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설야귀인도 風雪夜歸人圖 최북毫生館 崔北 1712-1786? 종이에 수묵담채, 18세기, 66.3 x 42.9 cm.

쌍달리 산골은 온통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데 가끔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며 허공을 흔들어 시간의 흐름을 일러 준다. 조용히 내리는 눈은 아름답고 포근하고 낭만이 있지만 때로는 위험하고 사건사고가 함께 해서 무섭기도 하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라고 한다. 20중 추돌사고가 난 고속도로, 너무 추워서 중국은 냉동고라고 하고 미국 동부는 눈이 1미터 정도 쌓여서 모든 것이 마비되었고 제주도는 비행기가 결항되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아서 공항에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 뉴스는 날씨와 눈 이야기로 꽉 차있다.

이번 한파가 오기 바로 직전에 제주도에 갔었는데 그때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눈으로 제주도에서도 보기 드문 겨울 날씨라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겨울에 몇 번 제주도에 갔었고 겨울 한라산과 오름에도 올랐었는데 이번에 찾은 어승생악과 높은오름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높은오름에서는 눈보라와 바람 때문에 발을 땔 수 없고, 날아갈 것만 같아서 낮은 자세로 몇 번을 주저 앉아야했다. 한라산을 보여주지 않은 어승생악의 안개가 야속했지만 눈은 나뭇가지를 강정처럼 감싸서 눈꽃을 만들었다. 제주도에서는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고 사방에서 휘몰아친다는 친구의 말이 실감이 났다.

바람에 몸을 맞기고 서있는 나무는 가지가 꺾어질 듯 모두 왼쪽으로 향하고 있고 개울도 얼어붙었다. 동자와 함께 걷는 사람만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허리를 구부리고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길을 걷고 있다. 때마침 개도 나와 짖으며 바람소리에 거친 소리를 더한다.

붓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그린 그림, 지두화이어서 섬세하지는 않지만 거침없고 시원시원한 표현이 눈보라치는 추운 밤의 절박한 느낌과 바람소리를 잘 들려준다. 바람이 날려 버릴 것 만 같은 나무와 마른 풀숲, 오두막을 산등성이의 힘찬 선과 하늘이 지그시 누르고 있다.

최북은 당대 최고의 인기 있는 화가였고 그림을 팔아 생활하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붓으로 먹고 산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라고 했다.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문인 신광수(申光洙:1712-1775)는 「최북을 노래함(崔北歌)」에서 화가의 어려운 처지를 이렇게 적고 있다.

‘최북이 장안에서 그림을 팔고 있는데/평생 오두막 한 칸에 사방 벽이 비었구나/문 닫고 온종일 산수를 그리고 있으니/유리 안경 하나에 나무 필통 하나 뿐 이구나.’

자의식이 강한 그는 어느 양반의 그림요구 협박에 자신의 눈을 찔러 맞섰다고 한다. 타협하지 않는 그의 거침없는 성격이 다른 어떤 그림보다도 잘 드러난 그림이다. 거친 바람 속을 걷고 있는 사람은 작은 체구로 세상과 맞서던 거침없는 최북 자신인 것 같다. 제주도의 기억과 함께 이 그림 속의 사람이 되어 눈길을 걷는다. 최북이 술을 한잔하고 성곽 밑에서 얼어 죽은 날도 오늘처럼 추웠을 것이다.

日暮蒼山遠 (일모창산원, 날은 저물어 푸르른 산은 먼데)               
天寒白屋貧 (천한백옥빈, 날이 차가워 초가집이 더욱 초라 하구나)   
柴門聞犬吠 (시문문견패, 사립문 밖에 개짖는소리 들리드니)          
風雪夜歸人 (풍설야귀인, 눈보라 치는밤에 돌아온 사람)      
유장경(劉長卿 당대의 시인)의 逢雪宿芙蓉山 (봉설숙부용산, 눈을 만나 부용산에 머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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