察其始而本無生 非徒無生也而本無形 非徒無形也而本無氣 雜乎芒芴之間
變而有氣 氣變而有形 形變而有生 今又變而之死

삶의 頂點이 죽음이고 죽음의 頂點은 誕生이다. 죽음은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하나의 성장하는 과정이다.

탄생은 죽음의 한 끄트머리를 이루고 있고 육체의 죽음은 그 반대쪽의 한 끄트머리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산다’와 ‘죽는다’ 사이에 사실상의 차이는 없다. 우리가 ‘산다’라고 이름 지어 부르고 있는 것은 ‘조금씩 죽는다’라는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傷處가 나면 상처치유의 결과물로서 딱정이가 앉는다. 딱정이가 앉음으로서 상처치유 과정은 마무리 된다. 그리고 딱정이는 버려지는 것이다. 삶이 傷處라면 삶의 과정은 딱정이가 앉는 과정이며 죽음은 딱정이가 떨어져 나가는 결과물이다.

탄생은 죽음에로 성장해 간다. 이것은 곧 탄생과 죽음이 같은 것의 兩端이라는 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莊子』「至樂」에서도 보듯이 인간의 삶과 죽음은 고착 상태가 아니라 늘 움직이는 것이므로 죽음과 삶의 차이는 다만 형체에 있을 뿐 그 본질은 모두 氣라고 하였던 것이다.

『淮南子』에서도 만물을 玄同化育시키며 삶을 살아가되 죽음의 과정을 밟아 가고 있다. 라고 말한다. 또한 깨어 있으되 꿈을 꾸는 듯 하고, 살아 있으되 죽어 있는듯 하여 다시 근본으로 돌아오고 죽어 있을 때는 만물과 더불어 변화를 같이 한다. 라고 말한다. <萬物玄同也 無非無是 化育玄耀 生而如死 「原道」覺而若昧以生而若死 終則反本未生之時 而與化爲一體 死之與生一體也「精神」>

孔子의 不知生 焉知死는 不知死 焉知生이라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은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그 누구도 밀어내거나 끌어당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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