁이 각시는 분명 있을 것 같은데...

풀밭에 주저앉아 얘기를 나누다 일어서며 할머니와 손을 잡고 웃으며 말을 해 주었다.

할머니의 우렁각시는 분명 있을 거라고... 할머니가 웃는다. 그리고 고맙단다.

만천리의 현재를 사는 이런 마을사람으로 하여 내일을 바라보며 들어와 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한해 두해 우렁이를 통해 알려지면서 체험마을로, 친환경농사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천리 마을...

그곳에 가면 나지막한 산과 유구천을 끼고 평화롭게 자리잡은 만천리 마을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 가서 혹여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우렁이 각시가 되어 도움을 주고 오는 것도 희망의 마을을 키우는 돌계단을 쌓는 일이라고 본다. 이 마을 어르신들의 인생이 마을길을 따라 또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며 만천리를 벗어난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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