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일본 가라츠 무령왕 축제 답사기

나의 여행은 언제나 새롭고 성공적이다. 같은 장소를 찾아가도 그것은 낯익은 가운데 최초의 것이고 새로운 곳이다. 이것은 나 자신 인생의 하루하루를 이 세상에서 맞이하는 최초의 날이자 최후의 날이라 여기며 사는 삶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무엇을 보든지 감사하고 새롭지 않을 수 없고 누구를 만나든지 반갑고 정답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눈물겨운 자연과 피붙이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바로 여행이다. 그러므로 나의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성공한 여행이고 여행을 마치고서도 오래 끝나지 않는 여행이겠다. 

아, 그러나 그 많은 바람과 나무와 하늘과 땅들과 그리고 꽃들과 풀들과 바다와 개울과 산들과 도시와 집과 길의 기억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으랴. 더구나 거기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오갔던 수풀처럼 쌓였던 가슴 벅찼던 많은 이야기와 요모조모 히떠운 농담과 깔깔 웃음과 잔잔한 미소와 온갖 눈짓과 발짓들을 어찌 다 기억하고 간직한다 할 수 있으랴. 

그리하여 우리는 수첩을 꺼내어 그 많은 소감과 견문을 깨알글씨로 적어보기도 하고 사진기를 꺼내어 순간순간 목 메인 마음으로 셔터를 눌러대지만 그것조차 시간이 지난 뒤엔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물 흘러가듯 흘러가게 하고 바람 사라지고 구름 흩어지듯 그렇게 내버려두었어야 하는 건데 미욱하고 어리석은 우리는 또 다시 여행기란 것을 남겨 뒷날 스스로를 일깨우고 기억하고자 안타까운 손길을 내민다. 

일본 행선길은 한번이 아니다. 혼슈 쪽 두 번에다 큐슈 쪽 세 번. 도합 다섯 번 가운데 두 차례가 무령왕 축제로 떠난 가카라시마 여행이었다. 처음 여행은 2011년 6월. 

그리고 두 번째는 올해 6월. 일정이 같고 목적이 같았지만 두 번의 여행은 서로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여행이었다. 고향을 찾아가듯 낯익고 반가운 여행이었으며 충분히 새롭게 반짝이는 여행이었다. 

2014년 6월 5일부터 9일까지 4박 5일. 6.4 지방선거를 마친 다음날 선거방송을 보느라 잠을 설친 눈으로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공주를 떠나 부산에 도착, 부산국립해양박물관을 관람하고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부산국제터미널에서 일본이 운영하는 고속선으로 3시간,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항을 향해 출발했다. 

번번이 요맘때 뱃길은 순항이다. 구름 낀 날이든 해 밝은 날이든 물결은 그리 높지 않게 일렁이며 머나먼 수평선을 보여준다. 현해탄. 가까이 일제 침략기 우리의 어른들이 오가며 한숨을 보탰을 그 바다. 

임화(林和) 시인의 시에도 나오고 「사의 찬미」로 유명한 개화기 성악가 윤심덕(尹心悳)이 애인 김우진(金祐鎭)과 함께 일본에서 돌아오가 몸을 던진 바다가 이 바다이며 더 오래 전엔 조선의 통신사가 오갔던 뱃길이며 고려를 넘어 더 먼 옛날엔 백제의 배가 오갔던 바다가 바로 이 바다, 현해탄이다. 

허지만 오늘날 우리는 한숨 없이 굴욕 없이 그 바다를 오간다. 더구나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백제 25대 임금, 웅진백제의 중흥주인 무령왕의 탄생지가 일본의 한 조그만 섬인데 거기서 일본인들이 그 일을 빌미삼아 축제를 벌인다 하여 그 축제를 보려고 가는 길이다. 

일행 22명. 지난번엔 더 많은 인원이었는데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 영향으로 인원수가 준 것 같다. 허지만 이번에는 2011년 백제문화제 무령왕 선발대회에서 뽑힌 무령왕 내외를 동행하게 되어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뿐더러 일본의 도조(陶祖)인 이삼평(李參平) 선생의 고향이 공주인 관계로 이삼평 선생과 도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이삼평연구회’(회장 이종태)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의 주제는 두 가지가 되었다. 무령왕과 이삼평 선생. 

