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세도정치 아래에서 흥선군은 ‘상갓집 개’라는 조롱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위장하였는데, 그것은 자기 한 몸의 편안함이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 실권을 장악하여 무너진 왕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흥선군은 대망(大望)의 실현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풍수지리에도 착안하였다고 한다. 남연군의 묘를 명당자리에 이장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풍수지리를 공부하면서 전국 각지의 명산을 답사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지관 정만인이 찾아와 “가야산 동쪽에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가 있고, 오서산에는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가 있는데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흥선군은 이대천자지지를 선택했으며, 1845년에 남연군의 묘를 그 자리에 이장하였다. 이장한 7년 뒤에 둘째 아들 명복(命福)을 낳았는데, 명복은 1863년에 고종 황제가 되고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었다. 그 뒤 1919년에 고종의 아들 순종이 황제로 등극하였다. 그야말로 정만인의 예언이 실현된 셈이다.

남연군의 묘는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나는 풍수지리는 잘 모르거니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두어 번 구경을 하기는 했다. 이런 곳이 천자가 배출되는 명당이라면, 자손들이 영원히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곳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 중에 하루를 실외수업으로 해서 오서산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마침 수강생 중에 민병성 선생이 그 쪽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민 선생이 여러 자료와 길라잡이는 물론이고 저녁에는 근사한 복 요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동행한 권구현 교수나 심도경 선생까지 우리 모두가 몸과 마음이 고루 홍조를 띤 흐뭇한 하루였다. 하늘도 날씨부조를 잘 해 주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민 선생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만대영화의 명당자리는 딱 집어서 어디라고 알려진 곳은 없다고 한다. 예상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꼭 그 자리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만대영화의 명당은 오서산 자락의 보령중학교와 주포초등학교 뒷산 어디쯤이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주포초등학교 일대를 휘돌아 만대영화의 명당(?) 기운을 받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애초부터 만대영화의 명당 같은 것이 따로 존재한다거나 그러한 소문을 믿는 것 모두가 합리적인 판단은 아닌 듯 싶다. 풍수지리와 관련된 지식이나 이론을 잘 알지 못하는 처지에 왈가왈부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늘과 땅, 산과 물이 잘 어울리는 자리에 명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광막한 몽고의 초원이나 황량한 사막이 펼쳐지는 아라비아 지역 같은 곳에서는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거나 문명이 발생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징기스칸의 출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산과 물의 형국 그 자체에서 명당이 생긴다는 풍수 지리적 견해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명당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도 재미가 적어 보인다.

그러한 명당이 없다는 것 보다는 있다고 믿는 것이 좋을 것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명당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명당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좀 엉뚱한 것 같지만 나는 명당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고 본다.

누군들 부모님의 유해를 아무 곳이나 가리지 않고 함부로 매장하고 싶겠는가! 산과 물이 잘 어울리고 햇볕이 따사로운 아늑한 자리에 모시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나는 그러한 인지상정이 바로 명당이라고 생각한다. 명당의 발복(發福)은 그 자리가 명당이라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마음이 명당이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란 말이다.

이번에 오서산 일대를 주마간산격으로 보기는 했지만 또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곳 어딘가에 만대영화지지가 딱 한 곳만 있다는 것보다는 오서산 일대가 그야말로 만대영화지지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금북정맥의 최고봉 오서산은 높이는 791미터밖에 안 되지만, 좌우로 서해바다와 내포평야의 아우르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도 풍성함이 끊이지 않을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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