由天地之道觀惠施之能, 其猶一蚊一虻之勞者也. 其於物也何庸! 夫充一尙可, 曰愈貴道,幾矣! 惠施不能以此自寧, 散於萬物而不厭, 卒以善辯爲名. 惜乎! 惠施之才, 駘蕩而不得, 逐萬物而不反, 是窮響以聲, 形與影競走也. 悲夫!

인간의 本性이 善하다거나 惡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本性을 헤아리지 못한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堯舜과 같은 현명하고 훌륭한 君主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한 것은 孟子이다.

인간은 누구나 佛性을 가지고 있어 覺을 成就할수 있다고 한 것은 釋迦이다.
莊子는 말한다.

진흙을 구어 질그릇을 만들지만 흙의 本性이 질그릇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를 깎아 수레를 만들지만 나무의 本性이 수레에 있는 것이 아니다.

荀子는 말한다.

진흙을 구어 질그릇을 만들지만 진흙이나 질그릇이 陶工의 本性은 아니다. 나무를 깎아 수레를 만들지만 나무나 수레가 木工의 本性은 아니다.

<陶人埏埴而爲器 然則器生於工人之僞 非故生於人之性也 故工人斲木而成器  然則器生於工人之僞 非故生於人之性也 聖人積思慮 習僞故 以生禮義而起法度 然則禮義法度者 是生於聖人之僞 非故生於人之性也>

惡의 뿌리에 善이 있으며 善의 근원에 惡이 기초하고 있다. 마치 自殺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층심리에 삶의 투쟁심이 가득 차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論者들은 性善과 性惡의 논리가 둘로 나눠지는 對極의 인간 本性論이라고 區劃을 짓지만 荀子는 性惡을 주장하여 僞善을 제거하려 하였고 孟子는 性善을 주장하여 僞惡을 제거 하려 한 것이다.

僞善과 僞惡을 거부한 것은 위선과 위악이 人間本性을 어지럽혀 天下混亂의 災眚을 불러올 것이라는 先見에서 나온 것이다.

人皆可以爲堯舜, 自他一時成佛, 性惡, 性善論을 모두 하나로서 一以貫道하지 않으면 더불어 인간 本性을 論할 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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