일본은 가 볼 때마다 특별한 인상이다. 우선 산이나 들이나 마을에 나무가 우거지고 거리가 좁고 깨끗하다.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리와 창문. 거기에 드리워진 커튼. 지붕이나 벽의 색깔도 회색 아니면 검정색. 거기에 드문드문 백색이나 붉은 색이 들어갈 뿐인 간판. 강렬하고 고요하다. 차라리 적요를 느낀다 할까. 집집마다 특색 있는 꽃들을 가꾸고 있다. 붓으로 마름질한 그림처럼 말끔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내는 일본이 활기가 없는 나라, 어두운 나라라 말하지만 내 생각은 이것이야말로 일본적인 특색이 아닐까 싶다. 겉과 속이 많이 다르다지만 상냥하고 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일본 사람들. 우리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인 걸 알아서 그런지 공식적인 행사 때마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는 걸 잊지 않는다. 이유야 어찌되었든지 이러한 점은 많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싶다.

관광지나 역사유적을 돌아보아도 일본 사람들의 것은 특별했다. 잘 가꾸고 다듬고 자신 있게 내세운다. 어떤 경우는 자기네들에게 부정적인 유적이나 역사까지도 관광자원으로 삼는 걸 볼 수 있다. 

몽골촌이 바로 그 예인데 일본 역사상 유일하게 외국으로부터 침략 받았던 역사를 소재로 하여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바꾸는 그들의 발상은 놀랍다. 

우리는 성이 무너지면 완전히 허물고 다시 쌓는데 일본인들은 허물어진 것을 그대로 두고 그 사이에 흙만을 채워 보강해놓기만 했다. 그러므로 전후비교가 가능하게 했고 파괴 그 자체까지도 좋은 역사자원으로 삼는다. 나고야성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 이런 점 또한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좋은 것을 인정하고 나쁜 것을 또 제대로 알아서 그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준비성이 없고 사후반성이 많이 모자란 사람들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 때만 왕왕대다가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이제 우리도 좀 더 차분해지고 고요해질 때가 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일본을 따라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의 좋은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모자란 점은 과감히 바꾸는 문화와 정신의 성숙이 필요하다. 잔혹한 식민지 통치에도 시치미를 떼고 위안부 문제에도 눈을 감고 독도 문제에 한사코 떼를 쓰는 일본인들. 그들도 백제에 대해서만은 관대하다. 

백제가 하나의 해결방안이 아닌가 싶다. 천 500년 전 백제의 한 왕자님이 태어났다는 일본의 한 작은 섬. 그 섬에서 일본인들은 올해로 13년째나 축제를 벌이고 있다. 

백제 무령왕 탄생 축제. 여기에 호응하여 우리의 공주에서는 뜻있는 유지들이 돈을 모으고 공주대학교의 교수(김정헌 교수)가 디자인하여 가카라시마, 바로 우리의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섬에 기념비를 우람하게 세웠다. 대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올해로 두 번째 가 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솟아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다. 역사와 전설 속의 무령 임금을 다시 뵙는 듯한 감개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나란히 세워 장식한 탑 주변에 ‘우리는 백제인이야’라는 문구를 다시금 대할 때 백제만이 한일 간의 꼬인 마음을 푸는 열쇠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어떤 여행이든 그 여행에는 뜻밖의 횡재가 있고 숨겨진 보석이 있을 수 있다. 이번 여행 가운데 나에게 온 보석과 횡재는 수국 꽃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나. 일본에 갈 때마다 수국 꽃에 반한다. 꽃의 종류도 가지가지이고 색깔이나 모양이 참 여러 가지다. 

