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세계유산 둘러보기 ②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 부소산성과 관북리왕궁지,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익산 미를사지, 왕궁리유적)가 지난 7월 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8회 세계유산등재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됐다. 우리나라 12번째 세계유산이다.

세계유산 등재 현황은 163개국 1031건(문화유산 802건, 자연유산 197건, 복합유산 32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48건, 공동등재 세계유산 31건)이다.

일본 오키나와에는 2000년 11월에 ‘류큐왕국의 구스크 및 관련 유산군’이 등재됐다. 슈리성을 비롯한 9건의 유적이다.

오키나와 세계유산은 백제문화유산과 조성 시기는 차이가 있지만 △왕국의 도성 관련 유적이 중심이라는 점, 그리고 △여러 지자체에 흩어져 있는 연속유산군이라는 점에서 우리 지역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키나와 9건 유적의 구성은 왕성 1개소, 성곽 4개소, 왕릉 1개소, 조경유적 1개소, 종교유적 2개소 등이다. △8건의 백제세계문화유산은 왕성 2개소, 성곽이 2개소, 왈릉 2개소, 불교유적 2개소 등으로 유적 성격의 구성에 있어서도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은 해외 세계유산을 찾아 그들의 세계유산 관리와 관광홍보와 개발 등에 대해 알아보고 아울러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향후 방향과 주민의 역할 등을 살펴보고자 기획취재(2015. 10. 11~10. 14)를 실시했다. 답사에는 전문가 윤용혁(공주대) 교수와 기획취재로 신용희 기자와 나정희 객원기자가 통역 및 취재기자로 참여했다.

현지 취재에는 국립대학법인류큐대학 이케다 요시후미(池田榮史)교수의 안내와 협조로 슈리성 종합연구센타의 우에주 야스유키(上江洲 安享)과장, 오키나와컨벤션 국내사업부에서는 유까 오나가(翁長由佳)과장과 유헤이 타카미(高見洋平)주임, 오키나와교육청 문화재과에서는 하지오 토히야키(萩尾俊章)과장과 킨조 카메노부(金城龜信)반장의 안내를 받았다./편집자주

1. 오키나와 세계유산의 지정

2. 오키나와 세계유산의 내용

3. 오키나와 세계유산 지정 효과와 주민활동

4. 오키나와의 특산물과 관광개발

5. 우리나라 역사와 오키나와

6. 백제유산의 향후 과제

 

Ⅲ. 오키나와 세계유산 지정 효과와 주민활동

 1. 오키나와 관광 1번지 슈리성

오키나와 세계유산의 현황과 주민활동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방문한 곳은 슈리성 종합연구센타로 이곳의 우에주 야스유키(上江洲 安享)과장은 취재진의 오키나와 답사에 여러 가지 협조를 해 준 국립유큐대학의 이케다 교수의 제자로 여러가기 자료와 함께 친절하게 취재에 응해 주었다.  수리성은 오키나와 관광 1번지로 공주로 말하면 성채에 둘러 쌓인 공산성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슈리성의 관리구분도

▲ 슈리성종합연구센터에서 우에주 과장의 설명을 듣는 취재진(왼쪽부터 신용희 기자, 나정희 객원기자, 윤용혁 교수, 이케다 교수) 

오키나와의 세계유산 관리체계는 독특한 조직 속에 관리되고 있다. 전체는 일본 정부(문화청 등)에서 관리한다. 위 슈리성공원관리구분도에서 보면 색깔별로 다르게 표시되었는데 한 문화재에서 3기구(國, 顯, 市)가 각각 관리를 하는 점이 독특하다.

중요 기구를 살펴보면 초록색 부분은 현(顯)에서, 보라색 부분은 시(市)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주황색과 갈색의 미개발 부분은 오키나와교육문화재청에서, 분홍색 부분은 나하시교육위원회에서 관리한다. 크고 작은 기구 8개 기구가 서로 연계하며 관리와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국가와 현, 재단 등의 관리를 위한 행정 전문적인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재단에서 3기관의 네트워크 즉 중재역할을 하고 있고 재단에서는 예산문제도 관리한다.  
재단 직원은 600명으로 4-50명의 학예사 등 전문가가 있고 발굴, 조사, 정비 등의 업무를 각각 맡는다.
   
재정적인 문제에서도 공익재단과 일반재단으로 나누는데 1976년 국가에서 설립한 공익재단은 해양박람회기념공원관리재단이었다가 2012년 일반재단법인 즉 오키나와츄라시마재단(沖繩美ら島財團)으로 바뀌어 이행(移行)되었다.

