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일그러진 영웅’은 중편 소설입니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힘 있는 자의 부정행위와 그 힘에 순종하는 아이들을 통해 작가는 어른들의 사회를 폭로 했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자유당 말기입니다.

부정선거와 부정부패라는 그 당시 우리나라 정치 현실의 부조리를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을 빌어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작은 공간이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반장인 엄석대는 5학년 담임선생님의 묵인 하에 온갖 비리와 폭행을 아이들에게 저지르며 군림하지요. 여기서 서울에서 전학 온 ‘나’ 한병태는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담임선생님에게 석대의 비리를 일러바칩니다.

선생님은 석대의 비행을 종이에 적어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석대의 잘못을 적어내지 않고 도리어 ‘나’만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나’도 석대에게 굴복하고 맙니다.

그러나 6학년이 되어 패기 찬 젊은 선생님이 담임으로 오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뀝니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석대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과 시험성적에 의심을 품고 심한 체벌을 가한 끝에 석대로부터 시험의 부정행위를 자백 받습니다.  

사실, 이 글을 읽다보면 엄석대의 패배가 남기는 씁쓸함보다도 더 씁쓸하게 하는 것은 반 아이들 이더군요.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반장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던 엄석대의 몰락을 다룬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 아이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이 보이지요. 거기에는 왠지 모를 분노가 일어납니다. 한 사람의 권력과 폭력 앞에서 반 전체의 아이들이 어쩌지 못하고 복종하다가 6학년 담임이 더 강한 자라는 것을 안 순간 아이들은 엄석대의 비리를 앞 다투어 불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요. 아니라구요? 아! 참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렇게 만드는 사회의 문제점일 겁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작가는 말하고 싶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집단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두 군데 있습니다. 병태가 마지막에 취한 행동인데요. 반 아이들이 엄석대의 부정과 폭력을 폭로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엄석대의 독선에 저항함으로써 많은 불이익을 당했던 한병태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한병태 역시 제가 느꼈던 집단의 속성에 분노를 느낀 건 아닐까요. 가짜 영웅을 만든 건 바로 석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또 하나는, 주인공 한병태는 엄석대가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열차 간에서 경찰에게 잡혀가는 엄석대를 목격하자 비통해 합니다. 우리들의 영웅 엄석대는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일종의 자기 합리화로 보여 집니다.

한병태는 일류대를 나와 전망 있다고 여겨 세일즈 맨이 되지만 그것은 대기업의 일회용에 불과했고, 그 뒤 사업도 실패, 지금은 사설학원의 강사로 일하고 있지요. 그런데 자기보다 훨씬 못했던 친구들은 대기업의 부장, 교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엄석대가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면 자신의 삶이 실패로 끝나도 합리화가 가능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러나 마지막에 보면 가족들이 잠든 곁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주인공은 눈물을 떨어뜨립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그를 위한 것인지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안도인지 뚜렷하지가 않다, 고 했는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저는 당연히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안도로 읽혀지네요. 그래서 살아볼만한 세상이라는 뜻 아닐까요?

5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왕따’라는 다른 이름이 학교 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기도 어느 학교에서는 한 학생에게 부당한 폭력이 가해질 때 모두 함께 ‘멈춰’라고 외치도록 교육한다고 하네요.

참 좋은 방법인거 같습니다. 한 사람이 아닌 집단의 행동은 개인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어떤 폭력도 비리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석대는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서, 학교 밖에서 배신한 아이들에게 보복을 하지요. 그때 해결을 유도한 담임선생님의 방법도 바로 집단을 이용한 방법이었지요.

엄석대에게 당하는 아이들을 향해 심한 매질을 하면서 “다섯 놈이 하나에게 하루 종일 끌려 다녀. 너희들은 두 손 묶어 놓고 있었어. 이 멍청한 놈들” 라고 다구쳤지요. 그 뒤 아이들은 당하지 않고 여럿이서 석대에게 달려들었고, 석대는 꽁무니를 빼 버립니다.

결국 이 소설은 집단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집단의 힘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6학년 담임은 폭력을 써서 엄석대를 제압하고 폭력으로 아이들에게 비굴했던 굴종을 회복하게 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폭력이지요. 그리고 평정을 찾은 다음에는 민주적으로 반을 운영하도록 철저히 자율에 맡기고 기다려 줍니다. 여기 대해서는 어떻게 읽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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