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공주 원도심 탐방

‘공주와 만나다’

발달된 교통수단으로 사람들을 어디든 몇 분 혹은 몇 시간 안에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한다. 이에 사람들의 일상적 세계관은 크게 넓어지고 자신이 삶의 영역에서 벗어나 방문하는 낯선 공간에 대한 신비로움과 무게감은 허물어진다. 결국 우리는 물리적 편리성에 취해 새로운 공간과 맺는 낭만적 혹은 감성적 기행의 가치를 자각하지 못한 체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 원도심 탐방 OT(충남역사박물관 교육실)

현대의 관광이란 찾아갈 공간에 대한 초대 없이 남들이 가보거나 유명한 곳을 가보는 것에 불과한 비일상적 이동과 소비, 휴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공주를 찾은 사람들의 방문은 무엇인가 달라도 아주 다르다.

교통비와 점심 그리고 분위기 좋은 찻집을 포함한 문화기행을 참가비 ‘만원의 행복’이란 슬로건 아래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저렴한 비용으로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공주로부터 초대 받고 공주의 주인인 지역출신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길을 걷는다. 이번 방문의 특별함은 유유자적, 많은 이들이 몰랐던 공주 원도심의 참모습을 배경으로 여유로이 추억을 만든다는 점이다.

‘공주의 어제를 느끼다’

먼 곳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 채비하고 차를 달려왔을 손님들과 이번 탐방의 시작지인 충남역사박물관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아침의 상쾌함이 오후에 찾아올 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었고 본격적인 원도심 나들이에 앞서 충남역사박물관 교육실에서 최병옥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공주 원도심의 역사를 사진을 통해 알아가며 공주의 아침을 열었다. 

▲ 참가자 집결(충남역사박물관 앞)

공주는 백제의 수도가 지금의 부여로 옮겨지기 전까지 두 세대가 넘는 64년이라는 시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던 시절을 시작으로, 1602년부터 1932년 까지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충청도와 충청남도의 중심지로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공주 신도심 개발과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집중된 관심으로 공주 원도심이 품고 있는 어제의 기억은 등한시 되고 있다. 지난 6월 18일에 진행된 공주 원도심 탐방은 서울․경기 지역에서 방문한 숲문화해설사회와 군인가족모임 분들과 함께,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공주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문화유산과 만나 대화하는 올해 첫 여정이었다.

‘예수가 사랑한 고을, 공주’

이번 원도심 탐방에는 충남역사박물관 송현정, 이상균 연구원이 인솔하고 최병옥, 장길수 문화관광해설사가 원도심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탐방 첫 방문지로 도착한 곳은 박물관 고개 뒤편 영명 중․고등학교로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에 편입하기 전까지 2년 동안 다니던 학교로 알려져 있다.

▲ 영명중․고등학교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우리암(宇利巖, Frank. E. C Williams)이 세운 영명학교를 모태로 1940년 일제의 기독교계 학교 탄압으로 강제 추방 되었고 1942년에 폐교되었으나, 1949년 동문들의 노력으로 복교되어 이후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는 당당하게 서있는 우리암과 조병옥, 유관순 열사의 흉상 앞에서 그동안 몰랐던 유관순 열사가 학교를 다니게 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최병옥 문화해설사의 이야기가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했다.

다시 학교운동장 뒤편으로 잘 정비된 오솔길을 따라 올라 숨어있는 옛 선교사 가옥(등록문화재 233호)을 찾았다. 그저 모르고 길을 오르다 마주치면 어린 시절 모험심에 작은 산을 넘어 처음 가보는 마을을 발견한 것처럼 희열을 느낄 만큼, 조금은 비밀스럽게 그리고 한적하게 공주의 환한 전망을 간직하고 있다.

이 가옥은 서양식 건축물로 1919년부터 1940년에 미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충남지역 감리교회를 형성하고 발전시킨 주역인 아멘트 선교사가 지냈던 사택으로 추정된다. 한때는 공주사범학교 여자 기숙사로도 쓰였고 집 앞에는 재래식 냉장고와 우물자리, 야외 화장실이 남아있다.

▲ 옛 공주 중학동 선교사가옥

옛 선교사 가옥 아래로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정겨운 옛 마을 골목길이 우릴 반긴다. 이미 달구어진 초여름 날씨에 물총 쏘며 노는 아이들에게 방문객들은 넉살좋게 물총 물을 빌려 손을 적신다. 그렇게 한 동안 걸어 항일운동의 장소이자 서양문물의 통로였던 공주제일교회(등록문화재 472호)에 닿았다.

1931년에 지어진 고딕양식의 교회는 원형을 살려 옛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박물관으로 탈바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일교회 부목사님이 교회 신관 1층 역사자료실에서 직접 사진을 통해 교회의 역사를 이야기했고, 복원중인 옛 교회 건물에도 동행하여 햇빛을 교회 내부로 전해주는 스테인글라스처럼 교회와 방문객들 사이에서 우리가 서있던 곳의 가치와 의미를 은은하게 전해주었다.    

