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ng of mediterranean이광복 (1946~ ) 25× 41㎝ 365pcs, oil on canvas, 2001~2014

사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어렸을 때 체하거나 아파서 밥을 먹지 못할 때면 사과를 먹었다.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갈아주는 사과를 누워서 받아먹거나 조그맣게 칼로 잘라주는 것을 맛있게 먹었다.

다른 음식은 먹을 수 없어도 약간 새콤달콤한 사과는 이상하게도 잘 넘어갔다. 그래서 지금도 사과를 먹을 때면 할머니 생각, 어린 시절 살던 집과 동네가 생각난다.

한번은 추석날 아침에 송편을 한 개 집어 먹었는데 그만 체하고 말았다. 음식이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고 설과 추석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인데 좋아하는 고기반찬도 전도 먹을 수 없고 사과만 먹던 추석이었다. 그때는 여러 가지 색과 맛, 향이 있는 사과가 있었다.

노랑, 초록, 빨강 요즘은 시장이나 마트나 달고 보기 좋은 과일이 우리를 유혹한다. 단맛이 극대화된 부사나 홍로, 달고 크고 보기 좋은 사과로 진화했다. 단맛을 탐하는 사람의 욕망 때문에 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다.

자연에서 채집하여 먹을 것을 해결하던 원시사회부터 쓴맛은 독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인류는 경험에 의해 단맛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단맛을 탐하게 진화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그 단맛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하고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의 몸이 학습한 단맛을 떨칠 수가 없어 여러 가지 대용품이 개발되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시장에서 볼 수 없는 어린 시절 사과가 이광복의 그림에는 아직 살아있다. 같은 모양과 색을 찾아볼 수 없다. 화가는 똑같은 모양을 보고도 수백 수천가지 모양과 색을 그린다지만, 화가가 그린 수천 점의 사과는 상상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공수해온 각각의 사과를 보고 그린다고 한다.

공주대학교에 공주학연구원이 있다. 그곳에서는 한 달에 한번 공주학 광장이 열린다. 공주에 살고 있는 사람, 사건, 역사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지난 2월에는 공주에 돌아온 화가 이광복 선생님이 그림과 인생을 얘기했다.

“아테네 노천시장에 가면 농부들이 가지고 온 사과가 수십 종이었는데 값도 싸서 한 바구니씩 사왔죠. 사과는 같이 두면 빨리 썩어서 책꽂이마다 한 개씩 올려놓으면 방안에 향긋한 냄새도 배고 잘 썩지도 않아요. 달빛 밝은 어느 날, 사과가 달빛에 비쳐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날 사과가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로 보였습니다.”

어느 날 탁자위에 놓아둔 사과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과를 좋아하는 화가는 시장에서 사과를 잔뜩 사다 놓고, 배고프면 사과를 먹으며 작업을 했다. 작가가 그림에 몰두해 있을 때는 밥을 차려 먹거나 요리를 해서 먹는 일은 번거롭고, 사실 배가 고픈지도 모른다.

한참 작업을 하다가 그림을 바라보며 숨고르기를 할 때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화가는 사과를 베어 먹었을 것이다. 첫눈에 반한 연인들은 사진의 아웃포커스 기법처럼 그 사람의 주변은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를 둘러싼 빛, 후광, 아우라만이 눈에 들어온다는데 그렇게 놓아둔 사과가 마치 첫눈에 반해버린 여인처럼 빛을 뿜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고 화가는 그것을 그림으로 옮겼다.

각양각색인 365개의 사과를 보면 지구를 돌며 모양을 바꾸는 달이 떠오른다. 신화와 변신의 땅, 그리스에서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에게 달은 사과로 모습을 바꿔 말을 걸어 온 것은 아닐까

그리스 땅에 홀로 스스로를 유배시킨 화가가 그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일기가 365개의 사과가 되었다. 고맙게도 그 사과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가 공주 문화원에서 4월에 열린다는 기쁜 소식이 있으니 사과를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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