재단 운영관리비는 정부〔國〕와 지방〔顯〕의 출자금과 자기적립금으로 운영한다. 재단에 참여를 원하는 단체는 수의계약으로 정한다. 재단 운영의 수익사업은 국가와 현 그리고 재단의 수익사업이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것은 공원 내 복원정비와 국영오키나와기념공원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슈리성 입장료와 기획전 등 수익금은 반출된 유물 복원에 사용되고 있다.

슈리성공원 년도별 관광객의 변화

1992년에 개원한 슈리성공원의 관람객은 첫해 110여 만 명으로  매년 증가를 보였다. 특히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전해인 1999년에는 200여 만 명, 등재된 2000년에는 210만 명을 넘어섰다. 다음해인 2001년에 관람객이 10여 만 명이 감소한 것은 미국의 9.11 테러사건 때문이었다.

2007년과 2008년에 최다(공원 입장객 260여 만 명, 유료입장객 190여 만 명) 증가를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 슈리성의 관광객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주차장이 협소하기 때문이라면서 슈리성의 가장 큰 문제는 주차장 정비라고 우에주 야스유키(上江洲 安享)과장은 말했다.

우에주 과장은 “처음부터 주차장이 넓었더라면 훨씬 더 만은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수족관이 년령불문하고 슈리성에 비해 관광객수가 많은 것은 넓은 주차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외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슈리성의 연도별 관광객 변화 자료

▲ 보도취재 신청서(슈리성종합연구센터에서는 취재신성서를 제출해야 한다)

2. 주민의 활동

슈리성을 위한 주민의 활동은 우리의 궁궐지킴이 성격과 닮은 단체가 있다. 1970년 기성회(基成會)를 조직, 파괴된 슈리성 복원을 위해 활발한 복원운동을 펼폈는데 1980년부터는 정치권의 여·야 정당과 주민 모두가 복원운동에 참여하여 슈리성이 세계유산에 등재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복원운동 당시 시민들이 뭉쳐 은행과 기업가 그리고 정치인을 움직여 자금을 모으는 한편 수류성 복원운동을 이슈로 국책사업으로 이끌었다. 슈리성의 옥관(玉冠) 유물도 기성회가 복원하였다. 진품은 나하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수류성의 복원을 마친 1990년 이 단체는 해산되었다.

현재 해설사는 직원과 민간인이 같이 활동하고 민간인 해설사 두 단체가 있는데 하나는 ‘보조금이 단절된 단체’와 ‘보조금을 받는 단체’가 있다.

그 외 민간단체에서는 세계유산 단지 내 청소와 환경미화활동, 그리고 꽃 가꾸기와 나무 심기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 주민활동 안내 홍보 전단

3. 오키나와 관광컨벤션센타

두 번째 방문한 곳은 오키나와관광컨벤션센타. 오키나와 관광객수는 2014년도에는 716만 9900명으로 2015년에는 760만명을 목포로 하고 있다. 전시장, 회의장, 극장으로서의 다기능을 가진 오키나와 최대의 대형 컨벤션시설로 많은 국제회의와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오키나와 관광객 유치와 그와 관련한 업무 지원, 홍보, 국제 관광 기획, 해양 개발과 보전사업, 인재육성, 주민계몽 등 다양한 기능을 겸비한 곳이다. 또 오키나와의 여러 민간단체와의 네트워크 체계가 잘돼 있어 관광사업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준다.  

Be Okinawa!

오키나와컨벤션센터의 홍보 책자와 포스터

컨벤션센터 조직은 총무부, 기획부, 국내사업부, 해외사업부로 나눈다. 홍보과에서는 오키나와관광친선사절(우리나라로는 미스 오키나와)을 선정, 국내외 홍보활동을 하고 있고 인터넷상의 정보센터를 운영, ‘Be, Okinawa' 슬로건을 내세워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또 일반재단법인 오키나와관광 컨벤션센터에서는 정부, 의회, 현의 민간단체와 협조로 ‘찬조금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위치상으로 남쪽의 따뜻한 기후의 잇점을 살려 테마별 4계절 내내 프로모션 관광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골프를 비롯한 낚시와 스포츠대회, 각종 영화제를 유치하는 한편 해외 축제에 참가하여 오키나와를 홍보하는 행사와 국제학술회의와 국제학회를 유치한다. 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쿠루즈 관광도 빼놓을 수 없는 사업의 하나다. 