‘졸졸졸, 제민천 물소리를 들으며 노닐다’

제일교회를 나와 제민천 물길을 따라 걸으니 슬슬 밀려오는 허기에 꼬르륵 소리는 제민천 물소리와 장단을 맞췄다. 충청감영터, 미나리꽝, 버드나무 많았던 제민천은 그 추억만 머금은 채 말없이 흐르지만 오랜 세월 공주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흔적은 주변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점심으로 선택한 보리밥은 제민천의 풍경, 분위기와 함께 비벼져 한 끼 정겹고 건강한 식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제민천 물소리 들리는 와중에 다들 오전 동안 걸어온 길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시끌벅적 나눴다.

▲ 옛 공주제일교회

점심식사 후 첫 오후일정으로 제민천길에서 반죽동 골목으로 들어가 옛 공주읍사무소였다가 지금은 공주의 역사를 담은 사진이 전시 되어 있는 ‘공주역사영상관’(등록문화재 433호)으로 향했다. 1920년대 공주의 행정적 중심지였던 구읍사무소 일대 반죽동은 법원, 경찰서, 우체국 등이 위치한 곳이었다.

옛 읍사무소 건물은 읍사무소로 사용되기 전 충남금융조합연합회관으로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 정면 네 개의 돌기둥은 그리스 건축양식을 느낄 수 있는 근현대 건축형태로 공주에 위치한 근현대 건축물의 다양성을 더욱 강조한다.

전시된 공주의 옛 사진을 보며 더위를 피하고 조금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제민천길 골목에 위치한 찻집 ‘루치아의 뜰’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부부의 개․보수를 거쳐 대중이 뽑은 공간문화대상을 수상한 이 한옥형 카페는 많은 입소문을 타고 공주의 명소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즈넉하고 친숙한 한옥 공간에서 정성 가득한 차를 마시며 들은 충남 제일 갑부 김갑순의 일화는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덕을 베푸는 것이 중요한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 공주 옛 읍사무소

차 한 잔의 여유로 재충전 된 기운으로 나태주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풀꽃 문학관으로 향했다. 시인은 부재중이었으나 그의 부인이 계셨고 특별히 충남역사박물관을 통해 공주를 찾은 분들에게 나태주 시인의 대표 25시 손바닥 책을 나누어주셨다.

옛 일본 헌병대장 가옥으로 사용되던 일본식 가옥의 이색적인 구조와 분위기가 운치를 더했다. 어느덧 오늘 탐방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한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방문객들의 손에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 될 문학관 기념품들이 신난 듯 흔들거렸다. 황새바위에 도착하니 타 지역 성당에서 온 버스들이 즐비하다.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중요한 성지 중 하나인 황새바위 순교유적(기념물 178호)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곳이다.

충청감영이 위치한 행정거점지역이었던 공주는 사법권까지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처형에 관한 판결과 집행의 장소 또한 자연스럽게 공주가 되었다. 직접 해설을 해주신 성지 담당 신부님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다른 흉악범들의 처형과 함께 집행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시신이 뒤섞어 유골을 찾기가 불가능 했다. 그래서 이후에 순교자들의 고향에서 흙을 가져와 순교탑 지하에 있는 석관(石棺)에 보관했다고 했다.

나는 비록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앙적 의지를 지켜낸 민중들의 한이 설여 있는 곳임을 느꼈다.

▲ 지역 찻집(루치아의 뜰)

‘공주와 맺은 특별한 인연’

공주 원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충남역사박물관이 추진하고 있는 ‘유유자적, 공주 원도심 탐방’은 지역의 참된 가치를 알리는 역할과 그곳의 알려지지 않은 먹거리, 즐길 거리 추억거리를 공유한다. 또한, 무엇보다 공주 원도심을 찾은 사람들의 방문을 단순한 하루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높은 문화기행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한다.

이점에서 더운 날씨 속에서도 흥미롭고 깊은 해설을 해주신 장길수, 최병옥 문화해설사 선생님들의 역할에는 항상 빛이 난다. 더불어 공주시의 살림살이로 제공되는 교통편(버스)와 해설사 선생님들의 무료 안내 및 해설은 공주에서의 값진 만원의 행복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 황새바위 순교탑 지하

특별함은 남들이 모르는 것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고 경험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비록 오랜 세월을 거쳐 예전과 같은 역동적인 큰 고을의 모습은 빛 바래가지만 그 어제의 기억을 담은 원도심 문화유산들은 제민천과 공주의 구석구석에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앞으로 공주를 다시금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가 더해질 공주 원도심의 오늘일 것이다. 찾아간 발걸음이 공주 원도심 이곳저곳에 생생히 남을 것이고 그들의 기억과 추억한편에 공주 원도심이 자리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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