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폭도(朴淵瀑圖), 겸재 정선 謙齋 鄭敾 (1676-1759) 비단에 수묵, 119.4×51.9㎝ 개인소장

집에서 술을 빚은 지가 일 년이 되어간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식구를 둔 덕분에 솜씨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술을 빚는 일은 정성도 중요하지만 매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족히 백일은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다.

며칠 전에 함께 술을 빚는 K의 집에 빚어둔 술을 거르러 갔다. 그 집에는 커다란 그릇에 물이 담겨서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마을 상수도를 사용하는데 물 사정이 좋지 않아서 높은 곳에 있는 이집은 물이 잘 나오지 않거나 졸졸 조금씩 나온다고 한다. 얼마 만에 보는 풍경인지모르겠다.

도시 아파트에 살 때 소독이나 공사 등등의 문제로 단수 된다는 관리사무실의 방송을 듣고 물을 받아 두던 일이 있기는 했지만 물이 부족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니 정말 큰 일 이다.

자연의 순환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고 TV에서 보던 가뭄소식은 그냥 멀리 있는 일로 여기며 살았었는데 시골로 이사 온 후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집 텃밭에 심은 채소며 잡곡도 비가 오지 않아서 비실비실하지만 조금씩 물을 주며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농부는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가뭄은 가끔 정치인들이 우스운 몸짓을 하게하고 우리는 그것을 보며 안주삼아 이야기도 한다. 제주와 남부지방에 장마가 시작됐다더니 오후 시간이 되며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빗소리가 제법 크고 빗방울이 굵다. 오랜만에 오는 비이니 충분히 마른땅을 적시면 좋겠다. 

빗소리가 폭포소리처럼 들린다. 정선의 그림에 등장하는 박연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상상하면 더위도 가뭄도 모두 물러갈 것 같다.

먹의 농담으로 표현한 깎아놓은 듯이 생긴 바위와 녹음, 단숨에 그린 것 같은 회색 물줄기, 폭포의 당당한 기세는 못에 사는 용녀의 긴 백발 같기도 하다. 서경덕, 황진희와 더불어 송도삼절이라 불리는 박연폭포의 시원한 물줄기와 폭포소리가 그림에서 들려온다.  

대부분이 중국 산수화를 모방하는 관념적인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 겸재는 그의 마음을 담아 조선의 경치를 그렸다. 1미터 쯤 되는 세로로 긴 화면에 폭포가 중심을 이루고 사람과 정자는 아주 작게 그렸다.

폭포위에 있는 연못의 바위와 아래 연못에 있는 바위가 동시에 보인다. 진경산수는 한 점에 초점을 맞춰서 찍는 카메라렌즈나 서양의 원근법과 다르게 시점이 이동한다. 겸재는 폭포 꼭대기에 있는 못에서 시작해서 물줄기를 따라 아래 연못과 사람, 정자로 새처럼 시선이 이동하며 폭포를 보고 그렸다.

눈이 이동하는 동안 귀는 폭포 물줄기의 우렁찬 소리에 취해 무념의 상태가 되고 자연에서 더욱더 작은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경치를 보며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곳을 더욱 강조하고 새롭게 구성하였다.

폭포소리를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정선의 박연폭포 속 인물이 되어 정자에 앉아 시원한 탁주를 권하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안주삼아 더위도 잊고 세상사도 잊고 폭포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