눈길 머무는 곳마다 눈부신 꽃이요 발길 머무는 곳마다 새로운 꽃이다. 황홀경의 연속이다. 수국 꽃 앞에서 발길이 술 취한 사람처럼 휘뚱거려진다. 한국에서도 수국은 장마철이 시작되는 초여름에 피는 꽃이다. 처음 갈 때도 수국이 한창이었는데 이번에도 수국이 장히 좋았다. 일본이란 나라가 수국 꽃이었고 수국 꽃이 또 일본이었다. 

수국과 더불어 이번 여행에서 얻은 또 하나의 보석은 여행의 둘째 날 야메〔八女〕란 고장에서 만난 오이시 요코〔大石 要子〕란 일본여성이었다. 점심식사와 일본차 시음 체험을 위해 들른 곳이 야메시인데 정말로 거기서 뜻밖의 한 인물을 만났다. 

시청의 시민회관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일본여성이 나를 찾아와 나태주가 아닌가 묻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국말을 떠듬떠듬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또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얼마 전 우리 공주시청을 방문하는 길에 황인권 씨로부터 내 시집을 선물 받았노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관광객들에게 줄 선물로 시집 세 권만 사인해서 달라는 청을 받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야메시의 오이시 요코 여사였던 것이다. 그녀는 내 시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난 듯 가슴속에 정다운 느낌이 들었다. 

아, 일본에까지 와서 내 시의 독자를 만나다니! 그것은 일생의 영광이었고 기쁨이었다. 나는 즉석에서 시 한편을 써서 그녀에게 주었다. 그것은 「수국」이란 이름의 시였다. 아내도 요코 여사를 만나 좋아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동기간처럼 얼굴을 마주 보며 웃기도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나누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옆방으로 옮겨 일본차 시음체험을 했다. 차마 먹기 아까운 화과자와 따뜻한 말차의 맛이 특별했다. 차 자리가 파할 때쯤 나는 요코 여사를 불러 그녀에게 지어준 시를 사람들 앞에서 읽어주었다.

방을 가로질러 저편 문간에 서있던 요코 여사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참으로 그것은 귀한 경험이었고 묘한 느낌의 순간이었다. 

모든 행사를 끝내고 우리가 차를 타고 떠날 때 점심식사 대접을 해주었던 야메의 아낙들이 모두 도로로 쏟아져 나와 떠나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또 흔들어주었다. 언제 다시 올 것이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냐! 인생이 부질없듯 여행지에서 만남과 사랑은 더더욱 부질없어 애달프기만 하다. 

아무래도 가카라시마 무령왕 축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 이번엔 특별히 한국에서 준비해간 예능프로그램이나 특별한 기획이 없어 몇 년 전 백제문화제 때 무령왕 선발대회 때 뽑힌 무령왕 부부를 대동해간 일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종일 무거운 왕관과 두꺼운 의상으로 고생을 했지만 한국에서 온 무령왕의 모델을 일본인들은 정말로 환생한 왕처럼 대해주었다. 무령왕 내외를 배석시키고 지낸 무령왕 탄신제와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오비야우라 동굴에서의 제사는 실감 있고도 장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무령왕 축제가 열리는 가카라시마, 그 작은 섬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축제마당에 나와 춤을 추는 가카라시마 초·중학교 학생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안타까웠고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수도 많이 줄어들어 섭섭한 마음이었다. 

여전히 숯불을 피워 생선을 구워먹는 점심은 재미도 있었고 맛도 좋았다. 제일 좋았던 것은 관객과 오야지 댄싱 팀이 어울려서 춘 춤이었다. 간단한 동작을 익혀 함께 어울린 시간은 국경과 언어를 넘어서 즐겁고도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수줍음을 잘 타는 아내마저도 댄싱 팀에 이끌려 춤을 추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배로 가카라시마에 도착할 때 지난번에는 학생들과 주민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 나와 환영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태극선만 들고 나와 흔들어주었다. 냉랭한 한일관계나 정치문제가 집혀지는 대목이었다. 

