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원효사 주지 해월스님

일주일 열흘이나 되었을까요?

어느 거사 한분이 방문하여 하마비를 찾아 원효사에 왔다 합니다. 어디서 오셨느냐 물으니 멀리 경상도 울산에서 왔다 합니다.

▲ 원효사 하마비

공주에 지금 알기로는 하마비가 네 군데 정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일전에 내가 소개한 원효사 하마비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교동 향교 앞에 한 점이 있고 반포면 충현서원 앞에 한 점이 있으며 계룡 영규대사 비각 앞에 한 점이 있습니다. 향교 앞과 영규대사 비각 앞에는 만들어 세운 것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고 원효사에 있는 하마비는 내력이 이러합니다.

봉황동에 원효유치원에 원장 사택을 지으려고 토석을 파내고는 가져다 부린 곳이 금학동 원효사 아래 주차장 근처입니다. 원효유치원은 지은 지가 25년이 넘었고 원효사포교원이 된 것은 33년 전이며 그 전에는 보광사라는 절이었습니다.

보광사는 60년대 권만호 스님이 와가 목조건물을 사서 절로 만든 것인데 그 건물은 일제시대 공주 부호 중에 한 분인 홍원표씨가 지은 건물로 지금 현재 104년이 된 법당이 있습니다.

아마 공주에 100년이 넘은 건물은 관청 건물을 제외하고는 몇 개 안되는 것으로 그중에 하나가 원효유치원에 있는 건물입니다.

▲ 향교 앞 하마비

토석을 원효사에 부려놓고 간 그해 가을 도량을 포행 하다가 문득 길 다란 석물에 글이 보이는 것 같아서 흙을 털고 보니 ‘대소인원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크고 작고 높고 낮고를 떠나 이 자리에 와서는 말에서 내리라) 이게 웬일인가 싶어 깨끗이 물로 씻은 다음 원효사 화단 한켠에 잘 모셔두고 있습니다.

울산에서 온 방문객은 전국에 있는 하마비만 찾아서 사진을 찍고 어느 곳에 있는지 소개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그날은 공주지역을 목표로 온 것입니다.

다른 귀중한 것도 많은데 하필이면 하마비인가 하고 물으니 다른 것은  여러분들이 많이 조사를 했지만 아직 하마비에는 관심을 두는 분이 적어 그리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차 한 잔을 내고 하마비를 보여드린 후 원효사에 오게 된 내력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영규대사 비각에 하마비를 보고 울산으로 내려가야 한다며 서두르는 모습에 저와 같은 노력들이 모여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지켜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반포면 충현서원 앞 하마비

오후에 우체국에서 소포가 배달이 되어 왔는데 그 때 다녀간 이희득 거사가 지은 하마비를 찾아서 2권이 도착하였습니다.

다음 행선지를 향해 떠나는 이 거사를 향해 내가 엮은 사지순례 책자를 드리고 기회가 되면 이거사가 지은 책을 한 권 받아보고 싶다 하였더니 잊지 않고 책을 보내온 것입니다.

원효사 하마비는 언제부터인가 봉황동에 묻혀 있다가 토석을 퍼 내 오는 과정에서 발견되어 나왔지만 원래 서 있던 곳은 추측 상 네 군데 정도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교동에 공주 향교이고 둘은 공주사대부고 자리 충청감영 앞이며 셋은 고려 말까지 대통사가 존재했다면 대통사 입구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넷은 공산성에 있었던 감영 건물 앞입니다.

그러던 석물들이 일제강점기에 도시를 새로 꾸미면서 이리저리 석물들이 흩어지고 그 중에 하마비는 원효사 포교원의 자리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입니다.

▲ 계룡 영규대사 비각 앞 하마비

내 짧은 소견으로는 대통사에 있던 석물들도 그렇게 하나 둘 없어져서 지금 현재로는 발굴조사를 해도 대통사를 지탱하였던 유구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희득 거사처럼 남들이 관심을 덜 갖는 부분에 오랜 시간 연구하고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서 귀한 책을 내고 보내주신 이희득 거사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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