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희 기자의 차 한잔 인터뷰

조동길 교수가 지난 8월 28일 공주대에서 개최한 정년퇴임식에서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공주대 편백나무 숲에서의 조동길 교수

 1973년 2월 대학 졸업 후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공무원 생활을 시작,  2015년 8월 말까지 42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홀 가분(?)한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 여행도 마음대로 다닐 것이고 쓰고 싶은 글도 맘껏 쓸 것이라 미리 짐작해 본다.

정년을 며칠 앞둔 한 여름날,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주대 스카이라운지에서 조동길 교수와 차 한 잔의 시간을 가졌다.

기자가 정년을 맞는 감회를 “시원섭섭하신가요?”라며 먼저 선수를 치자 조 교수는 “맞아요.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홀가분함과 한편으로는 수십 년 몸에 밴 일을 놓아야 한다는 서운함이 교차하는 ‘시원섭섭’ 바로 그거예요”라고 말하며 간만에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않은 누님’같은 여유로움이 보인다.

 

▲ 공주사대부고 22회 졸업생들과 함께(중앙 조동길 교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에게 수업을 받은 수천 명이 넘는 사람 중에는 국회의원이나 시장 등 정계를 비롯하여 교육계, 경제계, 문화계 등 여러 곳에서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죠. 그러나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제자가 가르친 제자는 물론 또 그 제자의 제자가 대학에 들어와 내 가르침을 받은 경우도 있었지요. 그들에 의해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한 부분이 채워지고 있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함께 보람도 크고 이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는 대답은 그의 반평생 대부분을 보낸 교직이 적성에 맞는 ‘천상 선생님’임을 말해 준다. 

본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조동길 교수와의 인연도 20여 년이 되는데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는 아니, 변함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가운데 강한 기운을 그에게서 느낀다.

2002년 여름이라고 기억된다. 공주향토문화연구회에서 일본 큐슈지역으로 백제역사답사를 가던 중 여객선에서 “소설가 교수님, 첫사랑 얘기 좀 해 주세요”라며 기자가 그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고자 꼬드겼던 일이 있는데 그때도 조용한 미소만 지을 뿐 여행의 들뜬 우리들만 무색해졌던 일이 생각났다. 또 하도 말이 없는 그에게 사모님이 “아이구 말 좀 해 봐요 말 좀!”이라고 투정을 부리자 잠시 후 조 교수가 “말! 됐지?”라는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됐다.

아름다운 전설 

조동길 선생님께 드리는 헌시

박순규(시인, 충남평생교육원 문헌정보부장)
                                       
어릴 적 뒷동산에 올라
구름 덮인 산봉우리 보고 있노라면
그 속엔 도술을 부리는 스님도 있고
커다란 호랑이도 있었다지요
오래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예쁜 선녀를 만나기도 했다지요

어쩌면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첩첩 골짜기를 훌훌 뛰어 넘어
무지개를 찾아 먼 나라로
떠나고 싶기도 했겠습니다

당신께서 늘 바라보던 그 산을
사람들은 세상의 배꼽이라 믿었다지요
우리의 한과 소망을 품은
산꼭대기 검은 바위가 하얗게 되면
장닭이 여의주를 문 용으로 변하고
바야흐로 새 세상이 열린다 했다지요

스스로를 용이라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용트림인 양 시끄러운 소음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어지럽힐 때
당신만은 힘찬 용의 기적보다는
착하고 부지런한 닭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합니다

하나 둘 셋…, 수백 수천 수만의
당신이 품어 기른 선한 닭들이
꼬끼오, 곳곳에서 청아한 소리로
푸르른 신새벽을 알리고 있습니다

계룡의 품 안에서 태어나
평생 그 언저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겸허한 당신의 얼굴에서
큰 바위 얼굴도 보이고
비기 속의 주인공도 보입니다

이제 뚜벅뚜벅 걸어오신 당신의 발자취는
또 다른 전설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우울할수록
우리는 그 전설이 더욱 그립기 때문입니다

위 詩는 지난 9월 5일 공주대 산학연구관 강당에서 제자(사대부고 22회)들이 마련한 조동길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고별 마당 ‘아름다운 사람, 석별의 정’ 에서 제자 박순규 시인이 스승에게 바친 헌시 전문이다.

이날 고별 마당에는 사대부고 22회 졸업생들로 구성된 울림둘둘합창단(회장 최석근)의 ‘사랑의 테마’, ‘내 맘의 강물’을 불러 스승의 정년을 축하했다.

또 윤현숙씨는 ‘돌아가고 싶은 시간 속의 선생님께 올리는 편지입니다’에서  “사대부고 운동장을 밟으며, 계단을 오르내리던 120명, 여학생들의 마음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여학생이 두 반이라서 유난히 비교가 되고 학교에서도 선의의 경쟁을 부추겼지만 선생님께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라고만 하셨지 옆 반을 이기라고 말씀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철없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쾌재를 부르기도 했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무언의 가르침이 이제는 진정한 삶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라며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감사함을 나타냈다.

이에서도 조동길 교수의 성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으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공산성의 느티나무

 공주의 공산성과 무령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 환갑을 맞은 백제문화제와 맞물려 요즘 공주는 온 시가지가 축제분위기로 들뜨고 있다.

공산성에 올라 다시 한 번 금강을 내려다보며 오래간만에 성벽을 걷는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소식에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관광객들 사이로 공북루 옆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공산성으로 발걸음을 할 때부터 이 나무를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이 나무를 보면 조동길 교수가 떠올랐다. 그래서 기자는 맘속에 ‘조동길 나무’라고 명명해 놓고 있었다.

이 느티나무는 백제 무령왕과 백성들의 백제기악도 함께 부르고 춤추었을 것이고, 당나라 병사에게 공산성를 짓밟혔을 때도 같이 통분의 눈물을 흘렸고 임진왜란 때 병사들이 연못에 쓰러지는 모습에는 가슴을 쳤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느티나무는 언젠가 태풍에 큰 가지 하나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 느티나무는 그때도 지금도 그 자리에 서서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마주보며 공주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이봐 비단내, 요즘 공주가 예전과 좀 달라졌어. 나를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오는 걸 보면. 비단내 자네도 예전보다 더 맑아지지 않았나? 요즘 같으면 살맛이 나네 그려.”  그때처럼 언제나 조용히...

1949.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성장
1969. 공주중학교, 공주사대부고를 거쳐 공주사대에 입학
1973-1984. 노성중, 정산고를 거쳐 공주사대부고에서 교편
1985-2015. 공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재직 후 정년.
1990. 고려대에서 박사학위.
2015. 공주대학교 명예교수

창작소설 ‘네 말 더듬이 말더듬이’(공저 1992), ‘쥐뿔’(1995), ‘어둠을 깨다’(2009), ‘달걀로 바위 깨기’(2000) 등을 발간.
한국 현대 장편소설 연구(1994), 현대문학의 이해(1997), 우리 소설 속의 여성들(1997), 소설 교수의 소설읽기(2013), 한국 근대문학의 지실(2014), 공주의 숨과 향(2015)외 수십 편의 연구 논문.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작가교수회 회원, 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 회장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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