仲尼蹴然曰 何謂坐忘
顔回曰 墮肢體,출聰明,離形去知,同於大通,此謂坐忘.
仲尼曰 同則無好也,化則無常也. 而果其賢乎 丘也請從而後也.

Ren Descartes (1596~1650)는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은 “나는 밥을 먹는다. 고로 살아있다.” 와 같은 말이다. 인간의 新陳代謝는 잠시도 멈춤이 없이 이어지고 배고픔은 時時刻刻으로 다가오며, 모든 관심의 초점은 먹는 것에 집중되어진다.

不可抗力으로 이루어지는 生命의 과정은 인간이 생각 한다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살아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이며 스스로 생각을 멈추려고 하여도 끊임없이 生成되는 생각들에 의해서 생명이 維持되고 持續되는 것이다.

禪家의 看話禪은 사람들의 意識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을 뚜렷이 들여다  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출발한 것이다. 이른바 話頭라고 하는 것은 수백, 수만 갈래의 생각들을 하나로 집중화 시켜 생각의 근원과 뿌리를 잡아 보려는 방법인 것이다.

朱子學의 創始者 朱熹(1130~1200)는 ‘狗子無佛性’이라는 話頭를 參究하였는데 1,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狗子無佛性’을 參究한다면 話頭가 아니요, 썩은 고깃덩어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中庸』 「天命章」에 “道라고 하는 것은 잠시라도 놓칠 수가 없는 것이니 잠시라도 한눈 팔수 있다면 道가 아니다.” 라는 말이 나온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中庸』에서 말하는 道라고 하는 것은 禪家에서는 많은 생각들이 專一해지는 神明(spirit, consciousness)이며 1700公案을 打破漆桶해야 하는 話頭인 것이다.

龐居士(? ~ 808)의 딸 靈照가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자 곧 바로 入寂하여 죽음을 示現한 모습은 生死라는 話頭조차 넘어선 極致였던 것이다.<居士將入滅 謂靈照曰 視日早晩 及午以報 照遽報 日已中矣 而有蝕也 士出戶觀次 照卽登父座 合掌坐亡 士笑曰 我女鋒捷矣. 『龐居士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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