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골에서 듣는 여름이야기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평상에 앉아 계곡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마곡사를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사곡면 부곡리가 있다. 산새가 있고 길마다 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이곳은 태화산에서 발원하여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상원골 계곡으로 여름만 되면 시끌벅적하다. 이 상원골 계곡의 시원함은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 천탑마을 입구 전경

그래서 올해에는 이곳에 더 깨끗하고 시원한 그늘과 뗏목을 준비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려고 하고 있다. 이 마을은 또한 천탑마을 뿐만 아니라 정보화시범마을로 선정되어 마을사람들에게 정보에 대한 컴퓨터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매미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리던 맑은 날, 길가마다 정겹게 맞이하는 탑들을 먼저 만난다. 그 모습에서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레 맞이하는 손님에 대한 마음을 보는 듯하다.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에 데일 것 같은 더운 공기가 턱밑까지 훅훅 올라온다. 그래도 잠시 내려 길가에 늘어선 천탑에 돌 하나를 정성스레 올려본다. 휴식 같은 계절 여름이라는 말처럼 나무그늘은 또 하나의 행복을 느끼게 한다.

▲ 서봉모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모습

천탑이 나란히 있는 나무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운다.

사진기만 바라보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시는 서봉모(81세)할아버지는 들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도 금방 우리의 말을 알아듣고 말씀을 잇는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볼일을 보러 서울에 올라가는데, 할머니가 보고 싶어 그냥 갈 수가 없어서 할머니 얼굴이 있는 사진을 지갑 속에 품고 갔대.

그런데 한 번도 자기 얼굴을 본적이 없는 이 산골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도 참으며, 오직 할아버지가 돌아오는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마침내 기다리던 할아버지가 돌아와서 너무나 반가왔대지.

그래서리 할아버지 짐을 정리하던 할머니가 ‘재미 좋았수?’하고 물어더래지.”

평소에 부부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던 사이였는지라, 할아버지께서는 “그럼. 거기 늘 한 여자를 가슴에 품고 지냈기 때문에 안 외로웠지. 매일 그 여자 얼굴을 보며 지내다 왔지. 내 그 여자 때문에 일도 잘 보고 힘든 줄을 몰라드랬지.”하며 연신 싱글벙글 하시며 할머니 얼굴만 바라보시더래지.

그렇게 웃으며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나가시고, 할머니는 ‘정한수’ 떠놓고 빌던 자신의 부질없음이 속상해서 할아버지 봇짐을 정리하다가 마침내 지갑 속에서 할아버지가 말씀하던 그 예쁜 여자얼굴을 보게 된거지.

그래서리 할머니는 ‘요놈의 여자가 우리 남편을 꼬였구나’싶어 그 사진을 바닥에 놓고 발바닥으로 밟고, 손톱으로 꼬집더래지. 그 모습을 보던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봐! 임자, 그게 당신 모습을 담은 사진이란 것이지. 그게 자네 얼굴이라네’ 하시더래지. 그렇게 그런 시절도 있어더래지”

▲ 주권성 할아버지가 천탑마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깔깔대며 한참을 웃다가, “할아버지 고향이 북쪽인가 봐요?”했더니 “표시가 나는구먼”하며 할아버지 아버님이 1·4후퇴 때 북쪽에서 피난 와 이곳에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단다. 그렇게 이 마을은 피난을 와서 정착을 하게 된 사람들이 많은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정도 깊고, 서로를 이해하는 폭도 크다고 한다.

주권성(78세) 할아버지는 부곡리 마을이 주변지역에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그래도 많이 남아있지만, 많이들 떠났다고 한다. 여름이면 이렇게 시원한 그늘이 있고, 산골에서 나는 맛깔스런 음식들로 하여 이곳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돌아가는 시간이 된다고 한다.

전월순(72세) 할머니와 지순희(81세) 할머니는 더 많은 재미난 얘기를 해주시면서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나무그늘에 앉아 옥수수와 감자를 쪄 먹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시원한 여름을 나는 법이라고 한다.

▲ 서용호 노인회장의 포토제닉한 모습

상원골 특유로 공기는 장을 담가도 맛나고, 옥수수를 심어도 다른 곳보다 찰져서 그 맛을 상품화하여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려고 한단다. 이제 방학이 되면 고향을 찾을 손자·손녀들과 보낼 생각에 얼굴에 연신 웃음꽃이 핀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계신 서용호(79세) 노인 회장은 “내가 원래 포토제닉한 얼굴이야. 사진기가 민망할 정도지”라며 연신 재미있는 말씀을 이으신다. 너무 멋진 노인회장이시다.

▲ 부곡리 천탑 전경

아내인 지순희 할머니는 6·25때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공주사범중학교를 다니다가 멋진 할아버지를 만나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단다. 비록 몸은 불편해도 맑은 얼굴로 유머를 잊지 않는 모습에서 두 분의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황길서(82세) 할아버지, 한귀동(75세) 할아버지, 명노성(79세)할아버지 들은 그렇게 모여앉아 이 마을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신다.

▲ 상원골 계곡의 평상이 즐비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한여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옛날 선인들의 해박한 이야기는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휴식 같은 시간을 갖게 해준다.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수박한쪽과 영양만점인 옥수수를 먹으며 듣게 되는 옛이야기는 그대로 별이 되어 쏟아지는 추억속의 시간이 될 것이다.

상원골 노인회원들은 감성이 메말라 가는 청소년들에게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어 한다.

느리지만 그래도 그 속에 담긴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조금은 그렇게 천천히 쉬었다가는 인생의 묘미를 알게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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