대신 우리가 떠나올 때 오야지 댄싱 팀과 주민들이 나와 배의 난간에 색종이 테이프를 여러 개 매달고 그 한 끝을 잡고 배가 떠날 때 풀어주는 해프닝은 마음을 짠하게 해주었다. 때맞춰 배의 선장은 부웅~하고 뱃고동을 길게 울려주었고 우리는 모자를 벗어 크게 흔들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금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도자기에 대한 것이다. 일본도자기와 관계있는 두 곳을 보았다. 이마리〔伊萬里〕와 아리따〔有田〕. 두 곳 모두 한국 도공과 관계있는 곳이라 한다. 처음 가본 이마리는 참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울려 끝도 없이 많은 도자기 판매장들이 오름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안개에 어린 바위산들은 중국의 그것인양 신비감을 주고 고요함 속에 묻힌 마을은 전체가 도자기 그것이어서 신선의 마을이 아닌가 싶었다. 이에 비하여 아리타는 두 번째라 낯이 익어서 좋았다. 

이삼평 선생이 처음 도자기 만들 흙을 발견한 아리타 자석장을 둘러보고 이삼평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이삼평 선생을 신으로 모신 도산신사(陶山神社)에 올랐다. 내려오면서 이삼평 선생 15대손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렀다. 

지난번에도 일행 중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없어 민망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아 가게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분(김진호 씨)이 도자기 한 점을 사드렸다고 나중에 들었다.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참 좋은 일을 하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흔히 하는 얘기지만 여행은 어느 곳을 가느냐 그 행선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 그 동행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번에 나는 아내와 함께 해서 개인적으로 기념할 만했다. 뿐더러 특별하고도 좋은 동행들이 있었다. 

우선 길라잡이와 강의자로 나선 공주대학교의 윤용혁 교수와 서정석 교수, 매년 이 행사를 주관하는 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의 정영일 회장, 이 행사의 프로그램과 일정을 총괄 조정하는 금강뉴스 신용희 대표, 이삼평연구회의 이종태 회장, 이종태 회장은 KBS아나운서 출신으로 여행길 내내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일을 톡톡히 맡아주었다. 거기에 더하여 좋은 분들이 많았다. 모두가 공주를 사랑하고 역사나 문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다.  

더욱 특별하기론 두 사람 화가가 일행 중에 있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안혜경 화가. 공주가 좋아 공주에 남편과 함께 집을 짓고 사는 화가로 여행 중 조용히 일행 중에 끼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김영화 화가는 서울서 따로 내려와 부산에서 합류하고 또 부산에서 헤어진 여성인데 여행 도중 만나는 사람들을 스케치하여 그 그림을 보여주고 때로는 모델이 된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여 순간적인 감동과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어낸 인물이다. 

돌아와 그녀의 커다랗고도 둥그런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찌하여 화가의 눈은 그렇게 크고도 둥근 것이어야 했던가! 나는 부산에서 헤어진 뒤 핸드폰 문자로 그녀에게 시를 한편 지어 보내주기도 했다. 

 한 가지 더 첨언한다면 여행지 곳곳에서 나와 우리를 도와준 현지 일본인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이 모두가 평소에 쌓아놓은 윤용혁 교수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짐작하면서 선연선과(善緣善果)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몇 년 있으면 이삼평 선생이 일본에 도자기를 전래한 지 400년을 기념하여 큰 도자기 축제를 연다고 한다. 그 때 다시 운 좋게 기회가 주어져 다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 가방을 오래 방안 구석에 놓아두면서 여행의 날들을 반추하는 버릇이 나에겐 있다. 어찌 우리 그 길을 다시 갈 수 있으며 한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으랴.
정영일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나태주 문화원장이 자작시 ‘무령임금’을 낭독하고 있다.
가카라시마에 세워진 무령왕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
무령왕이 탄생하신 오비야동굴 앞에서 기념촬영
야메시 이와타야마 고분을 둘러보는 일행
아리타 이삼평 묘를 찾아 계룡백일주로 헌작하는 이종채 이삼평연구회장과 일행
아리타 자석장을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하는 일행의 모습
이마리의 무명 조선인 도공묘를 둘러보는 일행
전통다도체험 모습
2011년 백제문화제 무령왕(이영길)과 왕비(오상희)가 오비야동굴에서 헌작을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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