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홍길동전’이나 ‘춘향전’, ‘흥부전’ 등 고전을 읽어 보았느냐고 물어 보면 읽었다고 대답하는 학생이 의외로 적더군요. 다 아는 내용인데 뭘 읽느냐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읽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이어서 고전은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책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전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고전은 거의 대부분 권선징악으로 끝납니다. 끝에 가면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행복’이란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고전은 그런 단순함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 속에는 사회적, 문화적인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흔히 ‘춘향전을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을 쟁취한 남녀의 이야기로 소개 됩니다. 조선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고 부모의 신분은 자식에게로 그대로 이어졌지요. 춘향이 역시 본인은 기생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 월매가 기생이라는 이유로 변학도가 수청을 들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가 양반이라 할지라도 어머니가 천민이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랐답니다. 그래서 서열이라 불리며 본 부인의 자식들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높은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춘향이의 아버지 또한 양반이었지만 춘향이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다 보니 사또의 수청을 거절할 힘이 없었답니다.

거절하는 것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지요.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남원 부사의 아들과 사랑을 이루어낸 춘향을 두고 쟁취했다는 말은 참 잘 어울립니다. 어떻게 쟁취했을까요?

춘향은 조선 시대의 양반집 여인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 도령이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되고 ‘우리가 영영 이별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 도령의 말에 춘향은 갖은 패악을 다 부립니다. 치맛자락을 좌르륵좌르륵 찢고, 머리털도 와드득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벼 도련님 앞에다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살림살이도 손에 집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악을 씁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춘향이와 다르다고요? ‘춘향전’은 무려 100여종의 이본이 있다고 하네요. ‘열녀춘향수절가’에는 춘향이의 인물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조선의 여인들과 다른, 춘향이의 이런 적극적인 점이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기도 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춘향전’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조선후기 사회의 변화였습니다. ‘춘향전’의 첫 장에는 조선시대 숙종 임금께서 나라를 다스리던 때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잠시 숙종 때 정치적 상황을 한번 살펴볼까요. 그때는 당쟁으로 나라가 어지러웠습니다.

남인과 서인이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잡기도 했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현왕후와 장희빈도 숙종 때의 일입니다. 서인 세력이 강할 때는 인현왕후가 왕비로 있고 다시 서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남인을 등용했던 숙종은 남인이 세력을 잡자 장희빈을 왕비의 자리에 앉힙니다.

그러다가 다시 남인이 세력이 강해지자 서인 세력을 등용시켜 인현왕후를 왕비의 자리에 복귀시키고 장희빈을 몰아냅니다. 숙종의 이러한 행동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인 계략이 있었다고도 하네요.

이렇게 세력이 교체될 때마다 반대파들이 무수히 참변을 당하거나 쫓겨나 이름뿐인 양반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빈곤한 생활을 면치 못했지요. 반면, 상공업이 활발해 지면서 부를 쌓은 상민들은 돈을 주고 양반을 사기도 합니다.

이렇듯 조선후기는 신분제가 흔들리는 사회였습니다. ‘춘향전’은 흔들리는 신분제에 힘입어 양민들의 소망을 담아 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여인상 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여인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천주교가 들어오고 성리학을 바탕으로 했던 유교 사상에 의해 억눌렸던 여성들이 눈을 뜸으로서 이런 여인상이 가능했다고 보여지네요.

그런데 저는 춘향이가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룬 진취적인 여인이었다고 보여 지지는 않네요. 본문 중에 보면 자신을 첩으로 데려가 달라고 이 도령에게 매달리기도 하거든요.

‘춘향전’은 여성 주인공인 춘향이가 주체적인 인물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성들에게 사랑 하나로 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되면 사랑밖에 난 몰라 가 되나요?

또한 이러한 이야기책이 평민들에게 읽히면서 조선은 서서히 근대로 갔겠지요. 고전은 그 시기에 왜 그런 이야기가 쓰여 졌는지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줄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다 알고 있으므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럴 때는 문제점을 찾아 자신의 생각을 써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새로 깨닫게 된 점, 또는 이 도령과 춘향이 처음 만난 장소인 전라남도 남원에 있는 광한루를 한 번 가보고, 그네 뛰는 광경을 상상해 보고, 경험을 통한 느낀 점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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