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각 지역 도시는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 창출에 골몰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지역 사회를 한 마디로 나타내는 슬로건을 만들어 활용하는 일이다.

예컨대 암스테르담은 마약과 섹스로 유명했던 도시인데, ‘아이엠스테르담(I Amsterdam)’ 구호 하나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며 세계적 관광도시로 재도약했고, 통일 이후 침체의 길을 걷던 베를린은 ‘비베를린(Be Berlin)’의 슬로건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사례를 거울삼아 우리나라에서도 각 지자체들이 외국어 슬로건 만들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하이서울’(최근 ‘아이서울유’로 바뀜), ‘잇츠대전’, ‘플라이인천’, ‘컬러풀대구’ 등을 비롯하여 ‘로맨틱춘천’, ‘아시아아트전주’ 등 도시마다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린 이름 짓기가 대유행을 이루었다.

우리 공주시도 전임 시장 시절에 ‘하이터치공주’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사용했었는데, 시장이 바뀌고 난 뒤 이를 ‘흥미진진공주’로 변경하였다.

공주를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으면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그리고 무릎을 탁 칠만한 구호로 보기는 어려우나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정체불명의 외국어 작명보다는 좀 낫다는 생각이다.

각 도시의 이런 슬로건은 주민들의 자부심을 살리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한편 그 도시를 홍보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도시들이 간단하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그 지역의 특색을 상징하는 슬로건을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겠지만, 그 외의 다른 방법들도 많이 있을 것 같다. 가령 요즘 영남이나 호남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단어가 ‘수도’라는 용어다.

몇 예를 들어보면 광주는 ‘문화수도’라는 용어를 그 도시의 전유물처럼 사용하고 있다. 관련 특별법의 뒷받침으로 ‘아시아의 문화수도’ 건설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고, 일찍이 ‘예향’이라 불렸던 광주의 시민들은 이 자부심 어린 문화수도란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안동에 가면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말을 만날 수 있다. 안동이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임을 물론 국학관련 자료를 집대성하여 보관하고 연구하는 국학진흥원이 들어서 있는 등 그 지역의 특색을 잘 실린 작명이라 할 수 있다. 전남 보성에 가면 ‘녹차의 수도’라는 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녹차 생산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관련 유적 등으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명명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경제수도’를 꿈꾸는 인천, ‘국방수도’를 자부하는 계룡시, 이미 ‘행정수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세종시 등 각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수도 이름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좀 어색하고 입에 잘 붙지 않는 불편이 있어도, 그게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 사이에 그 도시의 이미지로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 몇 해 전에 행정수도 건설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을 때, 재판관들은 관습법을 들먹이며 서울이 수도임은 역사적으로 분명하니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행정 수도를 만들면 이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판결은 시대착오적인 노인들의 구태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었지만 많은 국민들이나 서울 시민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서울이 우리나라의 중심이고 핵심도시라는 생각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아직도 서울시에는 ‘특별’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있고(제주나 세종특별자치시의 탄생으로 그 희소성이 다소 약화되긴 했지만), 또 ‘보통’ 시에 비해 여러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더 이상 서울만 ‘특별’해야 한다는 논리는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서울 또한 인구가 좀 많고 대학이나 국가 기관이 많이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여러 도시 중 규모가 좀 큰 도시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지방 자치가 본격화되면서 각 도시는 나름대로 서울 못지않은 특색과 역량을 갖춰 가고 있다. ‘지방 분권’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이제는 수도 서울의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서울만이 유일한 수도가 아니라 각 분야별로 수도의 위상을 분산하는 지혜가 현실적으로 실천되어야만 한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보면 공주는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공주의 지도급 인사 한 분은 공주를 ‘역사문화의 수도’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겠으나 다른 도시의 수도 명명에 비해 비교 우위를 확보하기에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코리아문화수도조직위원회’라는 단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각 도시의 신청을 받아 한 해에 한 도시를 문화수도로 정하고 각종 지원을 통해 그 계획 실천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해마다 서울을 옮기자는 취지 아래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 2016년 해당 도시로 경기도 시흥시가 선정되었다. 늦은 감이 있으나 공주도 관련 계획을 세워 이에 응모해 보는 게 어떨까. 

공주는 그 동안 문화도시, 관광도시, 역사도시, 교육도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분산되는 것보다는 한 가지 이름으로 집중과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주를 무슨 수도로 명명해야 할지 시급히 논의를 시작하자.

공청회, 여론 조사, 세미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의 의견을 결집하고, 이를 통해 공주를 알릴 수 있는 획기적이면서도 기억하기 좋은 단순한 이름을 창출해 내자. 세계문화유산 보유 도시라는 허울만의 이름에 도취되어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공주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 모양 그 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공주는 무슨 수도인가. 공주 시민은 물론 공주하면 누구나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을 속히 만들어 활용하는 게 공주가 꿈에서 깨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행정을 담당하는 분들이나 공주를 위해 일하겠다고 나선 분들의 이 문제에 관한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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