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낸 원초적 악기라면 아마도 「북」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의 북처럼 구조적 기능을 갖춘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물체와 물체를 부딪침으로서 소리를 낸 타악기의 시원을 유추(類推)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원시 공동체사회의 제의(祭儀)에서 있었을 신(神)과의 통화(通話)과정에서 북과 같은 타악기를 두드리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어떤 단순한 물체와 물체를 부딪는 소리였으나 그 소리의 확대를 위하여 오늘날의 북처럼 나무통에 가죽을 씌우는 단계로까지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어느 문화권 어느 민족에게나 그의 형태는 다르지만 나름의 독창적인 북이 있으니 모름지기 악기의 기본은 북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민족도 ‘민속악’, ‘정악’을 통틀어 줄잡아 30여종의 북을 가지고 있다. 단 하나의 북으로 ‘판소리’를 끌고 나가는 ‘소리북’이 있는가 하면 행악(行樂)인 ‘대취타’에서도 북이 큰 구실을 한다.

‘북춤’의 종류도 다양해서 농사의 현장에서는 ‘모방구춤’을 추고 춤꾼들의 춤판에서는 여러 틀의 북을 놓고 ‘오고무(五鼓舞)’니 ‘구고무’니 하는 희사한 춤사위와 가락을 뽐낸다. ‘승무’의 마무리도 역시 ‘북가락’이다. 큰 북 하나를 놓고 흡사 타악기의 합주인양 심금을 사로잡는다.

한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을 비롯하여 정악계열에서 쓰이는 북의 종류가 다양하고 모양도 아름답다. 풍물 ‘농악’에서의 북도 사물(四物 : 꽹과리, 징, 북, 장고)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은 가슴에 뛰는 심장에 비유하니 우리가 흔히 쓰이는 고동(鼓動)이란 말이 떠오른다.

‘고동’을 사전에서 찾아보자.
“몸에 피가 도는데 따라 벌떡 벌떡 뛰는 염통의 운동”이라 했다.

염통은 바로 심장이니 오장육부(五臟六腑)가운데서도 중심이요, 핵심이라 하겠다.
각설(却說)하고

악기 중에서도 그의 구조가 단순하다면 단순한 이 북이 어째서 모든 악기의 중심이 되는 것일까? 염통이란 모든 핏줄이 여기에 모이며 정맥에서 돌아온 피를 받아 동맥으로 보내는 펌프의 구실을 하는 것일진대, 그와 비유된 북도 역시 사물의 어울림에서 맺고 이으며 흐름을 정해주고 있다는 뜻에서 이리라. 그러면 그런 ‘고동소리’의 몇 예를 찾아본다.

뙤약볕 아래 논을 매고 있는 농군들의 힘을 덜기 위하여 ‘모방구꾼’이 논두렁에서 북을 울리고 있다. 논매는 일꾼의 호흡에 맞춰 허리를 펴고 구부릴 때마다 쿵! 쿵! 고동이 울리고 보면 끊어질 듯 아팠던 허리가 시원해지면서 불연 듯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얼럴럴 상사디여! 얼럴럴 상사디여!”

논 빼미에 울려 퍼지는 ‘모방구 소리’는 일노래의 장단이면서 일꾼들의 생동하는 숨소리이다.

옛 전통시대의 길군악에서도 북이 주종을 이루었다. 진군의 신호는 북이었으니 “북을 울려라”하며 울려 퍼지는 당당한 북소리가 바로 ‘진군나발’을 대신했다.

백성이 억울한 일을 나라에 고하고자 할 때 울렸던 큰 북, ‘신무고’는 이미 조선왕조 태종 원년 1401년 대궐 문루에 달렸었다. 둥! 둥! 둥! 둥! 백성의 하소연을 북소리로 대신했음은 그 소리의 간결하면서도 명료함에 있었지 않았을까.

우리의 민속예술은 악가무(樂歌舞)가 하나로 어울린 모양새였다. 그 예로 ‘오북놀이’(밀양 백중놀이 :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가 있다.

동·서·남·북·중앙을 나타내는 다섯 개의 북 잡이가 처음에는 완만하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다가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의 작은 우주를 그리듯이 다섯 방향으로 흩어졌다 모이면서 북을 친다.

구성진 ‘덧백이장단’에 넌줄대며 춤을 추다가 ‘자진가락’으로 흥을 몰아가노라면 북소리는 어느덧 현악인양 매끄러운 흐름을 이루게 된다. 한동안 잔잔히 흘러가다가는 갑자기 바위를 만난 듯 부딪치며 휘몰아 가다가 다시금 잔잔한 여울을 지나듯 한다.

어찌 두드리는 타음에서 이처럼 매끄러운 현악의 세계를 이루어 내는 것일까? 어느 경지에 이르고 보면 ‘관악’, ‘현악’, ‘타악’의 분별이 만나며 없어지고 마는 것인가?

다섯의 ‘북’이 만나며 부딪치며 또 엇갈리는 타음 속에서 ‘희노애락’의 한 생애와 만나고 ‘나’만의 착각일까? 세 뼘 남짓한 북이련만 치는 자리와 힘에 따라 천만 가지로 그 소리의 세계가 달라짐은 이 어인 연유일까?

심산유곡 한 물줄기의 발원지로부터 골짜기와 시내와 강변을 지나 망망대해로 흘러드는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는 저 ‘오북소리’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북소리’ 그것은 분명 ‘고동소리’이기에 모든 소리의 종종일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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