4. 오키나와 교육청

오키나와 교육청 문화재과에서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적의 진정성과 탁월한 가치가 훼손되지 않게 역사문화자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곳이다. 또 유적 주변의 경관을 보전, 정비하여 공공 공사발주시스템을 설정, 전문기술 계승자의 양성, 등록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곳 오키나와교육청 역시 오키나와현과 세계유산 ‘류큐왕국의 구스크 관련유산군’ 보전관리학술위원회와의 긴밀한 네트워크 체제를 유지하면서 행정적인 지원과 조언,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하고 있다. 보전관리학술위원회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세계유산관리 계획과 진행관리 등의 업무를 취급하고 있다.

또 특정테마별부회를 조직, 대학과 학술기관, 전문사업자, 전문가(교수)와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역의 주민과 연계하여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검토와 조정 역할을 한다. 

오키나와교육청을 방문한 취재진(왼쪽)과 하지오 과장과 킨조 반장(오른쪽)

나정희 기자가 교육청 킨조 반장에게 공주역사 4행시를 적은 부채를 선물하고 있다. 

이상 3곳(슈리성 종합연구센터, 오키나와컨벤션센터, 오키나와교육청)을 방문, 그곳 전문가와 상담 후 내린 결론은 결국 세계유산 보존관리는 정부〔國〕, 지자체〔縣〕와 시민(民)의 네트워크가 소통과 협의속에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때 세계유산의 진정한 보존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Ⅳ. 오키나와의 특산물과 관광개발

- 류큐 왕국의 미술과 생활문화 -

오니카와는 태평양과 동중국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다양하고 풍요로운 자연속에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꽃피웠다. 류큐의 미술은 일본과 중국에 원류를 두고 조선과 동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오키나와현립박물관에 전시된 조선분청자기 파편

청, 녹, 갈색의 오키나와 전통색을 보여주는 현대 도자기

오키나와 도예촌에 전시된 도자기. 우리의 분청사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예촌의 한 공방 입구. 이곳에도 '시샤'가 공방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 도자기

류큐왕국의 대표상품으로는 도자기(분청사기), 염색, 칠기, 직물, 유리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분청사기는 한국적인 면모가 보이는데 여기에는 조선 도공 3명의 분청사기 제작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609년에 일본 가고시마가 류큐를 침략, 류큐왕국의 쇼우호(尙豊)왕자가 인질로 잡혀가 에도막부 때까지 일본에 거주하게 된다. 이후 왕자가 류큐로 풀려날 때 ‘도공 3명’을 데리고 류큐로 돌아기는데 조건은 도자기 기술 습득 후 일본으로 돌려보낸다는 조건이었다.

그 후 도공 3명 중 2명은 돌아가고 1명(장헌공)은 현지에서 결혼하여 류큐에 정착, 류큐에 도자기(분청사기) 역사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후에 오키나와에서 ‘야치문’이라 불리는 도자기는 14세기 이후 중국, 조선, 동남아시아, 일본 등지의 영향을 받아 발달하였다.
 
2. 류큐 미술품으로는 왕실의 공예품 제작을 담당한 관서인 가이즈리 부교유쇼(具摺奉行所)에서 제작한 칠기, 관요(官窯)성격의 쓰보야(壺屋)에서 구운 자기 등이 있다. 회화는 16세기 중국화풍 도입으로 본격 제작되었다가 17세기 이후에는 일본화풍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 류큐의 공예품(흑칠-일륜봉황운점 사격자 침금환궤 16세기 제작)

3. 칠기는 류큐왕국시대에 중국황제와 에도바쿠후의 쇼우군한테 올린 진상품이자 류큐를 대표하는 미술공예품으로서 다채로운 기법으로 발달되어 왔다. 빙가타(오키나와의 전통 염색기술)로 된 의상은 옛 왕국의 제후, 귀족부인, 궁정무용의 의상으로만 착용이 가능했다. 오키나와의 각지에 남아 있는 직물은 왕족에 올리는 공납픔으로써 짜여진 것이다. 류큐그라스(유리)는 전후 폐품의 재활용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예술성이 높은 작품도 만들어지고 있다. 
 
4. 오키나와의 특산품

오키나와에는 건물이나 상점 입구와 식당 안 등 어디서나 수호신 동물을 볼 수 있다. ‘시샤’라고 부르는 상상의 동물인데 우리나라 해태와 비슷하다. 이곳에서는 옛부터 ‘시샤’가 건강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을 뿐 아니라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백제 무령왕의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와 같은 성격을 지녀 친근감이 들었다.     
 

오키나와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시샤' 공예품이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시샤'를 활용한 인형 관광상품

섬인 만큼 바다와 관련한 특산품으로 세계 최초의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소금은 미네랄이 21종류나 들어 있어 2000년 2월 기네스북에 올랐다. 사탕수수 원액을 졸인 흑설탕과 100년을 자랑하는 오키나와 전통주 ‘아와모리(泡盛)’가 유명하다.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기네스북에 기록된 오키나와의 소금. 이곳에서는 여전히 됫박을 사용하고 있다.

