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1920년대 소설을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작가에 대해 좀 알아볼까요. 현진건 작가에 대한 일화가 있답니다. 작가가 동아일보 기자로 있을 때입니다.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없앤 사건이랍니다. 사실만을 게재해야 하는 신문의 본분을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을까요.

그 사건으로 작가는 언론계에서 쫓겨나고 가난한 삶을 살다가 죽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협박 또는 생계 때문에 일제에 협력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현진건 작가는 끝까지 일제에 협력하지도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산 작가들이 일제에 협력하지 않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또한 작가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근대문학의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세운 사람입니다.

지식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핍박한 삶을 살았던 작가가 그 시대의 사회상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살펴보자구요.

우선 복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작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복선과 반어법이니까요. ‘운수 좋은 날’ 은 도시 변두리에 살면서 인력거를 끌어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하층민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줍니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음습한 분위기는 뭔가 불행한 일이 일어 날 거 같은데, 인력거꾼에게는 더 없이 좋은 날이라 하고 있네요. 결국 좋은 날이 아내가 죽는 불행한 날이 되는 소설의 결말을 앞부분에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복선이라고 합니다.

미리 작가가 살짝 언급해 두는 것입니다. 영어로 치면 힌트를 주는 것 정도 될라나요. 이 작품에서 복선은 여러 군데서 언급되어 집니다. 집 가까이 다가가면 발이 무거워지고, 집에서 멀어지면 이상하게도 발이 가벼워진다든가 하는 것은 집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암시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자주 쓰입니다. 어두운 부엌을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첫 장면, ‘공공의 적’에서 이성재가 부모를 살해하고 나올 때 엄지손톱이 부러져 아파하면서 만지던 장면. 오리무중이던 사건은 떨어져 나간 엄지손톱이 단서가 되어 잡히잖아요. 그것이 복선이지요. 다 안다구요?

또한 작가는 반어법을 잘 활용해서 하층민의 핍박한 삶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람과의 갈등보다는 시대적 상황을 그리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보여지네요.

반어로 표현되고 있어 궁핍함이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요. 병든 아내에게 약 한 번 지어주지 못하고 먹고 싶다는 설렁탕도 사 주지 못하는 가난한 가장의 비애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김 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과 나무를 사다 주었더니 아내는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볼이 미어지도록 먹고는 배가 켕겨 눈을 흡뜨고 지랄병을 하는데 김 첨지는 그런 아내에게 빰을 후려칩니다.

‘에이, 오라질 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이렇게 말은 모질게 하면서도 김 첨지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그러한 아이러니는 이 소설에서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실제 속마음과 다른 김 첨지가 내밷는 비속어나 거친 말투는  하층민들의 삶이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힘을 지녔지요. 이런 반어적 행동이 역설적이게도 더 안타깝게 만듭니다.

그날, 운수가 좋아 돈을 많이 번 김 첨지는 아내가 그렇게도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지만 김 첨지를 기다리는 것은 아내의 싸늘한 시신이었습니다.

죽은 시신을 붙들고 발로 차고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껴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하고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아내의 얼굴을 비벼댑니다.

만약 아래채가 있다면 말이예요. 그 문을 열면 김 첨지가 설렁탕 그릇을 옆에 두고 오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올 거 같지 않나요? 가난이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지요? 저는 얼마 전, 금전적으로 손해를 봐서 속이 상했는데 이 작품 속의 가난을 마주 대하니 이만큼이라도 가진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모질게 하는지 밉다구요? 저도 밉네요. 남자들은 아내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는데 저렇게도 인색한지 모르겠네요. 

독후감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세요. 어느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나요? 반어법에 대한 경험? 일제시대의 비참한 삶, 그리고 지금의 풍요? 그 시대의 작가? 김첨지가 아내를 구박하는 심리? 무엇을 쓰든 독후감이란 건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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