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檀園)김홍도(1745-?) 보물 제 527호, 27cm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복은 옷장에 걸어두기보다는 곱게 개켜 둔다. 평면으로 바느질한 옷이어서 사람이 입기 전에는 납작하다. 비로소 사람이 그 옷을 걸쳐야 옷맵시가 나고 모양이 완성된다.

서양의 양복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입체적으로 만든 옷이다. 그래서 옷걸이에 걸어두면 그 형태가 유지되지만 곱게 접어두려면 부피도 크고 구김 때문에 그냥 입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옷을 보관하는 방법에 따라 옷장도 다르게 생겼다.

옷이 다른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달랐다. 우리그림은 먹 선으로 표현하는 선위주이고 서양에 선은 형태를 구성하는 면을 그리기위한 것이다. 요즘 그림은 동서양화의 구분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표현 방법이 달랐다.

서양의 크로키처럼 선으로 표현하는 그림도 있지만 우리그림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습작정도로 여겨졌다고 생각한다. 동양은 선, 서양은 면이 일반적이다. 그 선의 굵기 농담으로 사군자, 산수화, 영모화, 풍속화…를 그렸다. 물론 선을 긋고 그 안에 채색을 하는 민화나 채색화도 있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연주하는 악사와 춤을 추는 무동이다. 삼현육각은 악기편성이나 삼현육각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말한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를 보는 것처럼 해금1, 피리 2, 대금 1, 장구 1, 북 1로 편성되지만 때때로 악기의 종류와 인원에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삼현육각은 무용이나 의식, 행위를 위한 반주 음악이고,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감상을 위한 음악은 대풍류라고 한다.

이 그림에 주인공은 춤을 추는 아이이다. 그래서인지 동그랗게 앉은 연주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힘이 넘치는 필선으로 자신 있게 쓱쓱 그리고 약간 채색을 한 아이에게 눈이 간다. 툭툭 던지는 듯이 그린 옷자락, 소매 자락은 팔을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쭉쭉 뻗는 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전문 악사와 일반인 복장을 한 악사들도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다르다. 어깨를 들썩이며 장구를 몸에 가깝게 붙인 사람과 거의 움직임이 없이 피리 대금을 부는 사람, 해금 연주자는 다른 선으로 표현했다.

흥에 겨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장구를 잡은 사람은 옷 주름을 잘게 쪼개고 곡선으로 표현했고 다른 악사는 각이 진 주름선이다. 화면 밖에서 보고 있는 관객은 각각 다른 재미있는 얼굴 표정을 보며 피식 웃는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돌아앉은 해금 연주자를 위해, 줄을 잡은 그의 왼손은 손등이 보이게 반대로 그려서 한 번 더 눈길이 가게 배려했다. 설마 출중한 외모에 풍류를 알고 문집을 낼 정도로 글 솜씨 까지 좋은 단원이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인 신분의 대표적인 직업 화가였던 화원(畵員)은 그림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하위직 공무원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했다.

화원은 각종 장식화와 국가의 중요행사를 기록한 의궤도(儀軌圖),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과 공신의 초상인 공신도상(功臣圖像), 정초에 그려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세화(歲畵)와 지도, 궁의 단청 및 도자기의 문양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했다.

문인화처럼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솜씨는 뛰어났다. 화원인 단원의 풍속화첩은 그래서 더 귀한 것이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호방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단원의 붓선은 질투가 난다. 서양식 미술수업으로 재료만 동양화인 경우가 많고 먹과 붓을 가지고 노는 경지에 있는 그림을 찾는 것은 요즘은 쉽지 않다. 그래서 옛 그림에 더 눈이 간다. 가만히 그림을 살펴보며, 춤추는 붓의 경지가 부럽고 닮고 싶다.

얼마 전 공주충남연정국악원의 삼현육각 정악 연주가 생각난다. 단원의 그림 속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다니. 무동은 없었지만 춘앵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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