▲ 오키나와의 흑설탕은 사탕수수의 원액을 졸여 만들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 고구마를 활용한 퓨전음식은 또 하나의 관광상품이 된다.

또 오키나와는 고구마가 유명하다. 고구마의 원산지는 중남미로 유럽을 거쳐 1594년 아시아 필리핀에서 남중국으로, 그리고 10년 뒤인 1605년 류큐의 한 총관이 공무로 중국에 갔다가 중국 복주(福州)에서 오키나와에 가지고 들어와 일본 전역으로 보급되었다.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들어 온 것은 1764년 조선통신사 조엄 일행이 쓰시마에 도착했을 때 종사관으로 함께 간 퇴석 김인겸이 고구마를 보고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으로 가져 온 것이다.  

김인겸은 한글로 쓴 일동장유가에서 “이 씨를 얻어다가 우리나라 심어두고 가난한 백성들을 흉년에 먹게 하면 진실로 좋건마는”이라고 씌여 있어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오키나와 국제거리의 시장.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의 쇼핑거리다.

섬인 오키나와의 조개로 만든 전구집. 지역 특성을 살린 관광상품 개발이 눈에 띈다.

5. 류큐의 음악과 고유 언어

류큐의 음악은 왕조문화가 성숙한 17세기경 완성되어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향유되었다. 류큐의 전통악기는 궁정의식 또는 에도(江戶)에 사절로 갈 때 궁정악사와 악동자(樂童子)에 의해서 연주되었다.

류큐의 각종 의례에서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람은 여성이었으며 고대의 모계제도가 남아 여성이 군역, 농업, 상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류큐의 여성은 옷차림, 비녀, 반지 등으로 왕족, 사족, 평민의 신분을 구분하였다.

오키나와는 고유의 언어가 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소멸되다시피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키나와 고유언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자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유언어를 되살리기 위해 해외의 오키나와 이민족을 일년에 한번 초청하여 고유언어를 배우는 행사를 하고 있다.

6. 기지시줄다리기와 흡사한 오키나와 줄다리기

오키나와 답사일 10월 11일 마침 오키나와 나하시 줄다리기 축제가 열려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매년 10월 둘째 일요일에 개최되는 이 축제는 1450년 시작했으나 중간에 맥이 끊겼다가 1971년 나하시 50주년기념행사로 부활됐다.

나하시 줄다리기 축제는 새끼줄 43톤의 새끼꼬는 작업에 참여한 인원 15,000명, 축제 참가 27만명으로 장관을 이룬다. 굵기와 길이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며 오키나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축제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새끼줄을 베어가려고 경쟁을 하는데 이는 축제의 새끼줄을 가져가면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신문 1면에 크게 보도가 되었는데 오키나와 주민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이 줄다리기를 보러 관광객이 오키나와를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당진시의 기지시줄다리기와 비슷한 형태를 지녔는데 농경문화의 산물이 가져다 준 민속축제의 성격을 보였다.

나하시 줄다리기 그림.

매년 10월 둘째 일요일에 열리는 나하시줄다리기축제에서 동편의 장수가 입장하는 장면

'수리' 깃발을 들고 축제에 참가한 서편의 참가자들.

줄다리기 축제가 끝나면 새끼줄을 가져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건강과 복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10월 12일 류큐신보에 게재된 줄다리기 기사와 사진. 지역에서도 관심을 갖는 큰 축제행사다.

Ⅴ. 우리나라 역사와 오키나와

오키나와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조선과 가깝기 때문에 동아시아 해상왕국으로 번영을 누리면서 류큐 왕국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고려 장인이 만든  '대천' 명문의 고려기와

13세기에 류큐에 고려 장인이 만든 ‘大天’(연대 계유년)의 명문기와가 발굴됐다. ‘大天’ 연대의 명문기와는 우리나라에서도 발굴되었다. 또 연꽃무늬 와당도 발굴되었는데 연꽃무늬 와당은 전남 진도 용장성에서도 같은 문양의 와당이 발굴됐다. 이로 류큐왕국과 조선의 교류를 알 수 있다. 

