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수성동 겸재 정선 1676-1759, 33.7×29.5㎝,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소장

도시를 떠나 시골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가족이 먹을 것은 스스로 생산하고 만들어 먹고 만들어서 입을 수 있었으면 생각했다. 그 가운데에 술을 빚어 맛보는 것도 있었다. 술을 즐기는 식구덕분에 자주 빚다보니 지금은 주위 사람들에게 꽤 맛있다는 평을 듣는다.

술 빚기를 배우러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술을 빚게 된 이유도 하는 일도 다양하고 술 맛도 각양각색이다. 함께 만나 같은 재료로 술을 빚어도 각기 다른 맛이 난다. 삼인 삼색, 구인 구색이라고 할까?

술 빚으며 만난 인연으로 (사)우리 술 문화원 향음(鄕飮)의 ‘우리 술, 노래를 만나다’라는 시회에 초대를 받았다. 반가운 초대장에 수성동 계곡 그림이 있었다. 서촌한옥에서 하는 모임이고 수성동 계곡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 그림을 빌려 쓴 것 같은데 초대하는 이의 눈썰미가 돋보인다.

인왕산에서 청계천으로 향하는 시내 수성동. 그 물길에 깃들어 생긴 마을이 누상동과 옥인동으로 지금은 서촌이라고 불린다. 서촌에는 중인계급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오랜 동안 인왕산에 살며 인왕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던 겸재 정선, 인왕산 아래에 살면서 19세기의 신지식인 중인(中人)들과 교류하며 위항문학(委巷文學 조선 후기 중인·서얼·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을 꽃피웠던 추사 김정희(1786~1856), 양반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뛰어난 능력으로 정조의 신임을 받아 규장각 서리(書吏)로 근무했던 존재 박윤묵(1771~1849).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문장가인 이 세 사람이 그림과 시로 그 빼어난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인왕산 자락의 잊혀 진 계곡 수성동(水聲洞)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성동은 물소리가 우렁찬 계곡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는 물이 풍부해서 폭포 물소리가 우렁차고, 아름다운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1971년에 옥인 시범아파트를 지으며 사라졌던 풍경은 2010년 아파트를 철거하며 현재는 수성동일대가 겸재의 그림을 따라서 복원되었다.

시간을 초월하여 겸재, 추사, 존재가 겸재의 그림에서 만나서 비가 내린 후 우렁찬 빗소리를 들으며 술도 한잔 기울이고 시를 지으러 기린교(麒麟橋)를 건너간다. 수성동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인왕산  위에  비가 쏴하고 내리면
인왕산 아래에 물이 콸콸 흐른다네
이 물이 있는 곳 바로 나의 고향이라
머뭇 머뭇 차마 떠나지 못한다네
내 풍경과 함께  때를 씻고 나서
노래 부르고 돌아보면서 일어나니
하늘은 홀연 맑게 개고
해는 하마 서산에 걸렸네

-박윤묵의 존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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