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1910) 1897, Oil paint, 129.5×200.7cm, Museum of Modern Art

우리는 매일 매일이 똑같은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곤 한다.

학생일 때는 시험이 있는 날이나 개학 전날에 일기며 방학숙제를 하지 못했을 때면 갑자기 내가 아파서 학교에 못가거나 천재지변이 생겨서 휴교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출근길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헤리포터처럼 호그와트로 향하는 마법기차에 타고 있는 나를 상상하기도 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좋아하는 나에게 여행은 일상 탈출의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일탈은 여행뿐이 아니다. 운전을 하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빠지면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속도위반 카메라에 찍히기도 한다.

이 그림은 현실을 떠나 멀리 가 있다. 그래서 당대에는 사람들의 험담을 들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현실인 듯 아닌 듯 환상세계로 초대하며 숨 쉴 틈을 준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아 세련되지 않고 서툰 듯 보이는 앙리루소의 그림솜씨도 일상적이지 않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그림에 더한다.

어스름한 하늘빛에 둥근 달과 별이 떠 있고 호수, 강, 바다 같은 물을 사이에 두고 하얀 산과 사막이나 언덕 같은 구릉이 있다. 그곳에는 검은 피부에 어울리는 화려한 줄무늬 패턴 옷을 걸친 집시가 눈을 감고 자고 있다. 그의 여행친구인 지팡이를 꼭 쥐고 물병과 만돌린은 옆에 놓아 둔 채로. 꼬리를 세운 사자가 그의 곁에서 얼굴을 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사자가 서있는 곳과 집시사이에는 거리가 조금 있고 이렇게 가까이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사자는 실재로 옆에 존재하지 않고 그의 꿈에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래서일까? 먹이사슬의 꼭짓점에 있는 사자가 등장한 그림인데 너무나도 평화롭다.
 
예전에 우리 가족은 함께 둘러앉아 정글에서 동물과 함께 교감하며 살아가는 타잔이나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고 있는 동물을 보여주는 동물의 왕국 같은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어린 내 눈에 사자는 입에 먹잇감을 물고 있고 사람을 위협하는 무섭고 힘이 센 존재로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먹이사슬의 꼭짓점은 바로 온갖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최근에 짐바브웨이의 세실의 죽음과 트로피헌터, 사냥에 관한 것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먹기 위한 사냥과 내가 살아 남기위한 사냥에서 취미나 스포츠, 산업, 쾌락의 사냥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오늘 먼 길을 걷고 곤하게 자고 있는 집시는 내일은 또 길을 떠날 것이다. 잠이 보약이라고 한다. 잠은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서 그를 다시 일으킨다.

라이언 킹의 멋진 심바처럼 사자는 잠자는 그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하쿠나 마타타

* 하쿠나 마타타 :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로 ‘걱정 거리가 없다’라는 뜻 <편집자 주>

저작권자 © 금강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