그 외 고려시대 삼별초가 1273년(원종 14년)에 제주도에서 몽골군에 패한 후 오키나와로 가 류큐국(슈리국)을 건국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는 늦어도 14세기 이전부터 류큐 지역과 교류하기 시작했는데 조선 건국 후 류큐 왕조에 대한 교린(交隣)정책을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했다. 조선은 조선통신사를 통해 류큐에 불교 경전, 사서 등의 서적과 사원 건축술을, 류큐는 조선에 희귀 동·식물과 병선(兵船)제조술을 전해주는 등 활발히 교류하였다.
1389년에 류큐국은 왜구에게 붙잡혔던 고려인을 보호하여 고려로 돌려보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류큐국이 조선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왕조는 류큐국에 1416년(태종 16년), 이예를 사신(유구국통신관)으로 파견하였다. 이예는 왜구에게 잡혀 유구에 팔려간 조선인 44명을 쇄환하여 돌아왔다.

1430년대에는 류큐과 조선 사이의 뱃길에 왜구가 자주 출몰하고, 조선에 와서 류큐국 국사(國使)라고 사칭하는 일본상인이 있었다는 위사(僞使)문제가 생겨 그 뒤로는 중국을 통한 간접교류로 바뀌게 된다.

Ⅵ.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의 향후 과제
 
1. 관광 콘텐츠 개발

①류큐의 무령왕을 찾아서

류큐왕국의 역사에 ‘무령왕(武寧王 재위 1395~1405)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백제 무령왕과 류큐 무령왕은 무려 900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한자도 같은 武寧王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백제 무령왕이 갱위왕국의 주인공이었다면 류큐의 무령왕은 구테타로 실권한 왕이라는 점이다. 이는 참 흥미로운 일로 윤용혁 교수는 “‘무령왕을 찾아서’ 주제로 콘텐츠개발로 양국간 관광 교류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②오키나와의 홍길동을 찾아서
2011년 6월 28일 공주에서 개최된 ‘홍길동과 공주’세미나에서 설성경(연세대) 교수는 조선 선조 때 공주의 홍길동이 말년에 율도국(栗島國)으로 갔다는 주장을 하였다. 오키나와에는 비슷한 이름의 ‘율국도(栗國島)’라는 섬이 있지만 윤용혁 교수는 설 교수가 말하는 오키나와의 홍길동은 이 율국도가 아니고 야에야마(八重山) 제도를 무대로 활동한 인물로 기록상으로는 ‘오야케 아카하치 홍가와라’라고 말한다.

이시가키섬에서는 아카하치 500년을 기념해 2000년 ‘오야케 아카하치’의 비석을 세웠다. 어찌됐든 공주의 홍길동이 오키나와의 ‘오야케 아카하치 홍가와라’가 맞는지는 차후 역사 전문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공주와 오키나와는 또 하나의 연(緣)을 맺은 셈이니 이와 관련한 양국간 홍길동 관광콘텐츠를 개발, 또 하나의 공주인물 관광상품을 기대해 본다.

③ 주민단체의 지속적인 활동 격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까지는 전문가와 학계, 각 지자체의 행정력, 그리고 지역의 주민 단체의 힘이 모아진 결과다.

특히 1994년부터 민간차원의 충남세계유산추진위원회의 활동이 시발점이 되었던 것은 선견지명으로 지역 문화유산을 아끼는 전문가와 주민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지역의 공주향토문화연구회, 공주무령왕국제네트워크협의회와 공주고도육성세계유산주민관리협의회의 활동이 밑거름이 되었다.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니 할 일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세계유산의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와 주민의 봉사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官 · 學 · 民의 네트워크 형성 속에 주민의 참여활동을 기대해 본다.

2. 백제유산센터 건립

백제역사유적지구세계유산등재추진단 노중국 교수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국민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철저한 보존, 관리와 더불어 유산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백제사의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5개 지자체는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하여 가칭 ‘백제학연구센터’를 만들고 이곳이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백제사 전반을 연구하는 백제학 연구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토론회에서 주장한 바 있다.

백제학연구센터와 더불어 공주, 부여, 익산 3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백제유산센터’ 건립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또 센터를 3곳 중 어디에 건립할 것인지에 대해 벌써부터 지자체간 경쟁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우려해야 할 사항이다. 백제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되기 위해서는 한성백제의 서울시와 송파구와의 연계도 앞으로 추진해야할 과제 중 의 하나로 남아 있다.

이번 취재에 동행하여 전문가 자문을 한 윤용혁(공주대) 교수는 “백제역사유적지구 8개 유산은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오키나와 세계유산 관리가 정부〔國〕, 지자체〔縣〕 그리고 市가 각각 네트워크를 형성, 각자 분담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거기에 주민들의 단체 활동이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에서 세계유산관리의 모범적인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정부와 도청 등에서의 재정적 지원과 행정적 지원 바탕 위에 주민들의 봉사와 활동이 꽃 피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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