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쾌대 (1913∼1965?), 캔버스에 유채, 178×216㎝, 1948

시간이 흘러도 어떤 일은 또렷하게 기억되고 상처로 남기도하지만, 또 어떤 일은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우리는 알지 못하고 숨겨진 일도 있고 그냥 그렇게 두리 뭉실 넘어간 일, 과거 속으로 묻혀버린 사건들이 많이 있다.

특히 정치, 권력, 힘과 관련된 사건은 집권한 통치자가 의도하는 데로 흘러간다.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와 같은 대중매체보다 빨리 확산되는 SNS 덕분에 요즘은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빠르게 확산되고 빠르게 잊혀 진다. 빠름빠름의 시대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일본 교과서 때문에 온 나라가 독도 이야기로 들끓었지만 사실 지금도 60년 전 독도가 폭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쾌대의 그림 ‘군상’을 찾아보다가 이 그림과 연관되어 있는 역사 속 독도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1948년 6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울릉도와 강원도 어민들은 독도해상에서 고기를 잡고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비행기가 그들에게 폭격을 가한다.

미국 극동공군사령부의 B-29폭격기 아홉 대가 사전 통보도 없이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총사격을 하는 등 폭격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어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독도 폭격에 대해 미군정은 폭격사실을 부인하다가 ‘B29 폭격기가 고도폭격 연습을 하면서 어선들을 바위로 잘못 알고 연습탄을 투하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해명했다.

국민들은 분노했지만 책임을 물을 힘이 없었던 민족의 슬픈 현실을 이쾌대는 그림으로 풀어냈다. ‘독도사건을 지켜보며 약소국의 비애를 통감한 이쾌대가 민족의 현실에 분노하며 그려낸 작품이 바로 군상Ⅳ이다.’ 라고 박소울은 말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해방을 염원하는, 쟁취하는 우리민족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림은 파노라마 사진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며 살펴볼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고통에 신음하며 울부짖는 사람, 공포에 떠는 아이,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고 쓰러져 뒤엉켜 있다. 시선을 왼쪽으로 옮겨보면 아이와 여자, 청년,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힘겹게 일어나며 정면을 보기도하고 화면 밖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향해 걸어 나가고 있다.

혼돈의 상태에서 벗어나 힘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뛰어난 소묘를 바탕으로 화면 구성도 짜임새가 있고 연극의 한 장면 같이 표현했다.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같은 군상이 등장하는 역사화가 떠오른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절에 그린 소묘와 해부학을 보면 그가 매우 탐구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파 그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초기 한국 서양화단에서 서사적이고 큰 그림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군상시리즈는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화가의 사적인 이야기가 포장되어 유명세를 타기도하는 현실에서 그는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우리 미술사에서 사라졌었고, 아내와 가족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그의 이름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념이 낳은 비극 속에서 그렇게 사라지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당시 이쾌대는 시간이 지난 후 그림으로 표현했지만, 우리는 이제 실시간으로 SNS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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